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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07. 2023

Drama.2

[일상여행2]...사진:unsplash

(이 글은 https://brunch.co.kr/@jidam/731에서 이어집니다.)


물론 드라마와 영화는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있지요. '그건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란 표현처럼. 이건 각본의 문제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다음 장면을 알고 지금 장면을 만드는 거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경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그건 자기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과거,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가 뒤바뀌는 그런 경우는 짜릿하긴 하지만. 보고 나면 현실이 더 답답하게 여겨지는 이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본 있는 드라마에 빠지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자신의 [지금, 여기, 언제나의 오늘]이라는 '각본 없는 나의 드라마'에 연출되어야 할 장면. 그 장면을 만들고 회피하기 위한 정보와 노하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내 삶이라는 드라마에서 다음 장면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랫배에 힘주고 한번 흠흠, 하면서 다시 시작해 볼 용기. 다가가서 말할 용기. 메모해서 전할 용기. 그 용기를 현재 나의 장면에 조금은 첨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드라마는 다 우리들 이야기야,라고 동의하게 되는 게 몸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경향인가 봅니다. 


하기야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는 노랫말처럼. 젊으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부정하려는 에너지가 충만하지만, 몸나이가 들면 지나온 장면들이 더 많이 보이니 그럴 수밖에요. 며칠 전 일팔 청춘 따님이 아침 러시아워 때 지하철을 환승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 긴 줄에 서려는 순간. 지팡이를 들고 걷는 인상 괴팍하게 생긴 - 요건 따님 표현입니다 - 할아버지가 그 지팡이로 두 서너 사람들을 밀치면서 줄에 들어오셨다네요. 그 두서너 중에 따님도 있었다고. 


장면을 선택하고 그 장면에서 떠오르는 대사를 선택하는 것도 다 다릅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사람이 다 다르게 생긴 이유는 다 다르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다 다르게 살아가니까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장면들로 채우는 거지요. 몇 부작 일지 모르지만, 분명 언젠가는 끝나게 될 자기 인생의 드라마를. 지금껏 나의 인생 장면에 조금씩 영향을 줬을 대사들은 뭐가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하찮은 기억력이라 봤던 드라마 제목을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지만.






=> 지금도 자주 쓰는 대사들입니다. 급식 지도 할 때 가끔은 '줄을 서시오'라고 외칩니다. 줄 서, 줄 서하면 왠지 모르게 나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늘어지게 하면 나 스스로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물론 아이들은 모르지요. 아, 동료들 중에도 훔쳐보듯 쳐다보는 분들도 있어요. '자꾸 하면 습관 된다'도 잔소리 랩 때 자주 인용(?)합니다. 특히 드라마 대장금의 이 대사는 암기와 이해를 차이를 설명할 때 잘 쓰고 있습니다.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어. 그건, 그냥 아는 건데'. 억양만 잘 컨트롤하면 재수 없는 대답이 아니라고. 자꾸 봐서 기억이 나는 거면 그건 단순암기의 수준을 넘어가는 중이라고.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거라고. 


=> 미생의 저 대사는 눈물을 참 많이 흘리게 했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보다 한참 전의 일이지만. 잘 나가던 스타트업-그때는 스타트업, 뭐 이런 표현이 없었지요-에서 신입으로 시작한 사회생활. 밤새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지도를 만드느라 매일 이어지던 야근. 마감날에는 밤샘도 기본. 하지만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직감'으로 마감 끝내고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 다음날 사표를 썼던 그 과감함이 떠올라서요. 지금 보면 잘했다 싶으면서도 지금 이 장면의 나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때의 장면이라. 아, 길라임 씨~ 길라임 씨~ 하던 이 표현은 한참 동안 내 폰에 저장된 김 씨인 아내의 전화닉네임이었네요 ㅎㅎ. 이선균 배우를 보면서 나도 후계동 같은 마음의 고향이 있었으면,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 동갑내기 아내와 같이 푹 빠져 봤네요. 나중에 실제 촬영했다는 인천의 한 동네에도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던 최초이자 최후의 드라마인가 봅니다. 


