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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12. 2023

보들, 야들, 유들

[풀꽃들에게]1_사진: Unsplash의Annie Spratt

이미 마음껏 봄입니다. 아침, 낮으로 기온 편차가 커지는 게 확실한 봄입니다. 주중 오후에는 벌써 춘곤증이 찾아왔네 싶게 노곤해지는군요. 앞으로 더 그럴 테고 황사와 미세먼지가 뭉게뭉게 막아서겠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생명의 싹이 터지는 봄이니까요. 오가는 길에도, 근무하는 곳에도, 산책하는 동네에서도 포사삭, 포사삭 조용히 조용히 요동하는 대지를 느낍니다. 봄이라는 시그널은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안개가 자주 발생합니다. 기온이 오르내리기 때문이지요. 바람이 약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그 덕에 넘어온 황사가, 풀썩거리는 미세먼지가 머리 위에 멈춰 있습니다. 그래도 마스크 쓰는 연습도 오래 했으니, 눈도, 코도, 귀도, 속도 편안해지는, 마음껏 봄을 만끽하렵니다.


눈, 코, 귀는 봄에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얘네들 덕분에 몸이 호강도 합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감각들이 형형색색으로, 향긋한 내음으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로 깨어나니까요. 눈높이에서 꽃들이 만개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꽃잎들이 겨우 내내 감았던 눈을 번쩍 뜹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구름이 재바르게 움직입니다. 그 아래에서 걷다가 멈추고 앉아 땅을 들여다보면, 봄의 전령들이 서로 사이좋게 곳곳에서 어울렁 더울렁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 바로 나물입니다. 나물. 어릴 적 강원도 산골을 뛰어다닐 때는 늘 흔했던 찬이, 도시락 반찬이 나물이었지요. 게다가 전부 다 자. 연. 산. 이름도 모르고 그냥 먹어야 하니까, 먹었지요. 


어릴 때부터 지금껏 먹어봤던 나물의 종류. 이 새벽에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검색 찬스 쓰지 않고. 자,  시작........ 달래, 냉이, 쑥, 개두릅(엄나무), 땅두릅, 민들레, 산마늘(명이나물), 더덕순, 돌나물(돈나물), 둥글레, 당귀, 미역취, 참취(취나물), 곰취, 고들빼기, 고비, 고사리, 죽순, 비름, 머윗대, 미나리, 씀바귀, 오가피, 방풍나물, 가죽나물, 곤드레, 고구마순.....



물론 요즘에는 온실에서 양식(?)되는 나물들도 꽤 있습니다. 대형 마트에 가지 않더라도 동네 작은 슈퍼에도 있지요. 그러나 시끌벅적하게 봄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곳 중의 으뜸은 여깁니다. 바로, 재래시장. 그래서 3월 중에는 꼭 근처 재래시장을 다녀옵니다. 봄에, 살아있는 봄을, 아니 나를 느끼기에는 재래시장이 딱입니다. 물론 봄이 아니더라도 사시사철 우리 가족은 재래시장 의자에 걸터앉아 주섬주섬 먹는 걸 아주 좋아라 합니다만. 일주일을 달리다 하루 이틀 쉬는 주말에 들로 산으로 가면, 좋겠지만 막힙니다. 피곤합니다.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래시장입니다. 몇 시간만 돌아다녀도 먹거리, 볼거리, 글거리가 넘쳐납니다. 


어제 재래시장에서 만난 봄


이런 게 힐링이다, 살아내야 하는 이유다를 그냥 눈, 코, 귀, 입,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봄나들이는 꼭 가까운 재래시장으로 가요. 그러면 거기에 들과 산에서 쏙쏙 나온 것들이 다소곳하게 옮겨와 봄처럼 신이 난 이들의 손에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한꺼번에 봄을 시작부터 끝까지 다 만날 수 있는 놀이터. 재래시장으로 가요. 그곳에서 겨우내 땅속에서 나를 기다려 준, 아니 내가 기다린 나물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온 세상을 뒤덮은 하얀 이불 안에서 차가운 바람을 막고 따뜻한 태양을 간직해 키워낸 나물을 영접할 수 있는 타이밍이니까요.

 

작년 전근을 와서 한 첫 회식 자리. 식당이 아니라 혼자 사는 선배의 집 넓은 마당에서 가까운 사람들 몇이 고기에 소주 한잔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면역력을 강화하고,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항균, 살균 효과에 기미, 골다공증 예방, 주근깨를 없애고 피부의 노화를 방지, 몸에 들어온 미세먼지, 황사를 배출하기까지  하는 그분을 영접하였습니다. 바로 가. 죽. 나. 물. 이런 효과는 비단 가죽나물만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모든 나물들의 효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특정 나물을 장복하거나,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단박에 탈이 날 수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 같지요, 뭐. 


