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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30. 2023

고마워요 8일간의 짧은 여행이

[오늘도 나는 감탄 사寫] 7

[4년만에 첫날]

열흘 전에 먼저 들어온 서른 살 조카와 함께 처형, 아드님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쉼 없이 나오는 이들과 한없이 기다렸던 다른 가족들이 서로 안고, 울고 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와 열여덟 따님은 덩달아 울기를 여러 번. 비행기 착륙이 지연된 데다 수화물이 오래 걸려 예정보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매서운 추위가 절정이었다. 4년 만에 언니를 만나는 아내는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고, 그 모습을 보는 울보 따님들(처형딸도, 내 딸도)도 눈물이 주르륵 흘렸다. 그러다 따님은 아드님 뒤를 따라 나온 나 다니엘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지난여름 밴쿠버에 같이 갔을 때 알게 된 말레이시아 유학생. 아드님과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따님과도 알게 된 몸짱의 유쾌한 청년이다. 하룻밤 경유지로 인천을 택했다는데 우연히 아드님과 같은 비행기, 같은 시각이어서 서로 더 놀랐다고. 공항에서 우리 식구들과 함께 뜨끈한 저녁을 먹고, 공항 근처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러는 사이 낯선 번호로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인천 번호였다. 받아보니 대한항공 직원이란다. 그런데 아드님이 챙겨 나온 캐리어 하나가 다른 손님 꺼라고. 그제야 자세히 보니 같은 가방인데 네임택이 다른 거였다. 그래서 아드님은 여권을 들고 한번 나오면 들어가지 못하는 출구 쪽으로 공항 직원과 함께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려 들어갔던 곳으로 다시 자기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그렇게 예정보다 한참 늦게 한파 속에서 얇은 옷에 오돌거리며 집으로 달려왔다.



[4년만에 둘째날](동짓날 저녁)

처형과 조카는 정오 무렵부터 한국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러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늦은 시각까지. 아내와 내가 출근한 동안 남매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뵈었다. 3년 전 유학을 떠나면서 사 먹였던 오리고기 집. 꽤나 비싸고 맛없는 밴쿠버의 냉동 고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한 마리 반이나 먹었더라면서 아버지는 매우 흐뭇해하셨다. 저녁에 퇴근에 엄마가 후루룩 끌어 낸 팥죽을 아내와 먹는 동안 낮에 오리고기 먹은 그 힘으로 안마까지 시원하게 해 주었다고 손주 자랑이 끊이질 않으셨다.



[4년만에 셋째~넷째날]

온 가족 열한 명이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새하얀 머리에 새하얀 커플티를 입고 연신 미소가 퍼진 어머님. 이거 영정사진 찍는 거야라며 뼈 있는 농담을 던진 아버님한테 괴성을 지른 아내, 처남, 처형 세 남매. 그리고 아드님, 따님, 처남에 외동딸, 처남댁. 모두 새하얀 천사들이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신 아버님 덕(?)에 급기야 노란 병아리 딸랑이까지 꺼낸 사장님. 그렇게 열한 명의 천사들이 지금 내리고 있는 눈처럼 소복하게 담긴 사진을 어제 모두 받아봤다. 눈이 시릴 만큼 예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처남이 빌린 펜션으로 생전 처음 1박 2일 가족 여행을 떠났다. 처남과 내가 바비큐도 굽고 온 여든둘부터 열둘까지 거실 한편에 벽난로처럼 설치된 노래방 기기로 어둑하게 반짝이는 시간들을,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처형은 엄마를 부둥켜안고 우는 건지 노래하는 거지 모르게 불렀다. 장인어른은 어머님이 이끈 손을 묵묵히 놓지 않고 불렀다. 열여덟 따님은 현란한 춤솜씨와 노래 솜씨로 박수를 받았다. 초대가수보다 더 노래를 잘하는 처남댁은 모든 가족들의 환호성에 부끄러워했다. 배우 오나라 상대역을 여러 번 했던 키 큰 김밥집 사장님, 처남은 노래도 잘했다. 어머님과 아버님, 처형과 아내의 눈빛들은 빨강, 초록, 노랑, 파랑 불빛에 비춰 촉촉해져 있었다. 촉촉한 눈빛을 보면서 나는 연신 탬버린을 흔들었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하느라 걷지를 못한 나는 잠들기 전, 나의 워치는 펜션 안에서만 만 이천 칠백보를 넘게 걸었다고 위로했다.



[4년만에 다섯째날](x-mas)

점심때는 아내의 주선으로 동생네와 아버지, 엄마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냈다. 샤브샤브를 먹는 동안 동생네 열 살 막내는 아드님 옆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형아가 우상이었던, 말티푸 강아지 눈을 닮은 개구쟁이다. 갑자기(?) 어른이 된 형아 앞에서 더 갑자기 의젓해진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식구들은 또 한 번 웃었다. 형아가 더 놀고 싶은데 헤어져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결국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 숙이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오후에는 40년 지기 친구네와 양꼬치를 먹었다. 친구는 친구네 막내보다 더 어렸던 아드님이 성인이 되어 맥주를 한잔 같이 할 수 있다고 나보다 더 신나 했다.


