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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27. 2021

이번 생이 마지막이니까

  TV를 보다 컴퓨터를 켰다. 아내 덕분에 알게 되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다. '유퀴즈 언더 블럭'. 덕분에 수요일 잠드는 시간이 늦어진다. 컴퓨터를 켜면서 보니 10시 반이 다 되어간다. 10시 반에서 11시 사이에 어김없이 잠이 온다. 이십몇 년간의 교직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습관이다. 그런데 오늘은 더 늦게 잠들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오늘 낮에 기분 좋은 산책을 돌아보고 싶어 져서.  


사실 한 달 넘게 열심히 글을 쓰고 있긴 하다. 다른 종류의 글을. 정해진 내용을 쉽게, 잘 전달하기 위해. 매년 이맘때 반복되는 글쓰기이긴 하다. 하지만 내년 전근을 위해서 올해는 유난히 신경이 더 쓰인다. 과목도, 대상도 달라지는 내년에 사용할 나만의 교재를 만들고 있다. 교과목이 바뀌고, 아이들이 바뀌면, 나는 늘 그런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학습면에서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가 시키지 않지만, 나 스스로 준비하면서 뿌듯하고, 행복해지는 기분은 덤이다. 


정해진 교과서로 가르치는 건 내가 먼저 갑갑하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생긴 병이다. 하지만 나를 지금껏 살아 움직이게 만든 몸에 좋은 고질병이다. 그나마 지금의 나 정도를 있게 만든, 근본적인 원동력이기 때문에. 이십몇 년을 넘게 가르치면서 많은 인생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삶 속에서 내 인생이 여실히 비춰보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위로받는 건 '정답이 없는 인생'을 살아 내는 방법에 대한 귀띔이다. 교과서 속에 갇혀 있는 죽은 지식은 검색을 하면 나온다. 하지만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것들에 대한 조언과 가르침이 더 많이 필요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내가 자그마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할 수 있다는 다짐으로. 다를 그럴듯하게 사는 것 같지만,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힘들어하고, 자책한다.


점심을 먹고 동료가 산책을 하자고 먼저 이야기를 건넸다. 다른 학교에서 이십몇 년을 근무하다 올 한 해를 같은 사무실에서 보내고 있는 동료다. 그 동료는 참 유쾌하고 친절하다. 게다가 독서와 관련해서 아주 유명한 저자이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스타이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늘 존재하는 인싸 같은, 그런 사람. 40분 조금 안되게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낙엽을, 가을을, 달리기를, 산책을 그리고 맛있는 화덕 피자를 이야기했다. 그 사이사이에 그 이가 나를 챙겨보면서 느꼈던 이야기를, 자신의 꿈을, 나의 인생을 이야기했다. 


모든 것에 '대학입시'가 우선하는 10대들의 삶이 정상인 듯 돌아가지만, 매 순간순간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직업을 가진 50대지만, 어린 그들에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를 가르칠 방법이 많지는 않지만, 그러면서 스스로도 '정답 없는 인생'을 넉넉하게 살아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힘을 모으면 좀 더 사람답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웃으면서 세대를 넘어서 서로의 인생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을,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란 확신을 준 동료에게 눈물 나게 고맙다. 


우리는 언제나 이것만 하면 무엇인가 보장될 것처럼 달린다. 하지만 한 발짝 옆으로만 비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내가 남의 인생을 봐주면 더욱 그렇다. 정답이 없는 인생이라는 말이 보장되는 인생이란 없다는 의미라는 걸. 달리고 있는 그 자신만 모른다. 그래서 꼭 이겨야 하고, 합격해야 하고, 남겨야 하는 거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같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면,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면, 잠깐 기대어 쉴 수 있게 해 줄 수만 있다면 달리는 게 덜 외롭고, 힘들 텐데. 


아이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무엇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이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같다. '지금 하고 싶은 게 제일 잘하는 걸 거'라고. 그리고 10년 뒤에도 그 뒤에도 그때 많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도 그때도 '그때 제일 잘하는 걸' 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그런 아이들, 어른들이 뒤섞어 신나는 난장을 펼칠 수 있는 그런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겠다고 산책 끄트머리에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한 번뿐인 인생, 살아 볼만 했다'하면서 눈을 감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어차피 우리 모두는 이번 생이 마지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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