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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05. 2023

찬란한 5월 뒷풀이

사진: Unsplash의Scott Webb

4월이 꽃, 꽃샘추위, 황사, 미세먼지, 봄비로 변덕스러운 봄이었다면 5월의 봄은 여름을 만나는 길목입니다. 오늘 어린이날. 그 길목에서 여름비가 당겨서 내립니다. 그래도 5월은 5월입니다. 봄의 절정이지요. 내일 6일이 절기상 여름으로 들어선다는 입하입니다. 24 절기 중 곡우와 소만 사이에 있는 7번째 절기로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입니다.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들어찬다는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穀雨,  보리를 수확하고 본격적인 모내기를 하는 소만小滿 사이에 입하가 있네요. 입하 무렵에 많이 피는 쌀튀밥 닮은 이팝나무는 '입하목'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혔졌다고도 합니다. 예전 교과서에서는 계절 변화를 절기 이야기로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빠져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기인한 절기 구분은 택시가 날아다니고, 달여행을 하는 지금에도 매우 유용한 구분이지 싶습니다. 농경에 필수조건이었던 날씨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삶의 경험치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량 생산, 대량 소비 구조의 첨단 사회일수록 날씨변화에 따른 수요, 공급의 탄력적인 대응 전략이 더욱 절실해 진건 분명합니다. 오늘 전국의 부모님들이 십몇 년 만에 비 오는 어린이날을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덕분에 5월의 봄은 4월에 비해 조금 더 의젓해진 봄입니다. 별로 변덕스럽지 않은 상황을 그저 기념하고 즐기기만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1일 노동절을 시작으로 여름의 문턱 입하 전날인 오늘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0일 유권자의 날, 11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15일 스승의 날, 15일(5월 셋째 월요일) 성년의 날,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21일 부부의 날, 27일 부처님 오신 날, 31일 바다의 날입니다. 5월 3분의 1이 세리머니 ceremony입니다. 6일, 7일, 13일, 14일, 20일, 21일, 28일. 한 주의 세리머니인 토요일, 일요일, 29일 대체공휴일, 누구의 생일, 몇주년 결혼기념일 등을 빼더라도 말이지요.


ceremony. cere곡물 + mony상태로 만들어진 의식, 의례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어떤 일의 결과를 축하하고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날이지요. 한 해 농사가 잘 되어서 식량으로 쓸 수 있는 곡물을 많이 수확하게 되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었겠죠. 예나 지금이나. 골을 넣은 뒤, 안타를 친 뒤 하는 약속된 동작이 세리머니인 것처럼. 국립국어원에서는 골 세리머니를 '득점 뒷풀이'라고 표현합니다.


맞네요. 세리머니는 우리 문화 속에 있는 뒷풀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5월은 봄의 절정에서 만나는 한가득 뒷풀이의 달입니다. 8시간 노동시간 확보 기념 뒷풀이, 자식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 기념 뒷풀이,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부모님이 함께하는 행복 기념 뒷풀이, 어른의 책임감을 갖고 한 표를 행사하는 시민권리 기념 뒷풀이, 일제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민초들의 129년 전 승리 기념 뒷풀이, 내 곁에서 잔소리를 날려 준 선생님에 대한 감사 다짐 기념 뒷풀이, 성년의 매운맛을 보기 시작한 어른 기념 뒷풀이,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에 대한 고마움 추념 뒷풀이, 부부의 세계 보유 기념 뒷풀이, 부처님 탄생 기념 뒷풀이, 바다 관련 산업 종사자 위로 뒷풀이.


5월. 한가득한 뒷풀이 속에서 쓰리콤보(돈 쓰고 몸 쓰고 마음 쓰는)가 넘치는 한 달이 될 듯합니다. 내가 먼저 충전이 되어야 할 5월이지 싶습니다. 푹 자고, 잘 먹고, 생각하고 말하고, 말하고 다시 생각하고. 말하기보다는 더 듣고. 부부, 부모, 아이들. 함께 하면서도 각자의 의견을, 시간을, 쉼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의 감사함을, 수고로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뒷풀이는 몸과 마음 충전을 위한 거니까요. 그래서 뜨거운 여름을 시원살랑하게 충전했던 5월의 에너지로 살아낼 수 있으니까요.


오늘 어린이 날입니다. 아직 내 안에 있는 어린 나와도 의미있는 대화가 있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싶어집니다. 우리 모두의 충전 가득한 찬란한 5월 뒷풀이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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