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Aug 29. 2022

아이 가릿

우리 식구 터닝 포인트  데이... 2022.08.24

오늘도 대입 상담을 시작한다. 열흘째다.

개학을 하고는 매일 오전 8시 2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대략 1시간에 1명.

수업 없는 공강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종례 후 시간을 활용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그런 학생들은 거의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내용을 체크하고 수정하고 조언해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완벽하게 바꾸는 과정을 해야 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

하기야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 게 쉽지는 않다.


우리 반은 33명이다. 상담을 시작하고 지원 대학, 학과를 최종 결정하기까지

최소 3회의 상담은 필요하다. 물론, 미리 알아보고, 중간에 점검하는 학생의 관심이 있다는 전제로.

그러면 최소 100여 회의 상담은 필요하다. 올해같이 추석이 빨라서, 수시 원서 접수 일정이 당겨진 경우에는 상담을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 부족이다. 

뜨거운 여름 방학 동안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해서 상담을 시작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서로 성적이라는 절댓값으로만 측정하고, 당하고, 선발하는 지금의 대입시스템 방식이

어쩌면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안전하고, 인간적이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교사들끼리 사석에서 가끔 그런다. '지금 우리 보고 대학가라고 하면 지금만큼은 못 갔을 거야'라고.


퇴근을 하면, 또 다른 상담(?)이 시작된다. 남매들이 어릴 때도 가끔 그랬지만,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방학이라 지금 집에 머물고 있는 스무 살인 고등학생, 아들. 

지금, 한국에서는 한국말로, 당락을 명확하게 추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활용하여 조언한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영어로, 절댓값이 아닌 기준으로, 외국인을 어떻게 선발하고 지원하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거기에 영어 실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유학원을 잘 활용한, 프로젝트형 유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고2 때 훌쩍 혼자 떠나버린 당당함은 멋졌다. 하지만 현실은 고민 투성이인 것이다. 우리네 인생처럼. 

물론 우리 부부보다 더 막막하고, 걱정이 되는 건 분명 스무 살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유하고, 싫은 소리 못하고, 과감하지 않은, 딱 나 같은 아들이다. 


지난주 수요일, 밤. 우리 식구는 그렇게 넷이 둘러앉았다.

아들이 와 있는 두 달 동안, 먹는 것, 다니는 것, 이야기 나누는 것 등 온 신경을 아들에게만 쏟아내고 있는 아내를 대신해 나는 얼마 전 고졸 검고를 훌륭하게 본 열일곱 딸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리고 우리 식구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랬다. 나눴다. 직업이 말하는 사람이고, 가르치는 사람인 부모의 직업병 때문에 늘 듣기만 하던 아들이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집을 떠나 일 년 반 만에 돌아와서는 가장 많이 달라진 면이다. 그래서 그 부분이 반가웠다. 짧지만, 짧지 않은 스무 해 동안 자신의 추억, 기억 속에 켜켜이 갇혀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 둘 꺼냈다.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해답을 이미 스스로 가지고 있는 스무 살, 고등학생 아들. 나는 그 나이에 어떤 고민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아들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흑백 필름처럼 되감겼다. 그리고는 대입처럼 같은 결론. '나의 스무 살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깊이가 다른, 스무 살 고등학생'이었다.  남매 앞에서 그렇게 고백을 했다. 나도 아내도. 그러면서 남매가 부모에게,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 넘치게 잘 살아내기를 당부했다. 그렇게 자정을 훌쩍 넘겨 세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눈 뒤 아들이 그런다. '아이 가릿. 이제 확실하게 감을 잡았어요'. 그 옆에서 곰곰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세살 아래 딸이 그런다. '자~ 건배'. 그렇게 우리는 소주잔을, 보이찻잔을, 쥬스컵을 부딪혔다.

작가의 이전글 00 합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