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블랙박스야.
저는 노래를 곧잘 부른다고 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친구들이. 최근에 만나서 노래를 같이 불러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노래방 에코와 반주 덕분이었지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으로 노래를 부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참 노래를 못하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TV에 나오는 일반인들은 물론, 주변에도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나도 많습니다. 중학생 딸아이가 아빠 탓을 할 정도입니다. 음치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출근 시간에 아내를 내려준 뒤, 목청껏 노래를 부릅니다. 핸들에 손가락을 튕깁니다. 놀고 있는 왼발로 박자를 맞춥니다. 퇴근할 때 업무를 싹 잊을 수 있도록 크게 부릅니다. 그러다 신호대기를 하는데,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좌우를 쳐다봐도,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룸미러 살짝 아래에서 빨간색 REC이 깜빡깜빡거리고 있다는 것을. 블랙박스만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려고 애쓰는지. 블랙박스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시간이 참 즐겁습니다.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가라앉은 목을 축이느라 차 한잔을 마십니다. 매일 아침, 아주 자연스럽게 차 한잔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합니다. 퇴근이 기다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오늘은 무슨 노래를 혼자 배워볼까 고민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