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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7. 2021

빨간 날 다음에 출근하기 힘든 이유

  연휴가 끝나고 출근 하기가 무척 힘들다. 솔직히 싫다. 짧지 않은 연휴였다면 더더욱. 출근일이 꼭 월요일이 아니더라도. 월요일보다는 주말권인 목요일 출근이 조금 덜 할 수는 있지만. '출근하는 게 어디야',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게 행복한 거지'. 이렇게 스스로 생각이 들면 문제없다. 혹시 출근하는 꿈을 꿨는데도 행복하면 무슨 걱정이랴. 그날 아침밥이 꿀맛이면 더더욱.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들은 그렇게 초월적이지 못하다. 개인차는 있지만 출근하는 자체가 피곤하다. 마음이 먼저 요동치면, 몸의 반응이 뒤따라 오기도 한다. 자꾸 연휴 첫날부터 복기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복기는 양적인 복기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과는 후회로 점철된다. '하루만 더'를 외치기만 할 뿐. 만약 출근하기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심호흡하고 흥얼거리면서 스트레칭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출근에 직면시킬 수 있으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일 거다. 나이, 경력에 관계없이 앞으로 큰 사람이 될 게 분명하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출근이 왜 싫은지. 그냥 싫다는 내면의 울림에만 집중했지, 우리는 한 번도 연휴를 제대로 돌아보지를 않았었다. 질적인 복기 말이다. 






  우선 연휴 시작 전날 밤. 늘 보던 경비아저씨한테 더 크게 인사를 하면서 퇴근을 했다. 퇴근 전에 마트에 들렀다. 이것저것 샀다. 다시 나오기 귀찮아서. 그러는 중에 기분은 들떠 있다.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꾸 잘못 걸려 오는 전화도 친절하게 끊을 수 있다. 이 기분 깰 수 없다. 평소에 하지 못하던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늦게 잔다. 평소처럼 출근을 염두에 두고 잠들듯이 하는 행위를 스스로 저주한다. 그냥 잠들어버리면 빨간 날 하루를 통으로 날릴까 봐 아깝다. 마치 설 전날인 섣달그믐 날 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말을 실천하듯이. 밤 11시에 잠들던 사람이 자정을 넘겨 1시, 2시까지. 특별히 무엇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가 좋기 때문에. 

  이제 작은 문제의 시작이다. 이럴 때는 보통 먹는다. 달고 짜고 매운 것들이 당긴다. 내 안의 내가 온몸으로 요구한다. 그러면 평소에 야식을 즐기지 않다가도 속으로 너그럽게 '치팅데이'라고 외친다. 옆에 있는 이들의 '왜 그렇게 살아'라는 눈빛에 알아서 격앙되면서. 그렇게 첫날밤을 보낸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 날이다. 연휴 첫날. 일어나서 보니 딱 브런치 하기 좋은 시간이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마음은 깃털 같다. 잠시 머뭇거린다. 그러다 생각한다. '출근 대신 브런치'라며 내 안에서 환호한다. 나도 브런치 정도 사며 사는 사람이라고 자부까지 한다. 이런저런 브런치 메뉴를 찾아본다. 호텔 조식 먹듯이, 오래 앉아, 여유를 만끽해 본다. 비록 메뉴는 호텔식이 아니더라도. 어쩌다 브런치 메뉴를 직접 만들어 보면, 자동으로 허밍 허밍 하고 엉덩이가 씰룩거린다. 손가락으로 비트에 호응한다. 노래 가사가 다 내 이야기다. 역시 노래는 비트보다는 가사라고 다시 한번 확신한다. 






  지금까지는 여행 계획이 없을 경우에 대한 이야기다. 여행이 있을 경우에는 별도로 길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지 싶다. 연휴 전날 늦게 잤지만, 출근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났겠지. 평소에 가보지 못한, 집 근처를 벗어나고 싶어 먼길을 잡았겠지. 바리바리 짐을 차에 태우겠지. 그 짐을 미리 싸느라 더 늦게 잤겠지. 신나는 마음으로 출발했겠지. 이제부터 막히겠지. 도착하면 사람 가득, 자동차 그득이겠지. 내돈내산 외쳐봐도 어째 손님 대접 잘 못 받는다 생각 들겠지. 그러다 내가 옹졸한 인간이구나 싶어, 떨쳐 버리려 애쓰겠지. 마음 쓰겠지. 신경 쓰겠지. 예상보다 돈은 더 많이 쓰겄지. 그래도 볼 건 보고, 먹을 건 먹어야 하니까, 식구들 일찍 자라고 다그치겠지. 아침에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그러면서 식구들 사이가 살짝 벌어졌다, 만났다 하겠지. 차만 타면 다들 졸겠지. 나도 졸리는데. 어디를 지나가는지도 모르겠지. 어디를 갔다 왔는지도 기억을 못 하겠지. 그것들이 어린 10대들이라면 더더욱. 그나마 조수석에 앉은 내 짝꿍만 나를 위해 졸음을 떨치려 애쓰겠지. 그걸 보다가 그냥 자라고 하고 싶겠지. 그런데 이미 잠들었겠지. 같은 패턴이 며칠 반복되겠지. 집으로 돌아가아할 날은 화살처럼 오겠지. 여유 있게 출발하자, 최대한 늦게 가자 몇 안 되는 식구들도 의견 분분이겠지. 어찌 되었건 출발하겠지. 그때부터 막히겠지. 아주 늦게 출발하면 그만큼 잠 못 들겠지. 일어나 출근해야겠지, 억지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또 한 가지가 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활동들. 그거다. 날씨만 받쳐주면 설악산 칼바위 정도는 올라가야 할 것 같다. 9홀을 두 번쯤은 돌아야 할 것 같다. 비가 와도 운동장을 빌린 김에 축구를 오전 오후 2-3게임은 해야 할 것 같다. 마음만은 손흥민의 심장으로 뛸 수 있을 것 같다. 오전에 테니스를 치고 낮술 한잔 해야 할 것 같다. 풀코스는 무리더라도 하프는 뛰어야 할 것 같다. 2회까지 밖에 못 본 TV나 동영상을 16회까지 한꺼번에 몰아봐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손해보지 않을 것 같다. 아깝지 않을 테다. 내 마음과 줄어드는 시간에 쫓기면 자기 몸상태를 잘 체크하지 못할 수 있다. 자주 걸었어야 뛸 수 있다. 5km를 뛰어봤어야 10km가 가능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웨이트를 어느 정도 했어야, 꾸준했어야 한참을 서있어도 순간적인 힘을 써도, 있는 힘을 다해 따라 올라가도 무리가 덜하다. 

 적당히 자고, 먹고, 쉬었다 나와도 빨간 날 다음 날은 무조건 힘들다. 현대인 자체가 일과 놀이를 분리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몸이 기억하는 피곤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몸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다한 행동들을 몰아치듯이 하게 되면 어떨까. 빨간 날 때문에 자칫하면 몸과 마음에 빨간 신호가 올 수 있다. 내 몸을 먼저 챙기자.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자. 그리고 진짜 쉼을 연습해 보자.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제대로 쉬는 연습.

 모두가 이번 생은 처음이지만, 삶이란 건물은 순간순간의 연습과 실천으로 만들어진 벽돌이 하나하나 쌓여가서 완성될 테니까. 빨간 날 다음 날에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은 나날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기를 스스로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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