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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11. 2023

아듀! 2022 윈터

사진: Unsplash의Josh Hild

지난 일주일은 참 따듯했더랬습니다. 두 세시에 10도를 넘어서서 시작하더니 목, 금에는 18도 23도를 넘어섰습니다. 오늘은 6시가 안된 지금, 벌써 9도를 넘어섰습니다. 퇴근하고 산책에 하러 나서면서 습관적으로 챙기는 목도리 사이로 좁쌀 같은 땀이 차작차작 거립니다. 늘 가는 산책로 사이에, 언제가 있었던 나뭇가지에, 그루터기와 그루터기 사이 땅 위에 수줍은 듯, 경쟁하 듯 이름 모를 새순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지난 주말에 들렀던 소금 커피숍 야외 테라스에 벚나무들이 얼마 안 있으면 꽃망울을 터뜨린다고 주인장이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어김없이 또 찾아와 주는 봄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또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회춘입니다. 다시 봄의 시그널은 무엇이 있을까요? 뭐니 뭐니 해도 이름 모를 봄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데 있습니다. 지구가 뜨거워져 시도 때도 없이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난다고는 하지만. 또, 길가는 이들이 걸친 옷이 밝게 하늘 거리는 데 있습니다. 그들의 표정이 웃고 있는 데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교복이 눈에 많이 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 서너 시만 되면 피로가 와다다다 몰려왔다 우다다다 몰려 간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겨울과의 진정한 헤어짐의 기준은 나에게는 하나 더 있습니다. 


어제 퇴근길. 아내를 픽업하고 집 앞까지 다 왔습니다. 오면서 아내는 고개를 숙이고 헤어숍을 예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펌을 했다고 일팔 청춘 따님도 아내도 극찬을 했던 60대 디자이너의 미용실. '항문'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던 그 미용실(https://brunch.co.kr/@jidam/495). 그곳에 나의 커트를 먼저 예약해 주었습니다. 커트를 할 때가 되었다고. 정작 아내가 가야 할 미용실은 예약이 마감되었다네요.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집 건너편 미용실(https://brunch.co.kr/@jidam/523 이 글에서 소개했었던 붕어빵 맛집) 앞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아~하~. 자기야. 없어졌네'하고 짧은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잉~'하는 아쉬움의 탄식이었습니다, 분명. 


그랬습니다. 사실, 2월 말부터 퇴근하는 길에 쭉 지켜(?) 봤습니다. 아니 퇴근길이 할매표 먼저, 미용사표 나중의 순서대로 보입니다. 물론 일부로 속도를 낮추면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야 하지만. 살짝 구부러진 같은 보도블록 저쪽과 이쪽 끝에 나란하지만, 멀찍이 있었던 붕어빵 리어카. 저쪽은 서른한 개 아이스크림 모퉁이에 몇 해 전부터 자리 잡았던 우리 동네 터줏대감, 할매표 리어카. 이쪽 끝은 작년, 올해 겨울에 미용실 출입구 옆 화분 공간에 쏘옥 들어선 미용사표 리어카. 우리 집은 이쪽에 가깝습니다. 아내의 표현처럼 우리는 초붕세권, 붕붕세권에 살고 있었던 겁니다. 


2월 말부터 지켜본 결과입니다. 0222(수) 할매표ㅇ 미용사표ㅇ, 0223(목) 할매표ㅇ 미용사표×, 0224(금) 할매표× 미용사표ㅇ, 0225(토) 할매표ㅇ 미용사표×, 0227(월) 할매표ㅇ 미용사표ㅇ, 0228(화)  할매표ㅇ 미용사표ㅇ, 0301(수) 할매표× 미용사표ㅇ, 0302(목) 할매표ㅇ 미용사표ㅇ, 0303(금) 할매표ㅇ 미용사표ㅇ, 0304(토) 할매표ㅇ 미용사표ㅇ...... 지난 한 주는 매일 야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퇴근길에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특히, 올 겨울 아내는 미용사표 붕어빵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어딜 가건, 친절하게 솔직하게 손님을 맞는 집들만 선호하는 아내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맛보다는 사람이 먼저죠. 언젠가 한참을 미용사와 이야기를 나눴드랬습니다. 그 모습을 차 안에서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참 열정적이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준비 안되면 말을 대충 때우지 못하고, 자기 것인 양 만들어 낼 줄 모르고, 느리지만 깊이 있게 사귀는, 그런 사람이라고. 붕어빵을 한 아름 가슴에 품고 차에 올라타면서 신이 나 이야기를 전해줬습니다. '붕어빵의 생명은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가득 들어 찬 따뜻하게 달콤함 팥이라면서, 저분이 넘치게 넘치게 넣더라구. 자기도 슬쩍 집어넣은 팥을 보면, 다시는 그 붕어빵을 먹고 싶지 않던데, 손님들이야 오죽하겠냐라고 했다'라고 일러바치듯 이야기를 하는 아내. '이거 봐, 이거 봐' 하면서 팥이 눈에서 꼬리까지 그득한 게 마치 들여다 보이는 것같이 들어 찬 붕어빵을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뜨거워서 한 손으로 다 감싸 쥐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겨우 내내 미용사표 붕어빵의 마력에 푹 빠졌습니다. 빠져 있는 그동안 낮의 피로를, 소소한 잡음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짜고 매운 일상에서 살짝 비껴 날 수 있었습니다. 퇴근길 붕어빵은 사서 바로 차 안에서 또는 걸어가면서 먹는 게 제 맛입니다. '저녁, 뭐 먹을까'를 즐겁게 생각하게 만드는 애피타이저입니다. 겨우내 늘 나와 아내만 기다려주는 것 같은 작지만 달콤한 공작소가 어제 퇴근길에 사라졌습니다.  



하늘, 구름, 비, 바람의 순리대로. 그러나 짧지만 깊었던 달콤한 기억으로 다시 뜨거운 일상을 살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딱, 일 년 뒤에 다시 상봉을 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미용사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를 기약하고 싶네요. 스스로의 기약은 짙은 아쉬움을 의미합니다. 아쉬움이 짙어질수록 설렘이 커지지요. 그 설렘으로 다시, 마음껏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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