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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09. 2023

화양연화

휴일 아침. 브런치를 먹으면서 우리 셋은 '오늘 뭐 할까'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오늘의 행선지는 장인어른, 장모님 댁으로 정했습니다. 집에서 한 시간 조금 넘는 거리에 계십니다. 43년생인 장인어른은 귀가 일찍부터 안 들리셔서 보청기를 끼고 계십니다. 그래서 크게, 크게 소리를 질러야 대화가 됩니다. 45년생인 장모님은 몇 해 전 인공무릎 수술을 하신 뒤에도 두 시간 거리의 절에 열심히 다니십니다. 재개발 때문에 임시로 계시는 지금 빌라 작은방에서도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기도를 하십니다. 


그 힘으로 자식들이 사위가 손자들이 지금처럼 살아낸다고 믿습니다. 일팔청춘 따님은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집에 가는 걸 더 좋아합니다. 안아달라는 것보다 안아주는 걸 더 좋아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린 그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브런치를 간단히 하고 출발했습니다. 보통은 집 근처에 다 가서 전화를 드립니다. 거의 언제나 두 분 다 집에 계시니까요. 미리 전화를 하면 밥하고, 국 끓이고, 갈비를 졸이시니까요. 오늘은 설 이후 3주 만에 가는 겁니다. 2주가 넘게 세 식구 모두 돌림병으로 격리하고, 후유증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미리 연락을 드렸습니다. 장모님은 두 시간을 당겨 기도를 올리셨다고 합니다. 도착을 하니 막 기도를 끝내고 나오셨습니다. 장모님도 장인어른도 토닥토닥 포옹으로 나를 반기셨습니다. 


우리는 아내가 찾은 맛집, 오리집에 도착했습니다. 생오리를 살아있는 숯불에서 구웠습니다. 넉넉한 1kg의 민물장어도 함께 구웠습니다. 옆에 앉으신 장모님은 '원래, 굽는 사람은 못 먹어'하십니다. 그러면서 계속 쌈을 싸 주십니다. 당신보다 더 많이 먹게 만들고야 맙니다. 건너편에 앉은 아내가 그럽니다. '먹을 때마다 싸워'라고. 웃상 오리집 사장님이 장모님 머리를 보고 한 말씀 거듭니다. '와! 어르신. 염색한 거 아니죠? 어쩌면 그렇게 예쁜 백발이신가요?" 입 짧은 일팔청춘 따님도 오늘따라 참 맛있게 많이 먹습니다. 장어 먹기도 시도합니다. 하지만 오리구이가 더 맛나다고 신나 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넓은 마당 같은 주차장으로 나오니 어둑해졌습니다. '아빠, 바로 출발?', '아니, 할머니댁에 가서 노란 커피 한잔하고 갈 거야'. 대답 대신 따님 얼굴에 설레는 미소가 번집니다. 그렇게 다시 도착한 외할머니댁. 따듯한 장판에 자주색 담요 속으로 쏘옥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장모님은 '윤서방, 커피 먹어야지?' 하십니다. 장인어른은 벌써 노란 커피를 타고 계십니다. 오늘은 열여덟 따님도 노란 커피를 한 잔 합니다. 내 얼굴 앞에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면서 달콤함에 혀를 날름거립니다.


출발하기 전, 일팔청춘 따님이 눈짓을 합니다.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복화술을 합니다. 무말랭이, 동치미, 콩자반을 한 아름 챙겨 출발했습니다. '왜? 더 있다 가자고'. 조수석에 날름 앉은 일팔청춘 따님. 그럴 때는 보통 운전하는 동안 블루투스 디제이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와 연결된 블루투스를 끊어 달랍니다. 라디오를 끄자고 합니다. 따님 폰을 차에 연결합니다. 운전하는 내내 이 노래 어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요즘 빠져 있는 노래야를 재잘거립니다. 가끔 아내와 나의 신청곡도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김연지의 Whisky on the Rock, 아내는 크리스토퍼의 When I Get Old을 신청합니다. 따님은 김광석, 이문세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일팔청춘 열여덟. 나이가 드니까 그런 가사 좋은, 서정적인 노래가 좋아진다고 너스렙니다. 오늘은 한 시간 넘게 돌아오는 요즘 빠져 계신 팝송들을 틀어줬습니다. '이거 아빠 좋아하는 팝송이지?' 하면서 알아서 비틀즈의 Two of Us를 틀어줍니다. 그러다 언제나처럼 집 앞 도착 십여분 전쯤, 골아떨어집니다. 다 왔어~ 외칠 때까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전, 아내를 내려줍니다. 아내는 내리면서 따님을 깨웁니다. 몸을 떨며 일어난 따님은 두 번 중 한 번은 이럽니다. '응. 아빠랑 지하 갔다가 같이 올라갈게'. 차를 멈추고 나서야 우리셋 톡에 '사랑해'님이 보낸 메시지가 보입니다. 내 폰을 가져가 본인 이름을 그렇게 바꿔 놓은 지 오래인 일팔청춘 따님이 던져 놓은 메시지입니다. 



오늘이 우리 일팔청춘에게 화양연화였는가 봅니다. 이런 이야기를 따님과 주고받을 수 있는 지금이 나에게는 화양연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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