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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Nov 13. 2022

잘 가서, 푹 쉬어

뜨거운 줄 모르고 좁고 어두운 그 곳에 누워 있는  이 시간에 허릿병 하나 낫겠다고 스트레칭을 하다 문득 컴퓨터 앞에 앉아 버렸어. 베란다 넘어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어눅하게 산능선을 감싼 아침 안개때문에.


언제인지도 기억이 가물가물거리는 어느날 저녁, 귀농한지 한참만에 쌀과 버섯을 이고 지고 우리집 문을 두드리며 숨을 몰아쉬던, 어쩔줄 몰라 어색해하는 결혼식 날 기쁨으로 쳐진, 안양의 어둑한 방에 숨어 막걸리를 들이키며 웃던,


항암 치료중에도 찾아간 우리 부부를 더 웃게 만들어 준,  오십세살의 어리디 어린 영정사진속에서 애써 웃음 짓고 있는

형의 그 눈을 오늘 아침 안개는 너무도 참 많이 닮았네.  늘 웃고 있었지만, 촉촉하게 깊이 있게 고뇌하던 그 눈빛을.


형, 삼십년을 넘게 알고 지내면서도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 하지 못해 미안하고

형의 고민과 생각을 많이 나누지 못해 더 미안하고, 아플 때 같이 아파해 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 다들 그렇게 살아내는데, 유세를 떨면서 살아내는데. 그렇게 살아내는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맛있는 거 먹고, 좋은 데 다니고, 바쁜 일상을 살아갈꺼야. 다음주에는 어느 결혼식에서 웃으며 축하해줄꺼야.  그러다 어느날 문득, '형'하고 떠오르게 그렇게 그렇게 살아낼꺼야. 그리움으로 채워갈꺼야.


친구 같았던 형, 동생같이 장난끼 많았던 형, 울림이 있었던 사람. 이제 그만 아프고 몸도 마음도 아주 편안하게 푹 쉬기만 해. 좀 쉬기만 해.


형아 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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