=> 이건 다 러브러브한 이야기인데,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서 좋아요. 습관적으로 부르지만 그렇게 아들을 부르는 엄마. 그런데 아들의 이름을 불러요. 그게 좋아요. 누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특히 가족이 그렇게 하는 경우는 너무 없으니까. 항상 누구 아빠, 누구 부장, 아범..... 나 떨고 있니를 볼 때가 군대를 제대하던 달이었어요. 너무 마음 편하게 보면서 앞으로 펼쳐질 나의 사랑 장면을 상상해 보곤 했던 것 같습니다. 파리의 연인 이 대사는 신혼 때 정말 많이 했던 말이네요. 육아에 일에 지친 상황에서 아내도 나도 경쟁하듯 퇴근하면 말이 없어졌어요. 화는 나 있는데 서로 말을 안 해요. 말을 해서 풀어야 하는데 말을 안 하니까 스스로의 생각에서 오해가 태평양이 돼요. 뭐 뉘앙스는 다르지만, 싫은 말을 예쁘게, 좋은 말은 더 예쁘게 서로 잘하는 게 찐 사랑을 나누는 사이라는 생각이 짙어지는 게 큰 영향을 준 대사입니다.  


=> 살아가면서 찾아오는 수많은 시련의 장면들. 결국은 그 장면을 지나 또 다른 장면들을 연출하게 되는 게 인생이지요. 그런데 그 장면들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어떤 연습이 되는가가 그 사람의 인상을,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작은 부분에 감사할 줄 알고, 그 감사함을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면. 내 마음속에서 [지금, 여기, 언제나의 오늘]에 항상 꽃밭이 함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몸나이는 여름도 다 지나가지만, 언제나 마음속에는 봄꽃이 넘쳐나는 꽃밭을 말이죠. 


=> 살아 내느라 만들어지는 나의 장면들이 하나같이 의미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아 참 좋습니다. 부모와 자식을 항상 저울 위에 올려놓지만, 언제나 자식한테 먼저 기울어집니다. 하지만 그 마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부모님. 당신들이 나였을 때도 그리 살수 밖에 없었다고 위로합니다. 하지만 그 눈망울 속에는 그래도 나도 좀 더 안아달라 애원하고 있다는 것을. 


=> 앞만 보고 달리지 말자, 는 말은 많이 합니다. 하지만 어쩌다 어른이 된 나는 그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멈추라고? 하는 극단적인 생각만이 치밀어 올라올 때가 그렇지 않은 때 보다 훨씬 더 많았지요. 그런데 그래도 지금은 여기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일 겁니다. 그 길에 수많은 조연들이 나의 장면이 무너지지 않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채워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걸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여기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고개 들어 주변을 자주 봅니다. 틈만 나면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한 장의 사진에 내 마음을 담아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저 습관처럼 마음을 그렇게 두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여기에 와서 조금씩 알아가는 게 참 좋습니다.


=> 나의 드라마는 지지와 응원으로 더 멋지게 만들어집니다. 좋아요가 좋은 이유이지요. 하지만 가족이란 운명적인 만남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없어요. 우리 자식들이 나를 선택하지 못했던 것처럼. 혹시 해서 물어봤어요. 너 다시 태어나면 아빠 아들이 될래? 딸이 될 거야? 앞에서 눈을 깜빡거리면서 귀여움을 떨어도 냉큼 좋아라고 답을 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조금씩 경험이 늘면서, 몸나이가 채워지면서 내가 그 각본 있는 진짜 같은 가짜이야기에 눈물짓고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다 짜놓고 하는 이야기에. 그리고는 그 속에서 나의 장면들을 연결시키는 연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장면들을 수정하고 아직 찍지 않은 장면들을 미리 그려보려 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어느 장면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 장면에는 보이지 않는 사정이라는 게 다 있다, 이유 없이 만들어지는 장면은 없다라고. 각본 없는 나의 드라마에서는 보이는 장면이 다가 아니지요. 오히려 장면과 장면 사이에 잘려 낸, 잘려 나간 장면들이 더 많을 겁니다.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의 소중한 장면을 위해 나만의 대사를 짓는 연습을 합니다. 출근 전에는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라고 중얼거립니다. 나가서는 이 일이 힘은 드는데, 금세 익숙해져. 벌써 스무 해가 넘었어. 당연할지도 몰라. 그런데 익숙해질 게 따로 있지. 우리 일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라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나는 태연하게 나의 또 다른 장면들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그래야 할 겁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낮 꿈에 불가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_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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