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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05. 2023

프로이트씨, 해석 가능한가요?

[풀하우스] 18 ... 사진:unsplash

가랑비가 내리는 안개 자욱한 진창길. 한 아이가 아장아장 맨발로 걸어 들어간다. 엉덩이가 기저귀 때문에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아가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새하얗게 미소를 머금고 뒤뚱거리고 있었다. 어, 신발 신어야 하는데. 신발이 어디로 갔지? 00아. 그런데 마음은 벌써 달려가는데,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간 아가는 드디어 멈췄다. 그런데 갑자기 높고 푸른 하늘. 뭉게구름이 야트막한 풀 가득한 언덕 위로 휘리릭 장막을 펼치듯 금세 바뀌었다. 가랑비도 안개도 온 데 간데없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머릿결처럼 언덕 위 풀들은 이 방향으로 한번 반대 방향으로 한번 바람에 따라 몰려서 넘어지듯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 그 아가는 곱슬한 베이지 털이 수북한 양들에 둘러 쌓여 있었다.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양들하고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목과 어깨와 머리가 흔들흔들거렸다. 아가가 울타리 안으로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런데 울타리가 있었던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바람에 흔들리던 풀들이 슬슬 자라는 것 같더니 금세 아가 키만큼 커졌다. 그러다 그러다 아가도 양들도 풀들이 덮어 버릴 것 같았다. 이유 없이 무서웠다. 아니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여러 말이 양들 중 한 마리가 유독 입을 유난히 실룩거리면서 오물거렸다. 계속 오물거렸다. 앞으로 돌출된 턱과 입을 쉴세 없이 계속 움직였다.   


그 양 옆으로 또 다른 양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다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키가 커진 풀들을 뜯기 시작했다. 풀을 물고 턱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듯 약간 돌리면서 비틀어 뜯었다. 가만히 지켜봤다. 누군가의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숨죽여서. 양들은 뜯은 풀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그냥 목구멍 속으로 쑤셔 넣듯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털이 새까맣게 얼룩얼룩한 양들도 여러 말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더니 한꺼번에 풀위로 하나둘씩 양들은 눕듯이 주저앉았다. 배를 풀밭에 깔고 앉은 양 옆으로 다른 양들이 다시 배를 붙이고. 그 위에 다시 다른 양들이 배를 올리고. 흡사 양들이 풀밭에서 레고 쌓기 놀이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픽 웃었다. 살찐 달마시안인 것 같아서. 그런데 그렇게 뭉쳐 있는 뒤쪽으로 파란색 울타리가 스스슥하고 나타났다. 누군가가 크레파스를 가지고 쭈욱 하고 선을 그어 그리듯이 금세 생겨났다.


울타리 넘어에서는 얼굴 없는 사람들이 건초를 들고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양들한테 마구마구 던져 넣어주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 혼자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얘들도 제들처럼 파란 울타리 밖에서 풀을 뜯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지?'라고. 그런데 사실 난 양 떼들보다 울타리 너머에 있는, 언덕 뒤쪽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더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또 혼자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쩌면 울타리 안 언덕, 여기가 자기 집인 양들은 오히려 자기들을 구경하러 온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제야 울타리를 넘어 멀리 눈을 돌렸더니 울타리는 서너 개 정도의 산능성이에 작은 원과 큰 원을 만들면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양들이 쉬는 축사 같은 집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집들은 몽땅 동그랗게 생겼다. 지붕은 새하얗고.


그 광경을 보는 내내 그냥 기분이 좋았다. 몸은 가벼웠고 누군가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참 했다. 발가락 끝, 겨드랑이, 목덜미로 기분 좋은 바람도 살살 불어 올라왔다. 아, 아가는 어디로 갔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맞다. 아가를 따라 여기를 왔는데. 여전히 주저앉아 있던 양들이 내 생각이 들였는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어느 한 마리도 입을 오물거리는 걸 멈추지 않은 채. 무서웠다.


아, 뭐지 하는데 하늘이 갑자기 검게 그을린 듯 시커먼 먹구름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그 넓은 풀밭 위를, 양 떼들 사이를, 울타리를, 사람들 사이사이로 뛰었다. 신발을 신은 것 같지 않다, 는 생각을 잠깐 하면서. 폭신했다. 발아래 구름이 있는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뒤를 돌아봤다. 양 떼들이 나를 따라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더 빨랐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웃는 것 같았다.


이 언덕, 저 언덕을 마구마구 날아다니듯 달렸다. 아, 오늘 쫌 좋은데 하는 순간. 즈윽... 이잉... 즈윽.... 이잉.... 즈윽... 이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뻐엉... 뻐엉... 뻐엉...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순간 온몸이 짜릿하게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까슬까슬한 풀들이 얼굴을 살살살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휴대폰 알람이었다. 침대 헤드보드에 기대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 꿈이었구나. 개꿈, 아니 양꿈.



--------(한 줄 요약)

참 오랜만에 꿈을 꿨다. 풀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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