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May 08. 2023

고마움이 나를 멈추게 한다

사진: Unsplash의Pro Church Media

플랭크 5분은 참 안 가는데 한 시간은 후딱이다. 연속된 강의 한 시간은 더딘 데 하루는 참 빠르다. 출퇴근하면서 하루는 더딘 데 일주일은 금방 지나간다. 야근하는 일주일은 참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은데, 한두 달은 금방 지나간다. 그렇게 고향, 학교, 직장, 육아의 시간들이 참 빠르게 스치듯 지나갔다. 지금도 여전히 물 흐르듯 솟구치는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그 속도 속에 나를 멈추게 하는 고마움이 켜켜이 쌓여 있다. 


언제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잠깐이라도 멈춤을 즐겼을 때이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그 순간에 집중하면서 편안해질 때이다. 지금 마음껏 봄이다. 퇴근하면서 바로 침대 위로 몸을 던지고 싶지만, 꾹 참는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고 밖으로 나선다. 다박다박 걷다 보면, 가로등 아래 수줍게 숨어 있는 이름 모를 봄꽃, 봄나물들이 뒤섞여 지낸다. 나는 멈춘다. 잠깐 쪼그려 앉아 사진을 찍는다. 말을 걸어 본다. 즐거움이 쌓이면 고마움이 된다.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가 들린다. 걷다가 멈춘다. 눈과 몸을 돌려 찾아본다. 그 새가 그 새 같지만, 언제나 들리는 새소리이지만 나는 그만 그 소리에 멈춘다. 그 소리 아래를 타닥이가 터덜터덜 걷는다. 그러다 냅다 흙길 위로 올라간다. 코끝을 흙 위에 갔다 된다. 그리고 킁킁거리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뱅글뱅글 돈다. 인상을 쓰지도 안 쓰지도 않으면서. 그러다 충분히 돌았다 싶을 때면 엉거주춤 자그마한 북극곰이 된다. 딱 미니어처 북극곰이다. 그렇게 시원하게 똥을 눈다. 나까지 시원한 마음에 한참을 멈춘다. 새소리가들리고 타닥이가 잘 걷고, 똥 잘 싸는 하나하나가 모두 고마움이다. 


내가 외출을 할라 치면 일팔 청춘 따님의 눈이 여기저기로 따라다닌다. 머리를 보고, 얼굴을 보고, 입고 있는 옷을 본다. 성능 좋은 복합기 마냥. 초록빛만 돌지 않았지 징징 나의 모든 것을 스캔 중이다. 그러다 잠깐. 이건 안 어울려, 저건 좋아, 머리가 왜 그래, 눈썹은 뭐야 하며 댓글을 달아 준다.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생각하라며 타박한다. 기쁜 마음에 멈춘다. 따님은 언제나 나의 고마움이다. 



차가 움직일 때는 항상 엔진은 작동한다. 그 엔진이 잠깐 멈출 때 나도 멈춘다. 그래야 살맛이 난다. 몇십 초씩 그렇게 멈추는 게 쌓여 어느덧 100시간이 가까워진다. 그런 나의 엔진의 거침없는 브레이크는 나의 아내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내 덕에 나는 멈출 수 있었다. 멈춤은 폭노 - 폭발적인 분노 - 제어 장치이다. 멈추는 연습이 연속 동작으로 이루어지면 좋은 습관이 된다. 그 습관이 쉼이다. 그렇게 잠깐 쉼을 통해 멈추어 쓴 게 이백 서른 개가 넘었다. 이렇게 새벽을 쓸 수 있는 모든 환경이 고마움이다. 


어버이날이다. 몇 시간 푹 삶은 오리 백숙 살을 발라 드린다. 소화 잘되고 몸에 좋은 오곡 죽도 두 번, 세 번 담아 드린다. 다, 덕분이라고, 다들 잘 살아내는 덕분이라고. 서로 잘 살아내는 게 가장 큰 보시라고 토닥이신다. 먹고 사느라 미친 듯이 자신의 속도대로만, 자식의 방식대로만 살아내는 데도 토닥이신다. 평생 자신의 살을 뜯어 먹여 살리고도 또 살을 양보하신다. 당신도 우리도 다 어버이라며 서로가 서로를 같이 챙겨야 한다고 토닥이신다. 오리 살을 먹었는지, 가시고기 살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일이나 말에서 느끼는 흐뭇하고 감사한 마음. 고마움. 너무 얕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자식의 속도를 멈추고, 그 멈춤을 자식이 보게 하는 마음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덕분에 오늘도 그 마음으로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다. 쓰담아 받던 그 촉감, 온기로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나의 그런 마음이 꽃, 나무, 풀, 바람, 공기, 다른 이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게 그렇게 잘 살아낸다. 찬란한 5월의 세리머니 속에서. 

작가의 이전글 Drama.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