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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8. 2021

나는 그렇게, 갑자기 달렸다

  2018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휴일이었다. 꾸물거리는 날씨에 몸은 지푸둥. 혼자 산책을 나갔다.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 오른쪽으로 걸었다. 붉은색 벽돌이 바닥에 깔린 인도. 산책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 거기서부터 나의 산책로는 시작된다. 어제처럼. 내려가면 자그마한 개천 옆 붉은빛 자전거길 옆으로 산책로가 나란히 이어져 있다.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책로는 색이 바래서 옅은 초록빛이다. 그 초록길은 운동화와 만나면서 말캉하게 푹신거렸다. 어느 부분에서는 살짝 물컹거리는 느낌도 있었다. 그렇게 20여분 정도 걸었다. 뒤꿈치부터 발가락까지 천천히 닫는 걸 느끼면서. 허벅지 속 잔근육이 반복적으로 꿈틀거렸다. 종아리 속에서도.




  낮인데도 어둑한 다리 밑에서 산책로는 끊겨 있었다. 작년에 공사를 완료해서 지금은 산아래 아파트 단지 뒤 숲 속까지 연결되어 있지만. 오던 길로 다시 몸을 돌렸다.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먹구름 아래였지만 한여름이어서 습하고 더웠다. 그런 날씨 속에서 몸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덥지 않고 따뜻한 느낌. 반팔, 반바지였지만 어깨에서 목덜미로, 겨드랑이 아래로, 허벅지 안쪽으로. 따뜻하게 덥혀진 깃털이 쓸어내리고, 올리기를 아주 천천히 반복하는 것 같았다. 순간, 몸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내 몸 구석구석에서 엔도르핀이 쏟아져 나와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달리고 싶어졌다. 그냥 갑자기.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되돌아 내려와 돌다리를 건너 개천 반대편 산책로로 넘어갔다. 심호흡을 한번 한 후 그냥 달렸다. 군데군데 헤져 있는 옅은 초록길을 밟고 달렸다. 어느 정도 달렸을까. 발목이 불편했다. 뒷발을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발목이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초록길의 폭신함 때문이었다.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초록길과 자전거길 사이를 구분한 잡초 길. 그 부분을 넘어서 진갈색 자전거길로 발을 옮겼다. 한결 편안했다. 내 발목을, 무릎을, 허벅지를 믿고 내딛을 수 있었다. 조금 더 달렸다. 이번에는 반바지 속 휴대폰이 덜렁거렸다. 허벅지를 때리면서 자꾸 반바지를 끌어내렸다. 자전거길로 내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을 꺼내 손에 잡고 달렸다. 나 휴대폰 있어요 하듯이.




  그렇게 아주 한참을 달렸다. 그런데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갔다. 가끔은 나를 힐끔거리면서. 맞다. 나는 달렸다. 분명히 걷지는 않았지만, 빠르게 걷는 사람들보다는 느리게. 걷기(walking)와 달리기(running) 사이. 닝(walnning) 정도였겠다. 중간중간에 자전거가 훽하고 스쳐갔다. 스피커에서 크게 울리는 노랫소리, 자자작 거리며 바닥에서 튕기는 자전거 타이어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초록길과 자전거길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하면서 나는 달렸다. 그렇게 처음. 달리기 어플도, 휴대폰용 허리 밴드도, 음악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런데 달리면 달릴수록 내 심장이 어디 있지 싶었다. 숨이 하나도 차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마스크를 하고 뛰지는 않았지만. 배도 아프지 않았다. 내 몸안의 어떤 장기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 움직임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다 첫 달리기에서 풀코스를 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음만은.

  



  지금 보니 그렇게 갑자기 달린 그날은, 달린 거리가 10km가 약간 안되었다. 지금처럼 손목밴드 어플로 측정하는 나만의 코스를 보면 그렇다.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동안. 어떻게 뛰었나 싶다. 10km라는 거리가 아니라, 90분 동안, 한번도 멈추거다 걷지 않았다는 자체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몸의 근육이 난리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일주일간. 뛰는 건 고사하고, 걷기조차 쉽지 않았다. 변기에 앉았다 일어나는 자체가 스쿼트였다. 그래도 억지로 나가서 걸으면서 근육을 달래줬지만. 그렇게 달리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가버리는 것 같았다. 과도하게 흥분한 한 번의 열정처럼. 그런데 2주가 채 되지 않았을 무렵, 근육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천천히,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들어갔다. 그렇게 달리기는 나에게 찾아왔다. 대단한 계획과 연습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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