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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06. 2023

마우th보다 마우s

책상을 키높이로 바꾸면서 마우s와 키보드 세트를 새로 구입했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세트다. 이전에 사용하던 게 오래되면서 연결이 자주 끊어졌기 때문에. 키보드보다는 마우s가 자주 멈추어 섰다. 그 덕에 꽤 한참 동안 마우s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다. 마침 양손잡이로 전향 훈련 중이라 왼손으로 더욱 신중하게. 마우s 포인트를 보면서 아주 미세하고 섬세하게 천천히 천천히 움직인다. 그럼, 그 속도에 맞춰 포인트가 내가 원하는 대상 위에 살포시 올려 앉는다. 조금이라도 쓰윽 움직이면 못 따라온다. 아니 안 따라온다. 슬쩍 움직이다 멈추고 보란 듯이 나를 쳐다본다. 우리 집 타닥이가 야단맞으면 멀찍이서 검은 눈동자 사이로 빼꼼히 흰자를 드러내듯이. 


그러고 보니 나의 마우th도 뇌와 블루투스 기능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신경망으로 이어저 있다. 그런데 뇌와 연결된 마우th의 기능 역시 요즘 자주 끊김 현상이 발생한다. 손으로는 냉장고를 열고 눈으로는 한참을 들여다 보고는 서있다. 길을 가다 휴대폰 화면을 보면 길 가운데 자동차 라이트에 고정된 길고양이가 된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나 혼자의 버그이다. 그런데 A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마우th는 b라고 내뱉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는 데 있다. 그렇게 말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마우th는 이미 내뱉고 만다. 그런데 이 현상이 자주, 자꾸 발생하는 장소와 상황이 있다. 선택적 기능 저하증이다.


그러고 보면 꽤 오래전부터 마우th와 뇌의 블루투스 기능이 저하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마흔이 다 되어 갈 제자. 지금은 PAPS라고 부르지만 '체력장'을 하던 그날. 나의 담당은 오래 달리기 기록 측정. 한 반을 운동장 반으로 나눠 반반씩 한꺼번에 달리게 시킨다. 스피트 스케이트 팀추월 경기처럼. 운동장을 여섯 바퀴를 돈다. 두 바퀴 정도를 돌면 선두와 후미로 길게 아이들이 나누어진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면 맨 앞을 달려 나오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서 외쳐 준다, '한 바퀴!'라고. 한 바퀴 남았다고 알리는 거다. 비몽사몽인 아이들이 마지막 바퀴를 착각해 미리 멈추서나, 더 돌지 않게 하기 위해. 하지만 이게 정신이 살짝 없어진다. 먼지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아이와 가슴 밀어내며 제대로 달리는 아이를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눈으로 대략 제는 몇 바퀴째라는 걸 감을 잡고 있어야 한다. 서른 명 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그 제자가 코너를 돌아 운동장 가운데에 서 있는 나에게로 오만 인상을 쓰며 달려들어온다. 그때 외쳤다. '한 바퀴!'하고. 그런데 그 아이가 내 앞을 지나가면서, 인상을 팍 쓰면서 내뱉었다. '무슨 개소리야!'하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아이들이 밀려 들어왔다. 그렇게 한 바퀴를 하나하나 외쳐 줬다. 그리고 후미 그룹에서 터덜거리며 결승선에 들어오는 그 아이를 다시 불렀다.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그 제자는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너 아까 뭐라고 했어?'라고 참 예쁘게 물어봤다. 그런데 이 녀석, '뭐가요?' 하면서 그냥 지나치는 거다. 그래도 모양 우습게 쫓아(?) 가면서 두어 번 더 물었다. 입이 바짝 마른 그 아이는 그제야 멈춰 섰다. '왜요?'.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물었다. 물으면서, 물으면서 나의 분노게이지가 올라가는 걸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급기야 그랬더니, 그 녀석 대답 왈.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무스그 소리라고 했어요. 그냥 입에 밴 습관이라....' 정말 많이 억울한 눈빛이었다.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나와 친구로 지내는 동갑이다. 학생을 위해 중간에서 부러, 없는 말 지어낼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 오히려 더  엄격하면 엄격했지. 나중에 그 친구에게 설명을 듣고는 이해가 갔다. 그 아이는 평소에도 애어른 같은 그런 류의 말들을 잘 쓰는 아이라고. 물론 학년에서 내로라하는 꾸러기였다. 애 같지 않은 조숙함에 어른 뺨치는 말투. 쪼잔해서 찾아봤다. '무스그'. 무엇을 뜻하는 사투리였다. 그런데 함경도 사투리, 북한 말이다. 어릴 적 월남하신 할머니랑 살았나, 아니지 그럴 수 없지. 그럼, 영화나 드라마에서 들어봤겠지 했다. 


나를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일 거다. 자기의 인격으로 개성으로 습관으로. 하지만 그러한 근본적인 차이를 상쇄할 만큼 공통된 표현방식이 마우s와 마우th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입을 이용해야 살아갈 수 있다. 먹어야 살고 표현해야. 설명해야 하고 따라 해야 한다. 맞장구를 쳐야 하고. 대답을 잘해야 하고. 절체절명의 인터뷰를 잘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상담, 입사, 결혼 등등. 하지만 그런 마우th는 금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 동안 접하게 되는 이들과 몸나이 차이가 커지는 요즘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입을 조심하라는 건 말을 조심해야 만사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이 들수록 말을 줄이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한 이유는 살다 보면 가장 처절하게 경험하게 되는, 진리이다. 


요즘 나는 마우th 대신 마우s에 더 의지하고 있다. 일부러. 말대신 나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은 아니다. 정성껏 쓰고 저장한다. 다시 읽고 다시 저장한다. 완료 버튼을 클릭한다. 배로 호흡을 깊게 한다. 그렇게 마우s를 귀하게 다루는 요즘이다. 키보드의 수고로움을 토닥이는 화룡점정이다. 하지만 글은 말보다 더 조심스럽다. 글은 말보다 신중하다. 글은 말보다 정직하다. 그래서 마우th의 불안정성 보다 마우s의 위대함을 차츰 더 많이 느끼면서 산다. 그런 내가 참 다행이다 싶다. 앞으로 계속 지켜낼 수 있어야 할 내 삶의 가치 중 하나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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