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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09. 2023

차가운 마들렌의 사연

사진: Unsplash의Luna Hu

시험기간에는 점심대신에 간편식이 제공된다. 보통 종례 시간에 하나씩 들고 바로 하교할 수 있도록 샌드위치, 주스, 요거트, 견과류 등이이다. 많은 경우 메인은 샌드위치다. 아주 흔한 메뉴다. 그러다 보니 서너 명 정도는 아예 가져가질 않는다. 



한명 한명 손에 쥐어 줘도 사양하는 아이들도 있다. 받았어도 가다가 버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러지 않지만. 간편식을 나눠주고 나면 종이 박스, 플라스틱 컨테이너, 비닐류 등이 생긴다. 그걸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아이들이 하교하면서 버려준다. 우리 반 룰이다. 남는 건 그 아이들한테 하나씩 두 개씩 더 준다. 



어느 1차 지필평가 기간. 아이들의 오~, 와~ 하게 만든 간편식이 나왔다. 마. 들. 렌. 조개 모양 빵이 몇 개씩에 오~, 와~가 아니라 한 박스씩 나눠졌기 때문이다. 내내 냉장고에 있다가 금방 꺼낸 듯 커다란 박스 자체가 차가웠다. 시험 끝나고 옆구리에 끼고 시원하게 하교할 수 있게. 



하나씩 받아 들고 하교하는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안 먹어요, 안 받아요, 그냥 가면 안되요라고 하지 않았다. 처음 이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가져간 게. 아이들을 보내고 나중에 교무실에서 보니 상자 안에는 낱개 포장된 통통한 마들렌이 스무 개 넘게 들어차 있었다. 



그날 사회과 선생님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그곳에서 알았다. 아이들이 오~ 와~ 했던 차가운 마들렌에 숨어 있는 사연을. 이야기는 이랬다. 원래 점심 메뉴는 다른 거였단다. 그런데 아침에 점심 식자재 납품 회사에서 트럭이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단다.



결국 납품 시간을 지키지 못한 업체 대신 급하게 대체된 간편식이 오~ 와~ 마들렌이었던 거다. 9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똑같은 노란색 박스를 하나씩 들고 신나게 하교할 무렵, 그 업체 사람들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날 하루 손해 본 비용도 비용이지만 규정상 그런 사례가 생기면 해당 업체의 납품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하루의 손해로 끝나고 계속 건강하고 싱싱한 먹거리를 납품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그 다음 날 마들렌에 숨겨진 사연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밖에. 흔하디 흔한 조개빵 하나일지라도 어떻게 자기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동안 꽤 많은 아이들 눈빛이 맑게 흔들렸다. 항상 맨 뒤에서 앉아 앞 친구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가리던 벼리도 머리를 빼꼼이 내밀어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 마음속에서 다른 이들의 통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걱정하고 함께 기도해 주는 씨앗이 자라는 듯 했다. 



그러면서 간편하게 하나씩 쏙 챙겨나가는 것들도 나 대신 누군가가 애써줬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교실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간편식은 같이 시험을 본 누군가가 5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 들고 다시 5층까지 올려다 준 거라는 걸. 다음날 교실이 여전히 깨끗한 것은 빈 상자와 종이 박스를 다시 들고 누군가가 분리수거장까지 가져가서 처리해준 거라는 것을. 



별 일 없는 일상을 우리는 가끔 밀어내려 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재미없이 지루하게만 느껴진다고. 그런데 일상이 반복되지 못한다는 건 '별 일'이 생긴 거다. 그래서 원래대로 잘 작동하던 무엇인가가 멈춰 서버리는 거다.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서 편리한 리모콘이 작동을 못하듯. 나의 일상은 언제나 나 대신 움직여주고, 나 대신 기도해주는 누군가에 의해 안전하게 채워지는 거다. 




...한줄/ 공감 능력은 그 사람의 실력과 가치를 훨씬 더 높여주는 영양제입니다. 주변에 관심을 가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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