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Dec 16. 2022

두부 뒤집듯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그리고 물기를 빼고는 대여섯 조각으로 두부를 자른다. 팬을 달군 지 2분이 채 되기 전에 잘라둔 두부 조각을 하나둘 팬에 살며시 올려놓는다. 팬 앞을 서성이면서 다른 것들을 세팅한다. 그리고 다시 몇 분 후  두부를 반대쪽으로 뒤집, 으려한다.


그런데 마음이 먼저 바쁜 이 아침에 두부 뒤집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좁은 팬 안에서도 이리 미끄러지고 옆 조각 위로 올라탄다. 어떤 조각은 팬 주위 벽을 오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한두 번씩은 반복한다.


간단하지만 단백질을 조금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아침 준비지만 두부가 던지는 의미가 미세하게 울린다. 세상 조용한 12월 중순, 7시가 되기 한참 전. 두부를 둘러싼 기름이 자글거리는 소리가 세상 소리 전부다.

 

두부 뒤집듯이... 란 일반적인 표현 속에는 '천하 쉽다'란 뉘앙스가 들어 있다. 조금  더 깊게는 '가볍다'라는 의미도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두부 뒤집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속뜻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를-심지어는 그 상대가 두부라도- 내 마음대로 대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 본성을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배려, 나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겸손의 표현 말이다. 물론 머리 써야만 하는 세상사보다야 두부 뒤집기가 제일 쉬울 수도 있다 싶겠지만, 우주선도 볼트 하나 때문에 실패할 수 있는 게 진리다.


두부 뒤집듯이 조심해서, 정성껏 대하는 습관이 세상에 내던져진 깨진 두부 같은 나 또는 상대의 본성을 서로 토닥토닥 위로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자그마하지만 꼭 있어야 하는 볼트다.

작가의 이전글 친구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