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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Nov 09. 2021

블랙박스만 알고 있다

미안하다, 블랙박스야.

  저는 노래를 곧잘 부른다고 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친구들이. 최근에 만나서 노래를 같이 불러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노래방 에코와 반주 덕분이었지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으로 노래를 부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참 노래를 못하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TV에 나오는 일반인들은 물론, 주변에도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나도 많습니다. 중학생 딸아이가 아빠 탓을 할 정도입니다. 음치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출근 시간에 아내를 내려준 뒤, 목청껏 노래를 부릅니다. 핸들에 손가락을 튕깁니다. 놀고 있는 왼발로 박자를 맞춥니다. 퇴근할 때 업무를 싹 잊을 수 있도록 크게 부릅니다. 그러다 신호대기를 하는데,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좌우를 쳐다봐도,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룸미러 살짝 아래에서 빨간색 REC이 깜빡깜빡거리고 있다는 것을. 블랙박스만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려고 애쓰는지. 블랙박스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시간이 참 즐겁습니다.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가라앉은 목을 축이느라 차 한잔을 마십니다. 매일 아침, 아주 자연스럽게 차 한잔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합니다. 퇴근이 기다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오늘은 무슨 노래를 혼자 배워볼까 고민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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