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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30. 2021

점심, 햇살, 동료

잘운잘(잘먹고운동하고잘듣고)

  점심을 챙겨서 출근한 지 5년째입니다. 주로 찐 고구마, 삶은 계란, 야채, 견과류, 치즈, 우유 등입니다. 고기가 당길 때는 닭가슴살 정도 추가하고요. 처음에는 완전 건강식이네요 하며 옆에서 다들 한 번씩 물어봅니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지요. 어디 몸이 좋지 않냐고. 그래서 대답합니다. 태어났을 때보다는 분명 안 좋아졌지 싶다고. 도시락을 처음부터 '완전 건강식이네요'로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일요일 저녁에는 밥을 갓 지어 소분해서 급랭했지요. 일주일치 분량을. 반찬은 김치류 중심으로 넉넉히 미리 사무실 냉장고에 가져다 놓고, 기본 반찬 한두 가지를 더 챙겨 다녔지요. 그런데 그것도 챙겨 다니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웬만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쉽지 않지요.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먹으면 저녁은 더 먹힌다는 데 있었습니다.

  3년 전부터는 이렇게 먹는 게 너무도 편안해서 좋습니다. 당연히 몸도 가볍지만, 머리가 맑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수다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도시락을 싸온 후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으니까요. 가만히 돌아보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게 아마 달리기를 시작하는 무렵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달리기를 할 때 위와 장에 음식물이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음식물이 들어 있는 상태에서 달리면 위경련, 위장장애 등 만성 소화불량이 생길 수 있답니다. 물론 처음에는 달리기 위해 적게 먹지는 않았습니다. 거꾸로 몸이 가벼워지니 달릴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2011년에 독일 출장을 갔을 때 일입니다. 어느 고등학교를 방문했었습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급식실 개념 자체가 없더군요. 그런데 교실에서는 못 먹는다고 하더군요. 냄새나 안전 등의 문제로 말이죠. 그래서 덩치가 저의 배 이상은 되는 학생들이 운동장, 벤치, 나무 밑, 잔디, 시이소오 등에 걸터앉아 락앤락 같은 통에 싸온 음식을 먹더군요. 그런데 그게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제 기준에는. 바나나 반쪽, 당근 익힌 거, 푸르스름한 야채 등. 아니, 저 덩치들이 저렇게 먹나, 싶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으면서 자동으로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난 너무 많이, 잘 먹고 사는구나'하고.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 게 달리기와 함께 독일 출장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되었건 소식하면, 좋은 소식이 있다는 농이 팩트라는 걸 확신하고 사는 요즘입니다.






  아침을 먹고 주차장으로 향하기 10분 전, TV 뉴스를 보면서 스쿼트를 30개 했습니다. 스쿼트 30개는 10분이면 충분하거든요. 그리고 작은 아이와 인사를 나누고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두 다리에 힘이 느껴지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낮에 사무실에서는 중간중간에 가끔 일어나서 서성거렸습니다. 계속 앉아 있으면 왼쪽 손목에 미밴드가 울거든요. '너무 오래 앉아 있으셨습니다'하고. 오늘은 햇살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기에 있기엔 정말 아까운 날씨야,라고 혼자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점심을 먹고 직장 건물 주변을 몇 바퀴 걸었습니다. 오다가다 만난 동료들과 수다도 떨었습니다. 햇살 아래에서 만나는 이들은 다들 낯빛이 참 맑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햇살 아래에서 동료가 말한 고민이 마음에 쓰입니다.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이요. 며칠 전부터는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보다도 서너 살 어린 사람입니다. 그 마음이 내 마음이었던 기억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자주 햇살을 같이 나누면서 맛있는 거 챙겨줘야 하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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