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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12. 2023

화분을 키우면 좋은 점 1

[풀하우스] 19

책.임.


물을 줘야 한다. 햇빛을 쬐게 이리저리 옮겨 놓아야 한다. 환기를 적절하게 시켜야 하다. 잡초를 뽑아줘야 한다. 화분을 바꿔줘야 한다. 커가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항상 바로 잡아 줘야 한다. 골든 타임을 놓치면 그 모양이 된다. 가느다란 지지대. 때로는 꽤나 거창한 거치대를 활용해야 한다. 책임감은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 생각을 실천하게 만든다. 그 실천덕에 다시 나를 고쳐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화분은 나의 태만한 고집을 살짝살짝 흔들어 준다. 데리고 왔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보고 싶으면 언제나 볼 수 있게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고 알려준다. 항상 그 자리에 내가 먼저 흥분하고, 내가 먼저 좋아하던 그 모습으로 언제나 딱 그렇게만 있어하는 생각, 은근히 강요하는 습관을 버리게 해 주는 게 화분 속 생명들이다.  




감.동.


일어날 때 잠자리에서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지만 제일 어려운 자그마한 동작중 하나. 눈뜨기. 떴다 감았다는 안된다. 완전하게 말끔하게 상쾌하게 온전히 뜨기. 그래야 그다음에 귓불도 만지도 기지개도 켤 수 있다. 그래야 몸을 뒤집어 코브라 자세로 허리를 시원하게 펼 수 있다. 한번 할걸 두 번 하고 그렇게 다섯 번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물양치를 하고 따듯한 물 한잔을 마시면서 어김없이 나를 옮겨 준다. 창문 틈에 조르륵 살아 있는 화분들이. 밤새 일어난, 나만 아는 아주 아주 자그마한 변화, 성장이 매일 그 시간마다 일어나는 최초로 목격하는 내가 된다. 어제와 꼭 같은 하루는 한 번도 없다, 는 걸 그 새벽에 증명하는 방법, 그게 화분 속 생명들이다. 물론 그 덕에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생각이란 게 올라오지 못하도록 내 몸에만 집중하는 연습이 충분히 되는 건 덤이다. 




연.결.


온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사람도, 길도, 생각도, 행동도, 글도. 실시간으로 연결된 모든 것들은 엄청난 영향을 주고받는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전쟁에 우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로 끝이 나지 못하는 세상이다. 슬픈 마음에 긴급구호 전화번호를 누르면서 그 마음을 보태려 한다. 화난 마음에 댓글을 쓰면서 그 마음을 덜어내려 한다. 산책로는 물론이고 모니터 옆, 화장실 선반, 발코니 창틀에 올려놓은 크고 작은 화분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자신의 뿌리가 내려간 그만큼만 움켜쥐고, 주어진 크기만큼만 움켜쥐고 매일 조금씩 달라지려 하면서 살아낸다. 이기고 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는 건 고작해야 사람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온 세상의 모든 입구와 출구는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화분 속 생명들이다. 




표.현.


세상사, 인간사 아름다운 결론은 아주 오래된 미래다. 별거 없다. 표현하는 것. 그게 사랑이다. 물론 표현의 포인트는 타이밍이다. 인생이 타이밍이듯. 마침 그때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 듯. 있다 해야지, 내일 해야지 말고 지금 바로. 뿌리만 살아 있으면 조금 늦게 물을 줘도 살아날 수 있다, 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 버겁게 살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아쉬움 절반, 미안함 절반, 그리움 반을 합쳐 자그마한 화분 크기만큼이라도 마음을 내어야 한다. 자그마한 한 장의 메모가 세상을, 우리를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지나 봐라, 화려하건 밋밋하건 표현하는 방식은 덜 중요하다, 고 매일 조금씩 조금씩 알려 주는 게 화분 속 생명들이다. 





-------(한 줄 요약)

오늘도 '같이' 안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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