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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16. 2023

사과 시그널

[다시 쓰는 월요일] 8_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부치는 편지




2019년 6월 4일 화요일

오후 7시. 큰아이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짧게 인사하고 차에 오른다. '어, 오늘 몰입도는 얼마야?'라고 했더니 '한 70?'이라고 답한다. 오늘까지 방과 후 기간 동안 70%가 이틀이다. 앉아 있는 것 다음으로 자기 스스로 몰입도를 챙겨보라 일렀다. 난 그렇게 학부모 흉내를 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10여분 동안 어제 나의 '고함'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렇게 사과를 시작했다. 집에 오자마자 씻자, 폰 적당히 하자, 저녁에는 책을 읽자라고. 무더위에 잠들기 어렵다, 어렵게 잠을 청할 때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진다. 어제 아빠가 네 소리에 잠이 깨 2시 넘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엄마도. 


도로 위 흐름 따라 흘러가는 차 안에서, 좌회전 신호를 대기하는 두 번의 기다림 때. 그동안 큰아이는 살짝 눈을 감고 들었다. 책 읽자라는 말에 '안 읽어요'라고 짧게 응답했다. 화였다. '왜?'라고 되물었더니 '수학을 해야 돼요'라고 했다. 숙제 같은 화였다.  


'그건 안 읽는 게 아니라 못 읽는 거지. 무엇을 하려고 하건 그건 스스로 결정하면 돼'라고 되받아주었다. 집에 들자마자, 안방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다. '샤워 좀 하지?'라고 아내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 먹인다고 작은 아이 손바닥 만한 크기의 전복 여섯 개를 구워 내왔다. 치즈를 올려 녹여서. 


입에 넣기 좋게 가위질까지 해서. 큰아이 밥 위에 올려준다. 아내의 사과다. 식탁 위에서 나도 아내도 어제 새벽녂의 '고함'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얼굴만 씻고 나오자마자 거실 자기 책상 위에 수학책을 미리 펼쳐두었다. 저녁을 후딱 먹고는 '잘 먹었습니다'라고 외쳐준다. 표정은 아직 굳은 채. 


큰아이는 어릴 적부터 식탁에서 먹기 전, 먹고 나서 인사를 참 잘했다. 집에 오자마자 큰아이는 자기 책상에 수학책을 펼쳐놓았다. 바로 공부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러겠다고 보여준 메시지다. 저녁을 먹고, 괘 큰 소리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외친다. 표정은 아직 굳어있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만, 누구나 어제 그 ‘고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큰아이는 코코를 쓰다듬고 안으면서 놀아준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음악을 듣고, 웹서핑을 한다. 9시가 좀 넘자, 큰기침을 하면서 거실로 걸어 나온다. 자주 그렇듯이 방귀도 ‘빵’하고 뀐다. 얼굴대신 소리로 이야기를 걸어온다. 


큰아이가 가장 컨디션 좋을 때 쓰는 멘트, ‘적당히 해야지~’라고 내가 외쳐준다. 이 말을 처음 들으면 기분이 상할 수 있다. 그런데 적절한 억양에 미세한 뉘앙스가 곁들이면 타이밍 좋은 유머가 된다. 그걸 큰아이한테 배웠다. 


큰아이는 언제부터인가 가족 특히 나와 농담을 주고받을 때 쓰는 악센트가 되었다. 농담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걸 때 쓰는 시그널처럼. 이 시그널과 함께 하는 행동이 하나 더 있다. 혀를 입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몰아서 윗니를 쓸어내리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머쓱함을 감추지만 다 드러나면서. 큰아이가 사과를 시작했다는 시그널의 완성이다. 큰아이가 앉아서 공부를 할 때 옆에서 뒤에서 책을 읽고, 근력운동을 조금 했다. 어제와 비슷한 자정쯤에 잠을 청한다. 아내와 작은 아이는 덥다며, 거실에 이불을 펼친다. 


큰아이는 여전히 수학공부 중이다. 시계를 보지 않았지만, 1시간여 정도 흘렀나 보다. 큰아이가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는 것 같다. 문을 살짝 닫는 미세한 소리만 들린다. 그다음, 늘 그랬듯이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는 것 같은데,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주방등도 켜지 않는다. 방문을 조용히 당겨서 닫고 들어간다. 


짧은 동선이, 행동이 꿈처럼 선하다. 제대로 사과를 하려고 애쓴다. 남매가 상대방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 어떻게, 타이밍 적절하게 사과를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아이로 컸으면 하는 생각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걸 부모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보여야 할 텐데 쉽지 않은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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