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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26. 2022

2023년 준비 끄~읏(1)

호(좋아)락호락(즐거워)한 나의 삶을 응원해요

드디어 끝이 보인다. 매년 이맘때면 이런 짓(?)을 한 게 벌써 24년째. 나는 지리 선생이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있는, 아 지도!, 아, 아 하는 그 과목이다. 암기할 것 넘쳐나고, 표 많이 나오고, 한국관광공사에서 이야기하듯 대한민국 방방곡곡, 구석구석에 대해 능력껏 알아야 하는, 바로 과목이다. 대부분의 우리 기억 속에 좋지 않게 남아 있는 먹구름 같은 그 과목. 올해 한 여학생이 5월쯤인가, 나를 찾아와 울먹이면서 이랬다.

'선생님, 한국지리 너무 어려워요. 한다고 하는데, 하다 하다 못해 먹겠어요'라고. 말 끝에 못해 먹겠다고 쏟아 냈다. 게다가 올해처럼 내년에도 무려 고3님들과 함께 해야 한다. 물론 교과서도, 잘 만들어진 사설 교재도, 국가가 보증(?)한다는 교재도 넘쳐난다. 하지만 우리의 비슷한 경험치(?)에서 느끼듯 그 넘쳐나는, 정말 잘 만들어진, 족집게 교재라는 것조차도 제대로 소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 하기야 그랬다면, 중간, 기말고사는 껌이고 수능도 우습고, 자격증도 일 년에 한두 개씩은 딸 수 있을 테다. 그 정도로 우리가 공부를 하기에는 참 잘 만들어진 교재, 그것들은 넘쳐난다.


나는 그 넘쳐나는 교재들 중에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 없는 나만의 교재를 만들어서 수업을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바쁜 일과 중간중간에, 연말에, 방학을 이용해서 그 짓을 하고 또 한다. 왜? 매년 나와 만나는 아이들은 계속 다르니까. 특히, 추석 이후에 지금까지, 오늘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2023년 교재는 의미다 조금은 남다르다. 지금까지야 학교가 정해 준 과목을 다 같이 듣는, 말 그대로 획일적인 학교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고등학생들도 대학생 같은 흉내를 내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다. 뭐, 그 시스템에 대해 이 말 저 생각할 말은 많지만, 오늘은 일단 '내가 만든 교재' 이야기만 하기로, 입 꾹 다물고. 


내년에 고3에서 한국지리를 선택한다고 자발적으로 클릭한 학생들이 75명이란다. 분명 자발적으로. 그 세밀한 이유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건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단지 75명, 3개 학급의 아이들이 내년에 나를 만나기 위해 - 물론 그게 나라는 건 아이들은 모르지만 - 기다리고 있다. 아,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기다린다고 해야겠지만. 그래서 매년 해오던 교재를 소폭 수정하는 방식에서 올해는 내년을 위해 대대적으로 교재를 일체형으로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신경을 썼다. 여기서 일체형이란 의미는 이 교재 한 권이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든 거? 그렇다. 모든 것. 진도용 교재이면서 수행평가용 교재이고, 당연히 중간, 기말고사의 바이블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고3이다. 공부를 잘 하건 못 하건 그 끝은 수능이다. 이 모든 걸 한 권에 녹여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가장 잘 만들어진 교재란 이렇다, 원래. 엄청나게 잘 정리해 놓고, '공부는 이거 산 니들이 알아서 해야 할 몫'이란 것. 이 부분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고 만들어서 반영하느라 예년에 비해 시간이 두 배 이상은 더 걸렸다는 말씀. 나 스스로 토닥토닥하다, 쪼금은 자랑하고 싶어졌다. 뜬금없지만 이럴 때 글쓰기가 하고 싶어 진다. 글로 써놔야 내 인생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강박일까.


여하튼, 자랑 하나. 최근 5년간의 문제는 물론이고, 더 많은 문제들을 단원, 주제별로 풀어봤다. 그리고 통계를 냈다. 그 결과 출제랭킹을 주제별로 매겼다. 그리고 교과서의 순서를 뒤집었다. 그 출제랭킹별로 교재 순서를 통편집했다.  여기서 잠깐, 전혀 관계없는, 아니 관심 없으신 분들께 그 랭킹을 살짝 공개해 본다. 물론 더 관심 없으신 분들께는 이게 뭐란 거지?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이 부분 참 많이 쉽지 않았다.


