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Aug 29. 2024

무슨 X소리야

[노랫말싸미] 14

어제 저녁. 어느 제빵소 주차장 옆 공터에 그네가 있더군요. 거묵한 자갈밭과 또렷하게 구분되게 바닥에 초록색 매트까지 크게 깔아 놓은. 한 달여 뒤 성인이 되는 따님이 그네에 냉큼 올라탔고 저는 거의 반 자동으로 가을하늘 같던 구름 위에 올려 앉힐 듯 밀어주다 보니 제가 꼭 그네 같지 싶어졌습니다.  


'조금만 기분 좋으면 그네 안을 벗어나 구름 사이를 훨훨 날아다닐 듯 말랑하게 친절하고 잘 웃다가도 가슴 철렁하면서 그네가 푹 하고 내려오듯 혼자 지하 수십 층까지 갑자기 곤두박질치기를 왜 반복하냐고. 이래도 저래도 그네처럼 같은 곳에 묵묵히 고정되어 있(었)는데, 왜 쓸데 없이 힘이 들어가냐고. 힘 빼고 그냥 타, 즐겁게 그냥 왔다 갔다 해'라고 하듯이.     


지금도 가끔 이런 답 없는 자문을 하는데 막 삼십 대가 되었던 그때는 더욱 그랬을 무렵이었지요. 여고에 발령을 받고 몇 해 지났을 무렵. 당시 체력장이라고 불렸던 그 행사를 하던 5월 어느 한 날. 저의 역할은 오래 달리기 기록 측정이었습니다. 처음 조작해 보는 두툼한 전문가용 스톱워치를 들고 고1 여학생들 한 명 한 명의 기록을 재야 했습니다.                


엄지와 중지를 리드미컬하게 번갈아 눌렀다 떼었다 하면서 힘겹게 결승선을 지나치는 아이들에게 '넌 몇 분 몇 초'를 불러주는 게 결코 간단치 않았었습니다. (결승선 통과 순서대로) '너, 너, 너, 너, 너' 하면서 놀고 있던 왼손으로 가리키면서 개별 기록을 아이들이 널브러지고, 드러눕고, 허리 숙여 헉헉거리고, 무리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알려줘야 하는 연속 동작들이 말이죠.


문제는 한 명 한 명 들은 대로 옆에 앉아 기록 중인 학생에게 단박에 기록하지 못하는 경우였습니다. 꼭 서너 명은 기록하는 학생이 다시 물어봅니다. '선생님, 아까 세 번째 게 몇 분 몇 초죠?' 아니면 '몇 초가 맞죠?' 하고요. 가끔은 그런 기록이 나올 수 없는데 하는 표정으로요. 일부러 슬쩍 시간을 줄여서 불러버리는 약삭빠른 아이들도 있었던 겁니다. 그런 사실조차 몰랐던 거죠, 초짜 선생은.          

      

그렇게 5월의 축복 같은 바람도, 운동장에 넉넉했던 체력장의 여유도 못 느끼고 알아서 정신없어하던 그때. 결승선을 통과하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스톱워치를 보면서 '몇 분 몇 초!'라고 알려 주는 순간, 무리의 끝에서 결승선을 지나 제 앞으로 훅 지나친 어떤 여학생이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마른 소리를 내뱉는 겁니다.  '무슨 개소리야!'. 벼리였습니다.                


벼리는 고1 여학생 중 (저의 눈에) 가장 눈에 띄던 아이였습니다. 화장기 진한 얼굴에 눈빛이 아이 같지 않았죠. 특히,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는 거의 교무실에 와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마실 나왔다 들린 듯 특별한 볼일도 없이 말이죠. (사회생활 몇 년 안 되어 자체 검열과 만성 주눅에 시달리느라 저도 잘하지 못하던 자연스러운 농담을) 아빠, 엄마 같은 선생님들과 하면서요. 하여튼 아이 같지 않은 아이였었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미 그 아이가 싫어졌습니다.                 


부담스럽고, 불편했던 아이였죠. 어느 날 점심때. 발령 동기인 A와 옆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자리. 벼리는 그날도 이분 저분에게 인사를 하고 웃으면서 떠들더군요. A는 벼리의 담임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주고받다 제가 먼저 그랬을 겁니다. '00이 남자 친구 있구나' 그랬더니 바로 넘어온 말이 '네 하하. 선생님은 여자 친구 있으세요? 없구나. 없어. 선생님, 제가 더 사랑을 알까요? 선생님이 더 알까요? 저에게 물어보세요. 하하하'               

여자 친구와 결혼 날짜를 잡아 두었던 그때. 데이트를 하면서 어쩌다 벼리이야기를 꺼냈고, (지금 아내인 그때의) 여자 친구가 묻지도 않는데 스스로 다짐까지 했더랬습니다. "맞아. 그런 류(?)의 애들은 조심해야 해"하고. 제 마음속에 그렇게 자리 잡았던 벼리에게 사랑을 배우라는 조언을 들은 두어 달 뒤 체력장에서 들었던 소리가 '무슨 개소리야'였던 겁니다.                


