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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11. 2023

糖糖할래? 堂堂할래?

[라이브 다이어리] 5_사진:YONHAPNEWS

얼마 전. 일이 있어 들렀던 한 학교.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여중생들이 자판기 앞에서 모여 있었다. 여느 곳에서 볼 수 있는 흰색 바탕에 파란 물결이 그려져 있는 이온 음료 파는 흔한 자판기 앞에. 뭐 흔한 장면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차 안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판기는 건물 입구 옆에 세워져 있었고 거물에서 덧댄 지붕이 간신히 자판기만 가릴 정도로 짧게 덮여 있었다. 가랑비를 다 맞으면서 그냥 모여 있는 네댓 명 무리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직업병중 하나다. 교복이나 체육복을 입은 10대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관심병이. 몇 분을 그렇게 차창밖으로 보고 있었다. 


창문에 빗방울이 조금씩 더 많이 흘러내렸다. 그러는 동안 신기한 건 아무도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지 않았다. 사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휴대폰을 꺼내 자판기를 찍고 있었다. 마치 새로 전학 온 잘생긴 남학생들 대놓고 들여다보듯이. 한참이 지나 지인이 나왔다. 그 장면을 이야기했더니 그런다. 자판기가 설치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고. 그래서 자판기 자체를 신기해한다고. 물론 그 자판기에는 탄산음료는 없다. 2008년 이후 학교 내 설치되는 자판기에서 탄산음료 판매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납품업자들의 요구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15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정책이다. 


정부가 규정한 비만 유발 식품은 탄산음료 외에 패스트푸드, 라면, 튀김류 등이다. 특히, 탄산음료는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주변 200m 이내에서도 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지금 추진 중이다. 이유는 단 하나. 다 알지만, 상식이지만 마약처럼 중독되어 버린 탄산음료에 들어 있는 당류 때문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당류가 탄산음료 외에도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자, 젤리, 초콜릿, 케이크는 물론이고 더 자주 섭취하게 되는 일반 음식들도 단짠 아니면 맵단짠이다. 물론 수도승이 아니고서야 적절하게 맵고 달고 짠 음식들은 몸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는 건 상식이다. 


적절한 당 섭취는 세로토닌을 분비해서 기분을 좋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적절한 소금은 설탕 대신 음식을 더 달게 만들어 준다는 건 수십 년 동안 먹고살아 본 삶의 지혜이다. 적당하게 매운 음식을 섭취하면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진통 효과와 쾌감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마찬가지. 사는 게 다 그렇지만 항상 적절한, 적당한 빈도와 양 조절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10대들은 태어나보니 휴대폰이란 게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입으로 들어가는 거의 모든 것들이 맵단짠의 조화 아니면 음식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교과서에만 본 제비를 일부 유초등학생들이 전설 속의 동물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처럼.    


 공부하느라 잠이 부족해지면 단 음식이 더 당기고, 단 음식을 자꾸 먹으면 몸에 좋은 음식은 밋밋해져 안 먹게 되고. 몸에 수분이 부족해지면 짠 음식이 더 당기게 되고. 그 염분을 물로 희석해야 하는데 다시 탄산음료를 찾게 되고. 요즘 애들이 어른들보다 할게 더 많다고, 나때보다 대학 가기 더 힘들어졌다고, 고생 많다고, 안 돼 보인다고 내버려 두고. 그렇게 지나고 나서 보니 공부도 뭐 딱히 그럭저럭이고. 슬픈 악순환이 이미 시작된 거다. 우리 집에도 10대가 있다.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어서 하는 말이다.  


요즘 주변에서 탕후루 가게를 자주 보게 된다. 우리 집 10대처럼 집에서도 만들어 먹는다. 그 신선한 과일을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굳이 거기에 국자를 태워가며 설탕을 녹여 냉동실에 넣었다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면서 눈까지 감는다. 우리 집 10대처럼 집에서 탕후루를 만들다 화상을 입었다고 학교를 대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는 뉴스기사를 읽었다. 후속 기사들을 찾아 읽어보니 진위 여부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 처음의 황당한 마음이 조금은 옅어졌다. 어쩌면 지금의 10대들의 탄산음료가, 탕후루가 우리 10대 때의 병 사이다, 달고나일지도 모른다. 


지금 10대들이 50대, 60대가 되었을 때는. 손자들이랑 2박 3일 여행을 가서,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탕후루 제작 시연을 해 먹이면서 라테는 말이야를 외치고, 손자들에게 엄지 척을 받으면서 몇십 년 전의, 지금의 자신을 회상할지도. 지금 서른이 된 조카는 맥주를 못 마신다. 맥주에 들어 있는 탄산을 목으로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탄산음료를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치키, 피자, 햄버거를 엄청 즐기지만. 지금은 이민 간 나라에서 아예 주식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런데 옆에서 몇십 년을 지켜보면서 원인은 단 하나다. 처형이다. 체대를 나온 처형은 몸이 재산이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다. 지금도. 조카를 키우는 동안 스스로 탄산음료를 먹지 않았다.


나는 이미 글렀다. 타임슬립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니까. 하지만 우리 집 10대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 는 믿음으로 건강한 20대, 30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다 나 때문이니까. 어느 집에서나 그렇듯 어릴 때 맥주를 마시는 나를 보면서 자주 그랬다. 나는 뭐 마셔? 어른들 술 대신 나는 탄산음료의 공식이 국룰처럼 되어 버린 거다. 사는 게 팍팍해서 그것 좀 잊을라고, 너무 즐거워서 그것 좀 티 낼라고 그랬지만. 그때는 다 이유가 있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어린 우리 집 10대에게는 그 이유란 게 다 핑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주 예민해지고, 복통을 달고 살고, 걷지 않으려고 하는 걸 보면서.  


어제도 아내와 우리 집 糖糖한 10대 이야기를 했다. 탄산 덜 마시게 하기 전에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기, 매일 산책 나가면서 함께 나가는 횟수 늘리기, 엄카 아카로 당류를 구입하면 용돈에서 차감하기(그랬다. 가만히 보니까 자기 카드로는 아직 과자, 젤리, 케이크 류 등을 구입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고 아내가 코치해 줬다. 다행히 아직 혼糖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는 말을 하면 나이 든 거 맞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사람은 밥값을 해야 한다. 먹은 만큼 움직여야 한다, 는 옛말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손을 잡고 나가야겠다. 자주. 얼마 안 지나면 혼자 그 순환 고리를 다 감당해야 할 따님에게 좋은 평일 루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한 줄 요약)

미안하니까 아빠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안돼어 보인다 대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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