1하천.해안 지형 - 2충청호남영남제주도 - 3농업공업 - 4기온강수 - 5대도시군 - 6자원 - 6인구이동 - 6지리정보 - 9화산.카르스트 지형 - 10자연재해.기후변화 - 11수도권.강원지방 - 11위치영역 - 11촌락도시 - 14북한 - 15지역개발 - 16산업구조.서비스업 - 17한반도형성.산지지형 - 18인구문제 - 19도시재개발 


원래 순서는 1지리정보 - 2위치영역 - 3한반도형성.산지지형 - 4하천.해안지형 - 5화산.카르스트지형 - 6.기온강수 - 8자연재해.기후변화 - 9촌락도시 - 10대도시군 - 11지역개발 - 12도시재개발 - 13자원 - 14업공업 - 15인구이동 - 16인구문제 - 17산업구조.서비스업 - 18수도권.강원지방 - 19충청호남영남제주

 

역시, 랭킹만 봐도, 단어만 봐도 아 지리, 하실 것 같다. 랭킹하고 원래 순서에서 심리적인 안정(?)을 못 찾으실거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학생들, 특히 수능을 10개월 앞둔 고3들이 보면, 엄청나게 교과서를 헤집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모의고사도, 수능도 이 순서대로 나온다, 반드시. 그리고 단원별 순서를 보면 뒷쪽에 배치되어 있는 지역지리(수도권.강원.충청.호남,영남.제주)가 가장 많이 출제된다. 출제위원들이 얄미운게 아니라, 지리 과목의 정체성의 지역지리인데, 그걸 맨뒤에 갔다 놓고, 이렇다 저렇데 일정 때문에 흐지부지, '자 앞에서 다했던 거야. 한번 스스로 훑어봐'하고 끝나는 부분이다. 여기다 가장 중요한 건, 수능 20문제중 한 주제씩은 다 나온다. 다만, 두세개 나오는 주제, 2점짜리 아닌 3점짜리로 나오는 문제가 어느 단원, 어떤 주제 인지를 아는 게 가장 큰 포인트 라는 점을 티엠아이처럼 덧붙이고 싶다. 


자랑 둘. 위에서 처럼 랭킹으로 교과서 순서를 뒤집어 놨지만, 분량은 그대로? 이면 반칙이다. 그래서 또 하나를 시도했다. 두달이 훌쩍 넘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교재 내용을 65개의 주제로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수능 문제, 모의고사 문제를 풀다 보면, 공부 좀 하신 분들은 이해하실꺼다. 그 문제가 그 문제란 말.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맞다. 나에게는 모의고사, 수능 출제위원을 하는 지인들이 많다. 나는 못해 봤다. 아니 봤다. 공문을 보고, 문제를 만들어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본 후 뽑히는 방식으로 되면, 인력풀 속에서 몇년 이상을 그렇게 살아낸다. 한 문제당 생각보다 큰 페이들 받는다는 데 잠깐 흠칫 했었지만. 일단, 실력이 안되고 이단, 객관식 문제를 만들어 내 전공을 단편적인 지식 조각으로 만들어 놓은 - 물론 그 시스템속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 지금의 대학 인재 선발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이다.


그래서 난 애초부터 선생이 나에게 맞지 않았다. 세번째 직장이지만, 가장 오래다니는 게 학교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쪼각 쪼각 내고, 1점에 일년 가까이 쌓았다고 생각했던 사제지간의 정, 친구간의 우정 뭐 이따위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장면도 가끔은 봤다. 하지만 이전 첫번째, 두번재 직장에 비해 학교는 여전히 인간적이다. 사람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그 제어력이 아직 건강하게 작동한다. 그게 가장 오래다니는 이유이다. 


이런, 글이 산으로 갔다. 교육가치를 논하려고 한건 아니다. 흠, 다시 내려와서. 특정 단원속 작은 주제에서 출제해야 할 영역은 이미 정해져 있다. 어느 해 어떤 형태의 자료를 이용하여 문제를 만드는 가가 관건인 거다. 결국, 이십 년 넘은 동안 문제를 보다 보면 이 주제에서는 반드시 이 부분만은 알아 둬야 뒤 탈이 적어, 라는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중심으로 줄이고 줄여 65개.  물론 6.5개로 줄일수도 있지만, 항상 학교의 논리, 고3의 논리, 공부의 진리는 그렇다. 촘촘한 그물을 넓게 던져라, 라고. 이렇게 해두면 내 교재를 가지고 나와 같이 공부해야 할 한국지리 선택 학생들은 일단, 심리적으로는 안심을 느낀다. 이 교재, 저 책 말고 딱 내꺼 이거 한권!! 이곳에 네가 공부한 모든 한국지리 내용을, 지식을 몽땅 적어라, 표기해라, 암기해라, 풀어라 하면, 아이들이 너무나 심리적으로 편해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좋다. 그래서 계속 교재를 만든다. 작년것을 그대로 사용한 적은 단 한해도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고치고. 올해도 그 짓(?)을 이제 막 마무리 하는 중이다. 


자랑 셋....... 은 다음 글에서 해야겠다. 글이 내용도 없이 길어졌다. 글을 못쓰는 표본이다. 내용없이 길어만 지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다 하면서도, 내용은 읽은 만 한, 그런 글. 이렇게라도 쓰다 보면 조금은 더 나아지리라 믿으면서....   자랑 셋, 넷은 다음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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