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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07. 2023

뜨거운 알람

우리 집 댕댕이 코코(전 '타닥이'라고 불러요. 마루를 구르는 발소리 때문에)를 한참 전 글에서 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 https://brunch.co.kr/@jidam/169

이제 8살이 되었네요. 아내는 벌써부터 나이 들어가는 타닥이를 걱정하며 끼고 잡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잠이 줄어든다는데 타닥이는 반대입니다. 천천히 잠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살짝 귀찮아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터덜터덜 느려집니다. 침대 위에서 빼꼼히 눈만 거실로 나오기 일쑤입니다. 아예 눈을 뜨지 않을 때도 많아졌습니다. '고구마', '까까'하는 소리를 듣지 않은 이상에는.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라도 갈라치면 언제 달려왔는지 문 앞에서 빼꼼히 앉아 있었야 하는데 말이죠.


새벽에 일어나서 양치하고 물을 끓이고 화장실을 다녀와 글을 쓰러 들어갈 때에도 타닥이는 엄마옆에서 잠을 잡니다. 시도 때도 없이 타닥거리며 새벽 적막을 깨고 달렸던 건 '나 어릴 적' 꿈같은 이야기지요. 시각에 관계없이 모든 소리에 반응하면서 타다닥, 타다닥. 그러나 지금은 꿈을 꾸듯 다리를 휘저으며 코를 골면서 깊은 잠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다 서재 유리창 건너편에는 어김없이 비슷한 시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모습이 유리에 비치면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각입니다. 6시 30분에서 40분 사이입니다.

요렇게 가끔 6시 전에 나를 찾아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직 안돼 코코. 가서 더 자. 엄마한테 가'라고 하면 이렇게 한번 쳐다보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몇 초를 단단한 엉덩이 근육을 실룩거리며 서 있다가 다시 타다닥, 엄마옆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6시 30-40분 사이에 다시 옵니다. 그런데 다시 온 뒤에는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돌아서지 않습니다. 문을 올라타며 버팁니다. '으음~흐음~'하면서 소리까지 냅니다. 배고픈 겁니다. 아침을 달라는 겁니다. 잠은 다 깼다는 겁니다.


문을 열어 주면 껑충겅충 자기가 노루인 줄 아는 것 같습니다. 가슴과 배를 쓰다듬어 줍니다. 팔딱팔딱 빠르게 뛰는 심장이 손바닥 가득 느껴집니다. 따뜻합니다. 아니, 뜨겁습니다. 그렇게 안아서 밥통 앞에 데려다주고, 사료를 줍니다. 씹는 소리가 너무나도 경쾌합니다. 아침을 알리는 고소한 음악입니다. 슬레이트 지붕 위를 후드득 떨어진 소나기 끝 같습니다. 토도독, 토도독 토도로록.


나의 새벽을 함께 하는 자그마한 심장은 특히 식구들의 옷을 좋아합니다. 식구들의 옷을 물로 다니면서 냄새를 맡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깔고 엎드려 있는 걸 즐깁니다. 그래서 우리 넷은 서로 자기 옷을 애용할 수 있도록 길목 길목에 일부러 방치하기도 합니다. 타닥이가 가장 좋아라 하는 순서라면서. 어릴 때 남매는 그걸로 써로 입씨름을 합니다. '아니거든. 그 냄새를 가장 좋아한다는 건, 냄새가 심하다는 거야. ㅋㅋ' 하고. 하지만, 겨울이 되면 타닥이 역시 따뜻한 옷을, 특히 '엉따'를 좋아합니다. 건조기에서 갓나온 따듯한 빨래를 좋아합니다. 빨래 개는 동안 주변을 떠나지 않고 요렇게, 요렇게 앉아서 잠깐의 좌욕을 즐깁니다.  


십여 년 전 독일에 출장을 갔을 때 일입니다. 주택가 같은 곳에 있던, 오래된 주택 같은 벽돌로 지은 나지막한 호텔. 아침을 먹기 전에 앞에 있는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일찍 나온 독일인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더군요. 그렇게 한참을 돌다 밥때가 되어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아침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내가 한참 걸었던 그 공원, 같은 곳이 공동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지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가이드의 말로는 그 공동묘지 때문에 이 주변 주택가들이 인기(?)가 좋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에 자주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서양과 동양, 죽음과 삶, 흑과 백. 우리 문화는 어릴 때부터 구분하는, 확실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그런 환경에 자주 노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일상의 삶이 대화의 방식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했니? 안 했니? 식의 닫힌 질문에 답변에 익숙합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죽음과 삶도 같습니다. 죽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 죽으면 끝인 것. 그러다 보니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자랐고, 키우고 있습니다. 죽음은 '갑자기' 오는, 마치 와서는 안 되는 것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모든 심장은 크기에 관계없이 언젠가는 멈춘다는 사실을.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사인을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잘 보내기 위한 준비는 잘 사는 것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심장을 서로 더 자주 쓰다듬고 안아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알람 같은 하얀 심장 소리가 콩콩콩콩 건강하게 오래오래 움직이도록 서로 늘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제, 어제 타닥이 소변 패드에서 블루베리 씻은 듯한 물방울이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어제 낮에 따님이 카톡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병원에 데려갔다 왔다고. 요로결석이라고. 염증 주사를 2대 맞고, 사료를 바꿔야 한다고.


바빠서, 자기를 가장 하찮게 여긴다면서 타닥이에게 질투를 하던 일팔청춘 따님이 이번에는 제일 빨랐습니다. 앉고 걸어서 동물병원까지 다녀온 뒤 타닥이의 상태를 엄마, 아빠한테 자세히 설명하면서 함께 걱정하고 챙기고 앉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타닥이 약봉투에 '반려동물'이라고 써 있다지만, 일부러 동물과 인간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다 키우겠다면서 8년전 데려온 후 똥, 오줌을 치우고 산책은 내가 거의 도맡아 했지만, 신생아때 심장에 구멍이 생겨 태어나면서 가족을 그리 놀라게 했던 따님이 이제는 타닥이의 하얀 심장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러면서 생명의 가치와 심장과 심장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말보다 몸으로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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