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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Oct 04. 2021

내가 나한테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순간

내 심장을 향해 달려라

 귀한 사흘 연휴 중 이튿날, 하늘이 열린 날 아침이다. 일곱시가 조금 넘었다. 집안 가득 고요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가볍다. 천천히 두 다리를 옮긴다. 물 한 컵 들이킨다. 발을 디딜 때마다 두 다리의 존재가 느껴진다. 제법 탄탄하다. 걸음이 날리지 않고 묵직하다. 거실 창문을 열었다. 바깥에서 힘껏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달려와 안긴다. 기분 좋게 선선하다. 어느새 왔지? 우리 집 '타닥'이가 내 뒤에서 나를 올려다본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파랗다. 이틀 연속이다. 개구쟁이가 흰색 페인트로 붓칠을 하다 내팽개친 것 같다. 밋밋하게 쫙 펼쳐진 구름은 하나도 없다. 몽실몽실, 다 다르다. 달리기만 하면 완벽한 세상이다.  


  아침을 달리기로 시작할 수 있는 날은 덤으로 하루 더 사는 날 같다. 간밤의 요란한 비바람이 있었나 싶게 처마 끝에서 똑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같다. 차분하다. 과하지 않다. 감정이 극적이지 않다. 먼바다에서 밤을 세운 어부가 깊게 잠든 것처럼.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 둔다. 바람이 마음껏 들어와 놀다 가라고. 온몸이 비늘로 덮인 것 처럼 화장실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간다. 고요를 즐기는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해서 움직인다. '너 누구냐'하고 거울을 타박한다. 곧 텁텁한 입속에 치약을 짜넣는다. 짭조름하게 상쾌해진다. 양손에 물을 묻혀 얼굴을 쓸어내린다. 미리 준비해 둔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제, 달려 나갈 준비가 끝났다.


  계단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달려 내려간다. 이틀 연속 달리기는 최근 들어 드문 일이다.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은 반팔, 반바지로 달리는 게 낫지' 싶다. 내 앞뒤로, 개천 건너편 위아래로 걷는 이들,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보인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모두 혼자다. 앞을 보면서 걷는 사람, 고개 숙인 사람, 힐끔거리는 사람, 노래 부르는 사람, 멈춰 서 오리를 구경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하는 사람. 모두 마스크 넘어 눈빛에서 잠을 거두고 나온 각자의 이유들이 보이는 것 같다. 이어폰에서 1킬로 미터라고 한다. 그 무렵부터 오른쪽 무릎에 살짝 통증이 느껴진다. 어제 10킬로 지점에서 느낀 통증이다. 


  첫 1킬로미터 소요 시간 6분 46초. 밥 먹고 달리기만 한 것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화면 안에서 주저앉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달리기는 달리는 날의 컨디션이 전부다. 이전의 희열과 흥분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나 같은 동네 러너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날의 자기 상황에 맞춰 달리는 게 중요하다. 달리기는 그럴싸한 연기가 되지 않는다. 두 다리는 어제보다 무거웠지만, 달리는 내내 마스크 속에서 코로만 호흡을 했다. 들숨과 날숨을 모두 코로만. 호흡이 좋을 때는 근육과 관절의 미세한 통증을 잊을 수 있다. 5'59", 5'41", 5'40". 4킬로미터까지 킬로미터당 소요 시간이다. 6킬로미터-7킬로미터 구간에서 5분 39초로 가장 빨랐다가, 마지막 구간에서 6분 25초. 오늘은 호흡이 나를 끌고 달린다.

 

  인생처럼 달리기도 매 순간이 결정의 연속이다. 아주 촘촘한 결정이다. 달릴지 걸을지, 멈춰 설지를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멈출 때, 달릴 때라고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두 행동 모두 오로지 스스로 결정한다. 자신에게만 아주 아주 집중해서 얻어내야 하는 결정이다. 자신의 속삭임에 익숙해져야만 들을 수 있는 결정이다. 인생의 수많은 결정들 중 그 어떤 것이 이렇게 결정될까. 쉽지 않다. 그래서 달리기는 쉽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는 멈춘다는 것과 달린다는 것은 같은 행위이다. 인생 속 수많은 결정과는 다른, 달리기가 주는 위로이다. 그런 면에서 달리기는 내 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자신에게 솔직해도 된다고, 격려해주는 성스러운 의식 같다. 언제나 달려도 괜찮고, 어떻게 멈춰서도 괜찮다고. 


  당장이라도 멈추고 싶고, 금방 주저앉고 싶고, 어딘가로 숨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출근하다가 신호가 들어오면 직진하지 말고 우회전하고 싶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 길로 들어서고 싶다. 그러나 괜찮다. 힘들어서, 재미를 못 느껴서, 보람이 사라져서, 그냥 지쳐서 그렇다. 다 괜찮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말이 위로가 되는 거, 그거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오늘 아침이 쌓여 월급날이 되고, 올해는 작년보다 좀 더 철이 든 것 같으면 행복한 인생이다. 선선한 바람이 달려와 안아주는 걸 느끼면, 아무 데나 걸터앉아 따듯한 차 한잔 마시는 게 고맙게 느껴지면, 꽤 괜찮은 인생이다. 언제나 한 장의 사진이 내 앨범의 시작이고,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건축물속 벽돌 한 장이니까. 


