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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30. 2021

달리기를 위한 준비

  걷다가 갑자기 달린 2018년 이후 달리기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달리는 횟수는 일주일에 1-2회. 주중에 1회 또는 금토일중에 1-2회. 아주 밤늦게 퇴근하는 날이 아니라면 가끔은 가랑비에도 달리러 나간다. 물론 꾀가 날 때는 달리는 척 걷기도 하면서. 나와의 자연스러운 타협이다. 러닝보다는 워킹에 가까운, 킹(runking) 정도 되겠다. 그렇게 그냥 동네에서 혼자 달린다. 달리다 보니 달리기 = '마라톤 준비'라는 게 공공연하다는 것을 아름아름 알게 되었다. 하기야 동네에서 혼자 달리다 보면, 공식적으로 공인받으면서, 구간을 달려보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마라토너가 아니다. 동네에 흔하디 흔한 그냥 달리는 사람. 동네 아저씨 러너다. 당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달리지 못한다. 매일, 두세 시간씩, 이삼십km를. 나는 그렇게 달릴 수 없다. 무엇보다 그렇게 달릴만한 시간이 없다. 출근해야 하고 퇴근한 후 비는 시간에 잠깐 달려야 하니까. 그러는 와중에 잠깐의 욕심이 올라왔었나 보다. 여기저기 사이트를 알아보니 마라톤 대회도 동호회도 무척 많았다. 그러고 보니 달리는 동안 무리 지어 달리는 범상치 않은 사람들을 가끔은 본 것 같다. 유니폼도 다르고, 뛰는 것 자체가 달랐던 마라토너들. 멋져 보였지만 절대 부럽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다 어느 마라톤 대회에 신청을 해버렸다. 코스는 10km 구간. 대회명은 '계란 마라톤 대회'. 계란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였다. 러닝백이 사은품이고 완주자한테는 계란 한 판을 덤으로 준다고 했다. 그래서 신청한 건 아니다. 열정이 욕심으로 변질될 그 무렵, 2019년 가을에 대부분의 마라톤 대회가 매진(?)이었기 때문이다. 주최 측에서 대회날 며칠 전에 소포가 왔다. 러닝백, 백넘버, 띠지, 설명서가 들어 있었다.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처럼 생긴 띠지가 중요하다고 설명서에 빨갛게 쓰여 있었다. 이 띠지를 러닝화 끈 위에 동그랗게 만들어 걸어야 한다고 했다. 이 띠지로 공인 시간이 체크된다고 했다. 신기했다. 러닝화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한강 고수부지를 찾아갔다. 이미 수많은 마라토너 - 나 같은 동네 아저씨 러너는 없는 것 같았다, 내 느낌에는 분명 - 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멋있었다. 유쾌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온 듯했다. 서로 인사를 하고, 파이팅을 외치고, 사진을 찍었다. 

    얼마 뒤 출발선을 내달렸다. 한강변을 달렸고, 하늘도 참 맑았고, 바람은 너무 좋았지만 몰랐다.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달리는 동안 오로지 나한테만 집중하면서 달리려고 노력했다. 쉽지 않았지만. 엄청난 속도의 사람들이 지나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정도 달렸을 때는 벌써 반환점을 돌아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엄청난 자극은 되었지만, 헛된 욕심을 버렸다. 내 능력이 안되니까, 그냥 나한테만 집중하면서 달렸다. 출반선을 두번째 통과할 때 왼쪽 커다란 모니터에 찍힌 숫자. 52분 27초. 나의 첫 공인 기록이다. 10km는 여러 번 달렸지만, 하프는 딱 한번 달렸지만 모두 동네 러너로 비공식으로 나만 체크한 기록. 




  달리기는 특히 그날의 컨디션이 우선이다. 숙제처럼 달려서는 안 된다. 몸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에게는 매일 달리는 건 확실히 무리다. 그건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달리기를 위한 준비의 문제다. 달릴 준비도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달리기는 관절과 근육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나는 원래 홈트족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 중의 하나. 스쿼트 운동이다. 매일 몇개씩이라도 한다. 개수보다는 엉덩이를 쭈욱 빼고 상체를 세우는 자세에 가장 신경을 쓰면서. 한 번에 10개, 20개 정도씩 하다가 이제는 100개 정도는 할 수 있다. 20개씩 다섯 번에 나눠서. 지금은 홈쇼핑에 구입한 스쿼트에 도움이 되는 운동 기구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가장 주의할 건 퇴근하고, 저녁 먹고 소파에 앉았을 때 TV만 바로 켜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못 일어난다. 

  달릴 때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가 러닝 밴드이다. 달릴 때 휴대폰이 흔들리면 오래 달리기 쉽지 않다. 달리기에 집중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암밴드를 사용했었다. 그런데 달리다 보면 팔뚝에서 미세하게 흔들림이 있으면서 땀에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달리면서 쓸어 올려줘야 한다. 또한 휴대폰에 따라서는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허리에 차는 러닝 밴드를 활용한다. 포켓이 여러 개여서 유용하다. 가끔가다가 달달한 사탕 한두 개도 넣어 두고. 휴대폰을 넣고 러닝 밴드를 돌려 뒤쪽 허리에 휴대폰을 위치시키면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물론 밴드니까 오래되면 조금은 늘어지겠지만, 지금 쓰는 건 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쓸만하다. 여기에 달리기 어플, 이어폰, 태클 팬츠, 헤어밴드 정도가 더 준비되어 있으면 주기적이고 규칙적인 달리기에 많이 편리해진다. 




  세상에는 마라토너보다 동네 아저씨, 아줌마, 누나, 오빠, 여동생 러너들이 분명히 더 많지 싶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옷, 음식, 취미 등과 같이 운동 종목이나 방식 역시 자신한테 맞는 게 따로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다른 분야처럼 운동 역시 억지로 흉내를 내면 다친다. 자칫하면 크게 다친다. 신체적, 경제적, 정신적 후유증이 오래갈 수 있다. 뒷산도 안 가는 몸으로 대여섯 시간 넘게 걸어 천왕봉을 한달음에 오를 수도 있다, 는 생각에 동의하던 1인으로서의 고백이다. 선 장비 구입, 후 운동도 지양해야 한다. 어느 정도 해보고, 맞을 때 사야 돈을 절약한다. 안 그러면 베란다 광에 그득그득 쌓였다 당근 마켓으로 이동하게 된다. 분리수거장으로 옮겨놓게 된다. 눈물을 머금고 땡처리하게 된다. 번거롭다. 

  나의 동선, 체력, 생각, 취향 등에 맞는 운동을 찾았다면, 그게 가장 좋은 운동인 것.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지만, 몇 년 지나면서 내 다리로 내 속도에 맞춰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하다. 때로는 피곤하고, 자주 꾀가 나지만, 그래도 나는 달리기가 좋다. 아내와 하는 산책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고, 달리기는 나와 이야기를 하기에 좋다. 우리 서로 달리다 마주 오면 외면하지 말자. 자기탐색 과정을 거쳐서 같은 종목으로 결정한 동지 아닌가. 두 주먹 불끈 지며 소리 없는 파이팅이라도 나눠 보자. 서로의 건강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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