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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03. 2021

새벽 배송된 나의 의식 들여다보기

  소리도 감각도 없는데 눈이 떠졌다. 갑자기. 습관적으로 왼쪽 손목에 채워진 밴드 액정을 터치했다. 05:12. 검은색 바탕 속에서 흐릿한 흰색이 망막에 와닿았다. 새벽이다. 송새벽이라는 이름이 불쑥하고 튀어나온다. 뜬금없다. 단순 기억력 측면에서 보면 엊그제 다 본 오징어 게임의 강새벽 이름이 먼저 떠올라야 하는데. 뚜렷한 이유는 모르겠다. 반듯하게 누워 있다가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몸안의 장기들에게 좋은 자세라고 어느 기사에서 본 후 의식적으로 따라 하는 행동이다. 몸에 좋다고 하니까. 이유는?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나는 귀가 참 작다. 실제 크기가 작다. 거울에 비친 내가 봐도 인정. 말귀를 알아들을 즈음부터 귀가 커야 큰 인물이 된다, 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특히 나를 나아준 엄마한테서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관상의 측면인가 보다. 그런데 어쩌란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다. 관상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거니까.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어찌 되었건 난 이미 글렀다. 네 식구 집에서도 왕 노릇은 못하는 것을 보면. 지금 왕이 되겠다고 나온 사람들의 귀를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게다가 나는 팔랑귀다. 셀프 디스에 능숙하다. 자의식이 나한테 유독 가혹할 때가 많다. 뭐가 훅하고 들어오면, 지나가다 스스로 주워듣기라도 하면 잘 떨쳐버리지를 못한다. 기사를 본 그날 밤, 나는 억지로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그날 밤 알게 되었다. 내가 전국 약 680만 명 안에 드는, 12프로 부자라는 사실을. 이제껏 살아오면서 받아 본 성적 중에 전국단위에서 가장 높은 성적이지 싶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맑게, 자신 있게 납부한 건강보험료 덕분이다. 아내 덕분이다. 


  다시 돌아눕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다. 왼쪽으로 누우면 다량의 혈류가 흘러서, 어디로 갔다 거기로 오는데, 장기들이 서로 덜 눌려서.... 결국 소화에 도움이 된다, 는 기억은 또렷하다. 살아가면서 소화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 위와 소장에 왼쪽 어깨쯤이 양보해야 하는 게 맞다, 고 생각하면서 왼쪽으로 누운 채 오른 손가락 다섯 개를 접었다 폈다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어제 열한 시 반 되는 거 보고 누웠으니. 여섯 시간 조금 넘게 잠들어 있었다. 


  큼지막한 쿠션을 안고 오른쪽 다리를 쿠션에 올렸다. 편안하다. 그런데, 어깨가 눌려 불편하다. 몇 달째다. 관절, 연골, 협착, 뼈주사, 뭐 이러더니, 결국은 그게 오십견이란다. 딱 오십 살에 찾아온 오십견이다. 참 정직하다. 지금껏 인생처럼.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이번에는 가느다랗고 까실한, 여름용 쿠션을 안았다. 아직은 이 느낌이 더 좋다. 사타구니와 겨드랑이가 시원하다. 왼쪽 다리를 쿠션에 올렸다. 편안하다. 어깨도 눌리지 않는다. 내 간에 많은 피가 들락날락거린다. 


  난 원래 이 자세가 좋았는데, 팔랑귀 때문에. 그런데 오른쪽 어깨에 조금 미안하다. 오십 년을 사용했는데도 아무런 투정도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보조로 사용한 왼쪽 어깨가 먼저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인생 같다. 바깥과 베란다 사이 창문, 베란다와 안방 사이 창문에 모두 암막 커튼이 설치되어 있다. 꼼꼼하게 펼쳐 놓으면 안방은 그야말로 암실이다. 인생에 소중한 햇빛이 가끔은 방해가 될 때가 있다. 나의 의식에 집중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을 결정할 때처럼. 


  오십. 앞으로 대략 10년 남짓. 또다시 몇십 년. 왜 대부분의 드라마는 16부작이지. 일어나자. 나는 왜 글을 쓰려하는가. 무엇을 쓰고 싶은 거지. 진단서가 필요해. 김은희. 어쩌다 선생.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나의 세포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7년의 밤. 딸랑거리며 찾아오는 두부 장수. 유쾌한 인생. 유리 공예..... 오늘 새벽, 나의 암실에서 내 의식에 떠다닌 키워드들이다. 나는 오늘 새벽, 망상과 공상, 생각, 나의 몸 그 어디쯤의 바다에 빠져 버둥거렸다. 


  일곱시 반이 넘어간다. 나는 육지로 올라와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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