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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25. 2024

프레스토와 아다지오 사이

[노랫말싸미] 13

도로 위에서는 저와 비슷한 상황(?)의 차들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 조금 속도를 내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저를 추월하려는 차가 앞뒤로 나타납니다. 도저히 이겨먹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는 다짐을 이미 한 듯 한 차(로 자기를 가린 사람)들입니다. 


반대도 쉽죠. 한껏 느릿하게 주행 차선으로 달리면 앞뒤에서 나란히 달려 나가는 차들 역시 아주 느릿느릿합니다. 혼자 한적한 숲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네 바퀴로 산책하듯 한 차들입니다. 어제는 고속도로 3차선에서 앞의 검은 차와 뒤 따라오는 초록차가 아주 오랜 거리를 함께 그렇게 달렸습니다.  


고속도로 추월차선에서 정속주행만 하지 않는다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운전 후 몸의 피로도는 물론 정신 건강에도 좋은 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운전만큼 습관이 되는 건 살다 보면 또 없지 싶습니다. 포근하고, 안락하고, 독립된 나만의 공간에서마저도 내가 아닌 내 바깥을 신경 쓰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 해지지 않는 습관을.  


이와는 다르게 느리지도 위협적으로 빠르지도 않은 구간이 있죠. 특히 고속도로 위에서. 일정 시간 동안 일정 거리를 일정한 속도로 서로 나란히 달려 나가야만 하는. 바로 구간 단속 구간입니다. 앞서 달려 나가고 싶어도 자제하게 됩니다. 속도계가 벌겋게 번쩍이면서 경고음을 내니까요. 보고 듣고도 거스르기는 어렵죠. 


사는 것도 마찬가지지 싶습니다. 과하게 자기를 몰아치면서 달려 나가는 구간이 있(었)죠. 20대일수도, 40대일수도, 지금일수도.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아, 아직은 몸과 마음이 괜찮은데?'하고 느낀다면 바로 그때입니다.  


말하는 속도, 사랑하는 속도, 용서하는 속도, 고백하는 속도, 사과하는 속도를 조금은 자유자재로 조절하기 위한 시도를 할 때 말입니다. 구간 단속 구간에서 벌겋게 번쩍이는 경고음 같은게 잘 보여 지지도 않는 일상에서, 인생에서 자기 속도와 다른 이의 속도 사이에서 누가 어디에 맞출 것인가는 온전히 스스로의 선택이니까요. 


내가 급하면 급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죠. 말도 급하고, 마음도 급하고, 시선조차 급한 사람들을. 하지만 조금만 느긋해지면 느긋한 고수들이 주변에 모입니다. 선천적으로 느긋하지 못(하게 태어난 듯)한 저는 그런 고수들을 만나려 일부러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도로위에서의 속도를, 결정하고 선택하는 속도를, 말하는 속도를, 들이키는 속도를, 아이디어 내는 속도를. 어쩌다 보면 줄이고 있는 그 사이에 또 다른 차선에서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하더군요. 그럴 때면 세상은 제 마음대로 돌지도 않지만, 제가 안 돌려도 다 돌아가는 걸 한번 더 깨닫게 됩니다. 


한 주의 끝과 시작이 이어 붙은 일요일입니다. 우리 다음 주도 각자의 도로 위에서 과속하지 않기로 해요. 1년 365일 비바람 다 맞고, 물에 잠기고, 얼음에 덮이고, 파이고, 깨지고, 녹아 버리는 도로보다도 못한 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가냘픈 날개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일요일 오후 창문 밖의 널 보며 조심스럽게 다가가 너의 눈물을 보았지 투명한 날개 조그맣게 펼치고 외로운 춤을 추는 너의 비밀 알게 되었지 이루지 못한 너의 꿈들을 화려한 옷 속에 감추고 무거운 짐을 지고 나는 황금빛 나의 사랑아 춤추는 그대여 오늘은 꿈 잃은 우리 모두를 위해 추자 슬픔은 감추자 언젠가 은하수 너머 가자던 그 꿈을 위해서 _ <일요일 오후>(정재형)_노랫말중 일부



지나치게 달려 나가 산산히 사라져 버려도 도로는, 나의 그 길은 그 자리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남아 나의 이야기할 께 분명하니까요. 방향을 잃어 버렸다는 걸 숨기려고, 지우려고 더 달리고, 달리고, 앞만 보고 더 달렸었다고. 사랑을 몰랐었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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