쓱 사춘기가 오고 있는 중1, 중2 형제들도 형아를 바라보면서 과묵했지만, 눈빛은 오래전 농구를 같이 하던 그때처럼 반짝였다. 결국 스크린 야구를 하는 동안 한 편을 먹고, 노래방에서 아드님이 '오빠 차'로 사춘기 형제들을 다 무너뜨렸다. 음악을 하는 막내는 급기야 그루브를 타면서 아드님과 하이파이브를 하느라 연신 yo~를 외쳐댔다. 찬바람이 부는 인도에서 밤 열 시가 넘은 시각, 아드님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뻐했던 재수씨는 스물한 살 아드님의 볼에 입술을 맞추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가만히 서 있는 아드님 모습이 웃겼다.       



[4년만에 여섯째~일곱째날]

다시 다들 일상으로 돌아 간 사이. 처형과 조카는 여전히 인천, 일산, 서울, 천안을 지하철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두 모녀다. 잠깐씩이라도 얼굴을 보고, 초콜릿 하나라도, 에너지바 하나라도 건네고 얼굴을 보고 다녀와 직성이 풀리는 에너자이저다. 그런 심성이 신성과 함께 더 강해진 게 분명했다. 27일에는 내가 반차를 내고 같이 다녔다. 지하철로 다니는 게 거리의 한계가 있어 보여서. 그렇게 얼추 짧은 시간 동안 만나야 할 지인들을 만나는 동안 덕분에 나는 차 안에서 책도 읽고 글감도 주워 모으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천안에서는 소보루 호두과자도, 춤추는 왕만두도 처음 먹어보고.



[4년만에 여덟째날]

이 날은 내가 연차를 썼다. 처형과 조카, 아드님과 함께 하루 종일 부탁받은 물건을 구입하고, 선물을 사고, 짐을 싸야 해서.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늦은 저녁에 각자의 캐리어에 정성껏 짐을 싸는 동안. 아드님의 안색이. 여권이 없어졌단다. 잘 찾아보라고 하고 다시 짐을 꾸리는 한참 동안에서 여권은 발견되지 않았다. 단출하게 짐을 꾸려 온 아드님 짐에서는 있을만한 데가 없었다. 그때 열여덟 따님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은 입국날. 캐리어가 바뀌면서 다시 들어갔던 그 장소에 놓고 나왔던 것. 그 사실을 전날 알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촉이 빠른 따님 덕에.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국내 연락처가 없었던 아드님의 여권은 계속 인천공항에 있다가 26일에 외교부로 넘어갔다고.



[4년만에 다시 떠나는 날]

예정과 다르게 엊그제 출발하는 날 아침. 그나마 출발 비행기가 오후 6시 20분인 게 다행이었다. 아침 일찍 러시아위를 피해 외교타운 민원실을 찾았다. 아드님 여권은 다행히 거기에 있었고, 아드님이 가지고 있던 여권 사본덕에 여권 실물을 쉽게 되돌려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규정상 분실 여권의 경우 다시 습득 후 24시간이 지나야 효력이 생긴다는 것. 티켓팅하는 항공사 직원의 화면에는 아드님이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절반 넘게 지나간 시각에야 뜬다는 것이었다. 발권 당시에는 분실 여권으로만 조회가 된다고 외교부 담당 직원이 일러줬다. 잘 부탁을 해보라는 걱정 어린 눈빛과 함께 자신의 근무지 번호를 메모해 주면서.


다행히 공항에서 발권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항공사 직원이 외교부 그 직원과 통화를 한번 하는 것으로 발권이 되었다. 그렇게 짧은 8일간의 여행은 4년 만에 만났던 8일 전처럼 눈물바다가 되면서 끝이 났다. 아내, 따님과 나는 몽롱한 눈빛과 피곤함을 함께 싣고 다시 집으로 달렸다. 가족들이 오던 날 보다 훨씬 따듯했지만 미세먼지로 탁해진 공기를 뚫고. 금요일 저녁, 막히는 도로 위를 가다 서다 한 시간 가까이하고 있을 무렵. 처형과 아드님 이륙 시간이 삼십여분 남았을 때. 아드님으로부터 톡이 연신 들어왔다. 보안검색대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그런데 아드님 성격에 톡은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보안검색대에 제시한 아드님 여권을 스캔한 직원이 비상 호출을 했단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나라에서나 보안 검색대 직원들이 가장 살벌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희죽거리거나, 화를 내듯 못 알아듣는 말을 웅얼거리거나. 피곤한 나머지 그 생각을 못했었다. 검색대 보안요원이 보는 화면에 아드님이 제시한 여권이 '분실여권'으로 뜰 것이라는 사실을. 그 직원이 상관을 호출하는 사이, 다른 직원들에게 이끌려 아드님은 별도의 통로로 나가 멀뚱하게 대기했어야 했단다. 책임자가 나왔고,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그 책임자는 어디론가 다시 무전을 하고.   


옆에서 눈을 감고 있던 아내는 아드님에게 보이스톡을 했고, 결국은 그 책임자가 '어차피 자정에는 풀릴 테니 그냥 보내드려'라는 멘트를 옆에서 같이 들을 수 있었다. 8일 동안 780km 넘게 내 차로 함께 달린 밴쿠버 식구들은 시간을 거슬러 어둑한 태평양을 그렇게 다시 날았다. 어제저녁. 7시가 조금 안되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잠이 들었나 보다. 덕분에 저녁도 먹지 않았다. 지금껏 처음이었다. 15시간 내리 잠을 잔 게.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도 해보지 못했던 거라는 생각도 처음 들었다. 아침에, 아니 조금 전 점심때 일어나 보니 온 동네가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입속 혓바늘은 더 늘었는데 마음은 참 평화롭다. 새하얀 눈발을 따라 날아갈 듯. 조금 전에 아내한테 잘 도착해서 다들 잠들어 있다고 연락이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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