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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01. 2024

여전히 새내기

[우리 동네 갤러리] 05


자가용 출근족인 나는 아주 오랜만에 출장을 위해 지하철역으로 달렸다. 하지만 내 기억 속 공터는 빌딩 환승주차장으로 바뀌어 있었고. 5분을 기다렸지만 만차였다. 건물뒤로는 버스 차고지가 파란색 양탄자처럼 산 아래까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불현듯 머릿속에 있던 흑백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공터처럼 개방되어 있던 인근 주차장. 허허벌판에 버려진 숨겨둔 아지트 같았던 곳이었다. 언제나 휑하게 추웠던 곳. 십여분을 더 달렸다. 역시 인기 있는(!) 카드 전용 주차장으로 변해있었다.



텅 비어 있을 때도 그랬듯 제일 안쪽에 차를 세웠다. 걸어 나오면서 세워진 다양한 차들을 보면서 주인들을 마음대로 상상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십 대의 끝에서 삼십 대의 가운데로 넘어오는 시간 동안 매일 아침 오르내리던 반짝거리던 저 계단도. 


 

러시아워가 조금 지난 시각. 새 계단은 누렇게 텅 비어 있었지만 한눈에 가득 채워져 보였다. '우두두두'. 사람 따라 신발 따라 걸음 따라 다르게 들리던 새하얀 입김들이 보이는 듯했다. 저 계단마저도 그 발자국 덕에 세월을 눅직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일부러 천천히 밟았다. 스물여덟 때의 내 발자국, 서른 둘 때의 내 심장소리가 어디에 찍혀 있는지 내려다보며 귀 기울이느라. 녹슨 계단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참 오랜만이시네요. 좋아 보여요. 어때요? 요즘!'. 



종점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남매들이 나처럼 이십 대가 되는 동안 연신 돌아보면 언제나 끝은 또 다른 '시작점'이 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일몰이 일출과 이어지듯 길도, 하늘도, 나의 삶도. 



끝과 시작은 머물러 있는 곳과 그때의 상황에서 급하게 결정지은 것일 뿐이었다. 스스로가 한계 짓지 않으면, 오늘도 '안녕'을 위해 말과 속도를 줄이면 삶에는 '새로운' 시작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오래된 계단에서 만났다. 



상황과 공간만 바뀌면 누구나 여전히 새내기이다. 



새내기는 어제 걸었다고 걸을 수 있는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제 손잡았다고 오늘은 안 잡지 않는다. 어제 웃었다고 오늘은 웃음을 버리지 않는다. 어제 행복했다고 오늘의 행복을 밀어내지 않는다. 매일 뜨는 익숙한 태양도 늘 새롭다.



새로운 다짐, 새로운 습관, 새로운 만남, 새로운 도전, 새로운 출발, 새로운 희망, 새로운 극복, 새로운 회복, 새로운 기회, 새로운 변화, 새로운 발걸음, 새로운 새벽, 새로운 건강, 새로운 친구, 새로운 글,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오늘, 언제나 새로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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