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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6. 2021

나도 죄수처럼

잘운잘(잘먹고운동하고잘듣고)

  오늘 저녁에는 아내와 같이 끼니를 준비했습니다. 아내가 오징어 뭇국을 끓이는 동안 애호박된장덮밥을 만들어봤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냉장고에 사다 놓은 식재료는 다 먹고 사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요 며칠은 계속 호박 요리입니다. 하지만 언제 먹어도 달콤하고, 건강해지는 재료입니다. 말캉거리는 식감도 좋고, 소화에도 좋고, 만들기도 번거롭지 않고 말이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애호박된장덮밥은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해주던 메뉴입니다. 그때는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지만. 집된장을 넣어 자박자박하게 끓여 걸쭉한 애호박 두부찌개였습니다. 거의 국물이 없이 자작자작. 맞습니다. 그래야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아도 먹다 보면 알아서 덮밥으로 만들어 먹었으니까요.


  애호박된장덮밥를 만들기 위한 식재료는 간단합니다.

 - 애호박 1-2개(작은 건 2개, 큰 건 1개 정도), 양파 1개, 대파 1 뿌리, 홍고추 1개, 표고버섯 2-3개, 다진 마늘 2큰술, 된장 3큰술, 맛술 2큰술, 매실청 2큰술, 쌀뜨물 종이컵으로 서너 컵, 쌀가루(또는 전분가루) 1큰술, 보리새우 약간, 참기름 1큰술, 들기름 1큰술

1. 애호박, 양파, 대파, 홍고추, 표고버섯을 큼직하게 썰어서 올리브유와 들기름을 넣고 센 불에 볶아줍니다.

2. 애호박 살이 살짝 노랗게 변하면 쌀뜨물을 넣고, 된장을 풀어서 끓여줍니다.

3. 애호박이 물컹해지면 맛술, 매실청, 다진 마늘, 쌀뜨물에 쌀가루 풀어놓은 물을 넣습니다. 그리고 보리새우와 참기름을 넣어서 다시 한번 끓여줍니다. 여기서 불을 약간 줄여주세요.

4. 자작해질 때까지 더 끓여줍니다.

볶고 끓이는 시간이 대략 10-15분 정도이면 됩니다. 참 맛있었습니다. 저는. 아내는 된장 들어간 음식은 일단 비주얼은 포기해야 한다며, 살짝 맛을 보더니 순간 눈으로 먼저 이야기합니다. '애썼어. 그런데 살짝 비려'라고. 내가 어쩌다 한두 번 끼니를 준비하는 거였다면 참고 먹었을 텐데 합니다. 아마도 보리새우가 원인인 것 같다고 진단해 줍니다. 살짝 새우 향이 느껴졌는데, 싫지는 않은 맛입니다. 다행히 아내가 시원하게 끓인 얼큰한 오징어 뭇국 덕분에 저는 두 접시를 비웠습니다. 아내가 보리새우를 넣지 않고 만들어 보라고 격려해 줍니다. 음식 만들기는 슬픔을 밀어내는 건강한 방법 중 하나라는 확신이 드네요.






  아내와 딸을 태워다 주고 오후 3시가 다되어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들어오면서 자전거를 탈까, 달리기를 할까 잠깐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달리기로 결정을 했지요. 제가 생각할 때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컨디션 체크입니다. 내 몸에 집중하는 겁니다. 내 몸 바깥에 집중을 하면 몸에 무리를 주는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운동, 숙제처럼 하는 운동 말입니다. 오로지 자기 몸에 집중하기. 가장 중요한 운동방법입니다.

  집에서 나와 몇백 미터 떨어져 있는 산책로까지 움직일 때 몸을 최대한 풀어주면서 이동합니다. 천천히 몸을 덥히면서 말입니다. 오늘 달리기는 1 코스만 뛰었습니다. 목요일부터 묵직했던 머리 덕분에. 내가 혼자 만든 1코스는 약 5km 정도 됩니다. 오늘은 그 길을 31분 정도에 달렸습니다. 가끔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는 게 의미가 더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목요일부터 묵직했던 머릿속 때문에. 슬픔을 마음껏 슬퍼할 수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될 테지만. 살다 보면 그게 분명히 밥 먹는 것보다는 어려운 일이더군요.  






  오늘은 내 마음에 집중하려고 애썼습니다. 애호박을 썰면서도, 된장을 풀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노래를 들으면서도, 달리기를 하면서도. 심지어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슬픔은 밀어낸다고 밀려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말도 똥도 묵혀두지 말고 적당히 토해내야 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며칠 동안 아내가 나의 슬픔을 안아줬습니다. 토닥여줬습니다. 같이 울어줬습니다. 내일은 월요일입니다. 그래요, 출근해야 합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가끔, 아니 자주 그러는 것처럼. 잘 먹고 운동하려고 애쓰는 이유가 모두 그것 때문이니까요. 그것뿐이니까요.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 '삶을 견디는 기쁨'. 몇 해전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바로 구매'했다. 헤세는 나한테 이런다.


"낮 시간을 살아가면서 하늘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하루 동안 기분 좋고 생기 넘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 일터로 향하면서 좋은 글귀를 읊조리거나 콧소리로 아름다운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죄수는 도처에 널린 화려한 아름다움과 달콤한 유혹에 심신이 지쳐 있는 사람보다 마음속 깊이 아름다운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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