막 서른이 되면서 멋진 데다 좋기까지 한 선생님이 되려고 했던 저에게 순수하게만 보였던 (일부) 여학생들이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온 불편한 시기였었죠. (겉으로) 멀쩡했지만, 심리적으로 졸아있었던 때가 분명했었습니다. 막연하게 불편하고, 불안하고, 그럴수록 더 쎄게(!) 나가면서 ‘나 쉽지 않은 사람이야’를 입에 달고 살았던.      

교권이란 용어도 쓰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쌔~엠'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처음 온 (초짜)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길들이고 테스트하는 아이들도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맞장구를 치면서 '그런 아이들은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며 저의 ‘그런 류’에 적극지지하기도 하셨었네요.                 


결국 며칠을 (혼자) 고민하다 술자리에서 A에게 털어놨었습니다. 그랬더니 덩치 큰 A가 글쎄 막 웃더군요. 이마까지 벌게지면서 말이죠. '벼리가 그런 애가 아닌데. 조금 나대서 그렇지, 착해. 그거, 벼리가 교실에서 자주 쓰는 말이야. 나도 몇 번이나 들었어. 외동인데 엄마가 안 계시거든. 아빠랑 연세 많으신 할머니랑 살아.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 같은, 애늙이같은 말을 많이 쓰긴 써 하하'                


그랬던 겁니다. 그 자그마한 스톱워치 하나에도 바짝 긴장을 하던, 사회 초년생 저에게 들렸던 '무슨 개소리야'는 '무스그소리'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정색할 때, 모른 척할 때 쓰는 '뭔 소리래?'라는 의미와 같죠. ‘내 기록이 그것밖에 안된다고?’ 하는 자책 비슷한 어감에서 나온 할머니 표현이었던 겁니다. 그네에 앉아 돌이켜 보니 어감은 '무스그소리'가 지금도 훨씬 좋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마 이제 막 마흔이 되었을) 그 아이는 여전히 모를 겁니다. 자기가 (지금의 자신보다 더 어렸던 그때의)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쫄아있던 저에게 그 말이 나를 향한, 무시하는 개소리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는 것을. 저 혼자만의 그 사건 이후 (아이들에게) 실망해도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로) 바로 바라보려고 자꾸 스스로 다짐했다는 것을.                


그런데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던 건 말입니다. 뭐래도 아이는 아이라는 (저의) 믿음이 깨지지 않았다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커 보이고, 거칠고, 무응답이어도) 아이는 꼭 어른이 필요한 존재라고 여겼던 막연한 저의 믿음말이죠. 그 믿음이 (지금껏) 신념으로 간직할 수 있게  있게 해 준 게 자신이라는 것을. 게다가 사람은 편안한 사람을 찾아가고, 안정된 공간에서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말로 몸으로 알려주었다는 것도요.                 


벼리는 그 후 수업에서, 동아리에서, 복도에서 틈만 나면 저와 하이파이브를 하려 했습니다. 제가 맞장구를 치고 난 후부터는 더 자주. 그런 뒤로 저에게 윙크를 날리면서 '성관 쎄~엠 알롸뷰'하면서 하트를 날리고 달아나는 벼리가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다 큰 척하는 아이로 보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아이를 아이로 보지 못했던 제가 더 문제 어른이었던 거죠. 벼리 덕분에 '누구는 이래야 한다'라는 스스로도 몰랐던 저의 스테레오 타입을 발견했던 겁니다.


따님 온기가 살짝 남아 있는 그네에 잠시 앉아 봅니다. 꽤나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벼리를 만난 후로도 스물몇 해가 더 지나갔네요, 벌써. 벼리 덕분에 그동안 '벼리 같은' 수많은 아이들을 잘 만나낼 수 있었다고, 저의 삶에 큰 위로가 되어 준 산들바람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길을 걷다 어디선가 훅하고 바람만 불어오면 잠깐이라도 멈추어 온 몸으로 바람을 안아본다고도요.


살면서 듣게 될까/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꽃이 지는 이유를/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또 다른 사람들/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어느 곳으로 가는가_<바람의 노래(소향)>

이전 13화 프레스토와 아다지오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