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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01. 2023

트럭위 태풍

20km 넘는 주행기록

새해 첫날이 이렇게 지나갑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가 다 비껴갔는데, 31일과 오늘을 근육통과 몸살로 이어왔습니다. 푹 자고 아내의 수제 페페로니 피자를 먹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져 이렇게 컴앞에 앉을 수 있네요.


1월 첫 글은 며칠 전 큰 화재가 있었던 그 날 같이 생긴, 다른 도로위에서 시작합니다. 2주 가까이 한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낮 기온이 꽤나 올랐네요. 실내 계기판은 영상 1도였습니다. 반차를 쓰고 나온 아내와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아내가 참 좋아라 하는 육전에 비빔국수. 맑은 곰탕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몸도 마음도 푸근하게 그렇게 아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전용 도로. 짧은 방음벽 터널을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흘러나오는 라디오 음악방송 디제이 목소리로 다급하게 들립니다. 방음벽 터널에서 큰 불이 나고 있다고 말이죠. 노곤함에 눈을 잠깐 붙이려던 아내가 휴대폰을 보다 소리칩니다. 아, 또 화재 났네. 터널에서. 이거 봐, 이거 봐. 어떻게, 사람들이 다치고, 차를 버리고 도망치고.


내가 달리는 도로는 따듯한 오후의 한가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막 방음벽 터널을 통과하면서 가운데 차선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렸습니다. 74~75km 정도 속도로 크루즈 기능을 켜놓고 천천히. 나중에 사고가 크게 났다는 걸 알고, 불이 어떻게 시작되고, 번졌는지를 알게 되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망자가 다수고, 부상자도 많다는 소식에 그리고 구체적인 장소를 알고 나서, 자주 다니는 길이라 더  또 한 번 화가 났습니다. 또 비슷한 사고가 올해 이틀을 남겨 놓고 일어났구나. 그 사람들 어떻게, 어떻게 하면서 말이죠. 저녁 설거지를 하던 아내는 소리쳤습니다. '왜 이런 사고가 계속 일어 나는 거냐고?. 왜 불이 날 것 대비하지 못하고, 그 불 잘 타는 자재들로만....'


그러다 문득 낮에 한낮 햇살을 받으며 시속 70km의 크루즈 기능을 20km가 넘게 달렸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사진처럼 앞에 달리던 트럭 덕분이었습니다. 흰 트럭은 가운데 차선으로 나처럼 아주 정속 주행을 했습니다. 옆에서 살짝 잠에 빠진 아내가 좀 더 오수를 즐길 수 있도록 천천히, 천천히 달릴 수 있었지요. 그런데 무심코 트럭 뒤에 실려 있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짧은 트레일러 한대가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차간격으로 달릴 때는 안보였습니다. 앞유리로 햇살도 넘쳐 들어오고, 멍 때리고 있느라고 말이죠. 그러다 어둑해지는 방음벽을 들어서면서, 차들이 속도가 줄면서 차간격이 줄었지요. 그리고 그 뒤에 펄럭이는 물체가 커다란 화분이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본능(?)적으로 서행할 때 얼른 찍었습니다. 또렷하진 않지만 분명 꽤 키가 큰 화분입니다. 저는 식물을 잘 모르지만, 집에서 키우는 것과 얼핏 비숫해 보였습니다. 그러다 좀 더 가까워지니 잎이 도톰하고 작은 고무나무류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잎이 손수건처럼 널찍하고 얇았습니다. 집에 있는 여인초와 비슷하다 생각하며 달렸습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함'이란 꽃말을 가진 여인초. 그런데 신경 쓰이는 건 어떤 식물인가 보다 그 얇디얇은 잎들이 정신없이 나를 향해 손짓하며 흔들렸다는 겁니다. 그것도 20km를 넘게. 트럭 짐칸 밖 세상은 천국이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따듯했고, 차 없이 한적했고, 흰 트럭도 70-80km 시속으로 과격하지 않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분 위 식물만 딱 정신이 혼미해진 것 같았습니다. 마치 도와 달라 애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양손을 벌려 마구마구 손짓했습니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 그렇게 얇디얇은 가지가 부러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그렇게 몸을 흔들어 댔습니다. 그러다 결국 후드득~ 하나둘씩 화분 맨 위 작은 잎들이 찢여 앞으로로 차 앞으로 날려 떨어졌습니다. 찢긴 잎이 파편이 되어 햇살에 부딪혔습니다. 차 밑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내 눈앞으로 날아와 사정없이 앞유리에 부딪혔습니다. 그렇게 제가 출구로 빠져나가기 전까지 그렇게 마구마구 찢긴 잎들이 바닥으로 나뒹굴었습니다. 20km 이상을 그렇게.


20km를 쫓아가면서 혼자 그랬습니다. 비닐봉지 하나만 씌워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얼기설기 노끈으로라도 살짝 동여매었으면 했습니다. 물론 의도치 않게 그렇게 무심코 실었다는 건 흰 트럭의 주행 모습만 보고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화분에 닿지 않게 몸이 먼저 바빴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무심했습니다. 잘 자라고 있는 그 식물은 도착지에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 볼품없어졌을 겁니다. '한방에 변해 버린' 게 되는 거죠. 물론 볼품은 우리 눈에 뵈는 거니까 그렇다 쳐도 그 식물은 무슨 죄가 있을까 싶어 집니다.


시속 70km면 초속으로 19.4m/s입니다. 80km면 22m/s 정도 되는 바람의 세기입니다. 여름, 가을에 우리나라에 몰아치는 태풍입니다. 태풍의 시작이 17m/s 이상입니다. 오늘 이 도로에서 딱 저 식물만 태풍을 겪은 겁니다. 나는 평온한 데 주변에서는 누군가가 태풍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처럼. 그래서 눈이 필요합니다. 그건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지요. 주변을 눈여겨 돌아보는 지혜로운 이들이 많아지는 공간,  장소, 지역. 그곳들이 사랑으로 행복이 넘쳐나는 곳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쓰다 보니, 많이 철들지 않은 오십 두 살 - 아, 같은 성씨를 가진 분 덕에 올해부터는 한 살 줄었으니 오십 한살이군요 - 어른이의 감정이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활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게 꽤 자주 있어 슬쩍 넘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예산 때문이지만, 큰 화재가 난 그 방음벽도 무심했던 겁니다. 불이 나겠어? 하면서 그냥 그냥 그렇게 계획을 세웠던 겁니다. 학교에서 몇 억의 예산을 가지고 일 년 동안 교육활동을 하는 업무를 오래 했습니다. 그런데 예산을 쓰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까를 기획하는 단계의 문제의식이 문제인 겁니다.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영역입니다. 가장 우선해야 하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그 가치에 우선하는 게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트럭위 여인초에 혼자 흥분한 진짜 이유를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는군요. 작년 한 해가 바로 제가 흰 트럭위 여인초 같았던가 봅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게, 서로를 이해한다는 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게 쉽지 만은 않다는 진리. 올 해는 저 트럭위에서 몸부림치며 팔다리 찢기지 말고, 안전하게 내려와 가족과 글쓰기에 매진하자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학교에 학년 시작을 하기도 전에 보직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담임 역할에만 충실하면서, 가족과 글쓰기에 매진하는 한 해를 만들어보자는 다짐으로. 일단, 마음을 먹었으니, 잘 될꺼라 스스로 또 한번 믿습니다. 그 과정을 이야기로 나눌 수 있기를 또 개인적으로 약속해 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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