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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22. 2024

[노랫말싸미] 12

별 일은 없는데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반대로 잠깐 빼꼼해진 하늘까지 치솟을 것처럼 한없이 몽글해질 때도 있죠. 제때 먹고 잘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걸 보면 병증은 아닌 것 같지만 말입니다. 

 

요즘은 만만한 날씨를 탓하면서도 성격 탓이겠다 싶습니다. 조금 다행인 건 이제는 슬쩍 그런 제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게 즐겁습니다. 끄적이는 습관 때문에 생기는 습관이지 싶어 져서요.  


그럴 때는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멍을 때리기도 합니다. 혼자 조용히 걸으러 나가기도 하고요. 걸으면서 이것들을 다 할 때도 꽤나 있죠. 그런데 무엇보다 좋은 건 멀뚱이 저만 쳐다봐주는 타닥이를 데리고 산책을 같이 나가는 겁니다. 


5분도 좋고 50분도 좋죠. 척추 때문에 뜨거워지기 두 달 가까이 산책을 하지 못한 타닥이 컨디션만 괜찮으면 말입니다. 삐뚤거리면서 걷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경이롭기 그지없습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관여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노즈워킹을 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흉내만 내는 저의 복식 호흡 수준이 아니거든요. 과꽃이 피었던 자리에서 흡흡흡흡 거리면서 빠르게 들이마시다가도 작년 겨울에 함박눈에 파묻혔던 부채꽃 앞에서는 조용하게 음미만 합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제가 더 감격스러워집니다. 속이 후련해집니다. '마음껏, 마음껏 격정적으로'라고 속으로 외치게 됩니다.  


봄에도 겨울에도 자신이 했던 고민을 생각을 선택을 다 기억해 내는 듯 말입니다. 그런 타닥이를 따라다니면서 생긴 버릇이 저에게 하나 있는데요. 이제 딱 일 년이 되었네요. 매일 사진을 찍는 겁니다. 타닥이에 비해 냄새도 감각도 판단도 둔하다는 것을 느낀 작년 여름 이후부터입니다. 


마음이 가라앉고 뭉뭉 뜨면 갤러리를 엽니다. 날짜별로 모여있는 사진들을 한 장 한 장씩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어떤 사진 속에서는 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향기가, 그때의 흡족했던 맛이, 온몸으로 느꼈던 희로애락의 감각이 느껴집니다. 그 시간이 어떤 짤이나, 숏영상을 보는 것보다 즐겁습니다.   


먹는 것도 보는 것도 만나는 이들도 사진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친구들은 다 차리면 잠깐 기다려주기까지 합니다. 그 무렵이었을 거예요.  합니다. 물방울보다 작은 생명체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하염없이 관찰하면서 말이죠.  


한때는 한참 네모나 동그라미 어느 쪽에 속하려고 애썼던 때가 있던 것 같습니다. 조급함을 온몸으로, 표정으로 표현하면서. 명함도 카드도 돈도 집도 사무실도 다 네모난 세상에서 둥글둥글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 제가요. 


지금은 네모도 동그라미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인 제가 좋습니다. 아니, 더 제발 어정쩡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시간에 사진으로 나의 추억과 향기를 다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네모와 동그라미를 결정하는 기준을 결정하는 게 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오늘, 아침에도 출근 전에 잠깐 타닥이를 데리고 산책을 했습니다. 더위가 꺾인다는 처서이지만 타닥이가 어제 맡은 그 냄새를 다시 새로운 것인 양 한껏 들이마시는 모습을 보는데 미끄덩한 바람이 몇 줄기 불어와 줍니다. 매일 모든 감각이 다 살아 움직이기를 오늘도 꿈꿉니다.  


우린 언제나 듣지 /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 지구본을 보면 /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_<네모의 꿈>(화이트) 노랫말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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