  달리기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한참을 '생각'으로 달린다. 오늘 달리고 싶은 거리, 도달하고 싶은 시간 목표, 달리고 난 뒤에 처리해야 할 일, 먹고 싶은 요리, 만나야 할 사람, 하고 싶은 이야기. 가끔 스쳐 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면 그 순간 그런 '생각'들은 잠시 밀려나기도 하지만. 이내 제 자리로 돌아와 있다. 계속 달리다 보면, 그 '생각'들은 지나가 버리고 없다. 어느 순간부터 느껴진다. 반복적인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의 움직임, 화끈거리는 발바닥, 한없이 무거운 오른팔과 얌전히 붙어만 있는 것 같은 왼팔, 1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턱에 휘청거리는 발목. 2단계는 그렇게 '몸'으로 달린다. 이때 가장 많이 흔들린다. 달릴까, 멈출까 하고. 개인 능력 따라 다르지만 날숨량이 들숨량의 2배는 넘을 것 같은, 러너스 하이를 느끼는 단계이다. 전문 마라토너에게는 대략 35킬로미터 지점이라지만, 누구에게는 3.5킬로미터 지점일 수도 있는, 격한 행복감을 느끼는 단계이다. 


  마지막 3단계는, 무의식의 의식으로 달리는 단계이다. 의식하지 않는데, 의식이 또렷해진다. 대신 몸의 감각이 둔해진다. 오른쪽 무릎의 통증과 같이,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는, 달릴 때만 느껴지는, 달리고 나면 사라지는 근육통이다. 도로에는 폭신한 양탄자가 깔려 있는 것 같다. 그 위를 보습이 잘 된 두 발바닥으로 사뿐사뿐 달려 나간다. 우주에서 달리면 아마 이런 기분이겠다 쉽게, 가벼워진다. 심장은 평온하고, 호흡은 안정적이다. 들숨과 날숨이 1대 1의 비율로 들락거린다.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코로만 충분히 호흡할 수 있다.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을 의식하고 달릴 수 있다.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결승선을 향해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진다. 


  달리기 3단계는 모두 거리와 전혀 관계없다. 단 100미터를 달려도, 10킬로미터를 달려도 3단계를 모두 경험하게 된다. 달릴 능력은 없지만, 아마 울트라 마라토너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10킬로를 1시간 이내에 뛸 때, 나의 평균 심박수는 보통 160-170 사이다. 어떤 일상에서 이렇게 심장이 박동하는 때가 있을까. 심장을 뛰쳐나온 따듯한, 엄청난 양의 피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혈관 속으로 달려들까. 무슨 일을 할 때 그렇게 먼길을 돌고 돌아, 지치지 않고 다시 심장으로 뛰어들까. 혈관벽에 묻어 있는 찌꺼기들이 떨어져 나갈 만큼. 뜨겁고 열정적으로. 어제 그렇게 막히던 차 안에서, 운전하던 나의 심박수는 69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베란다 좁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사납다. 커튼이 펄럭거린다. 노란 국화꽃 액자를 덜거덕 거리고, 커튼 매듭을 마구 흔들어댄다. 고리에 매달린 게 위태로워 보인다. 성질난 오토바이 라이더 같이 불어 들어온다. 오늘은 이 바람 때문에 달리지 못했다. 오늘은 바람을 핑계삼아 이렇게 글로 달리고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내가 달리기를 말하는 이유가 계몽적이지는 않다. 정말 좋은 운동이니까, 우리 다같이 함께 달려봐요, 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 심박수는, 어디 보자, 68이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는 매순간 순간이 러너스 하이일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순간을 위해 오늘, 내 심장은 분당 68번 정도만 움직이도록, 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 


  이 글을 쓰다, 딸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줬고, 이 글을 쓰다, 딸아이를 학원에서 데려왔다. 이 글을 쓰다, 커피를 내려 아내하고 마셨다. 그 사이, 어제 사온 고구마를 현관 바닥에 신문을 깔고 부워 놓았다. 또 이 글을 쓰다, 아내가 만들어준 부드러운 계란말이를 먹었고, 지금 여기를 쓰다가, 어느새 만들어 온 달고나도 낼름 받아 먹었다. 꿀같은 사흘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의 심장이 오늘보다 분명 더 뜨거워질거라 믿으면서, 지나간 사흘보다는, 남은 세 시간에 더 감사하다 잠들고 싶다. 건조기에서 태클 팬츠, 반바지, 러닝 셔츠, 허리 밴드를 꺼내 옷장에 모아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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