요즘에는 가죽나물이나 달래, 냉이, 고구마순 등 반찬으로 흔히 상위에 올라오는 나물들이 요리(저장) 방법에 따라 1년 내내 곁에 두고 먹을 수는 있지만. 제철에 살짝 데쳐 먹는 나물만큼 본연의 맛과 향을 즐기는 방법은 없지요. 먹거리는 다 제철이 있는 거니까요. 아, 그리고 그 가죽나물을 시골에서 가져온 마음 따뜻한 후배님을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만나, 마음이 닿는 인연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두 배는 됨직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미소가 매력적인 후배님. 농을 던지면서도 선배들의 뼈를 때리는 유들유들함도 풍부하게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주말 부부라는 그 후배님은 직접 가죽나물을 살짝 데쳐서 가져왔습니다. 어찌나 보들보들한 지. 참, 오랜만에 입이 기억해 내는 어릴 적 맛이었습니다. 


보들보들. 살갗에 닿는 느낌이 매우 보드라운 모양입니다. 초고추장에 살짝 찍어 혀 위에 살포시 올려놓으면 그렇게 부드럽게 녹아내리듯 합니다. 밥 또는 고기 한 점을 같이 먹으면 보들보들함에 윤기가 돌고 말캉거리는 야들야들함으로 확 퍼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맑은 맛과 향이 입안 한가득입니다. 세상의 어떤 분노도 씹고 삼킬 수 있을 것 같이 편안해집니다. 행복해집니다. 오십 대가 되고 보니 이제야 조금씩 내가 보입니다. 십 대 때의 나. 아무도 건들지 말라고 온 세상을 밀어내던 나. 온갖 고민과 탄식을 다 가진, 격정 노안의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깊게 패인 미간, 유독 도드라진 두꺼운 검정뿔테 안경을 왜 그렇게 챙겼었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찍은 고3 졸업 사진을 일팔청춘 따님이 두고두고 놀립니다. 무슨 시험을 한 스무 번은 떨어진 사람 같다고. 이게 열아홉이 맞냐고. 


이십 대는 약수동 옥탑방에서 추위와 뜨거움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짙은 불안 속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헉헉거리면서 끝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언덕을 여러 번 바라보면서 한숨을 들이시고, 내시고. 그래도 올라가는 게 내려가는 것보다는 좋았습니다. 무심코 다리 힘이 풀려 저 아래 깊은 웅덩이 속으로, 도로로, 지하철로, 한강으로 흘러 흘러갈 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으로 터덜거렸으니까요. 그리고 언제나 허기졌던 이십 대였습니다. 삼십 대는 결혼을 하고, 지금의 남매를 낳고 키우면서도 세상에서 내가 가장 제일 잘 나가, 는 줄만 알고 전국 팔도를 돌아치고 다녔네요. 육아가 뭐예요? 라며. 아내의 고군분투와 내가 좋아 돌아다니는 강의, 모임, 출판, 연구회 활동이 일맥상통하다고 스스로 치부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도와준다고?'라는 말 한마디에 한참을 아내와 전쟁을 했던 기억도 아직 옅게 남아 있습니다.  


십여 년 전까지는 세상이, 아내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혼자 퉁퉁거리는 말없는 징징이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과 가치를 혼돈하고, 일과 삶을 혼동하고, 나와 가족을 분리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선수, 아니 감독 중의 감독이었습니다. 보들보들, 야들야들하고는 거리가 먼 쌩하게 뻣뻣한 위인. 내가 아니면 일도 삶도 세상도 멈출 거라는, 없었던 사춘기가 사십춘기와 겹쳐서 한꺼번에 쏟아진 거지요. 그때는 손보다는 입으로 세상을 막아냈습니다. 선생보다는 전문 강사를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지인들의 조언에 우쭐하면서 말이죠. 이제 오십을 지나온 지 세 해 째. 몇 해 전부터 내가 나를 조금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2018년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 2021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처음에는 잊기 위해 달렸습니다. 운동이라는 핑계였지만, 그 속에는 달리면서 오직 심장만, 내 호흡만 느끼고 싶어 달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잡념이 '자~ 뻥이요~'하면서 하얗게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그러다 이렇게 글을 막 쓰게 되면서 그 핑계가 도망이 아니라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유들유들한' 이들을 일찌감치 경계를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그런 타입의 선생님은 가볍고, 우습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만난 이들은 나를 어떻게 잘 이용, 활용하려고 접근하는 이들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니면, 부족함을 감추기 위한 과장한 표현이라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시작부터, 처음 생각부터 그랬습니다. 그 생각이 언제부터 나의 생각이 되었는지는 한 번도 되새김질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일청춘 아드님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이제는 살짝 데쳐지고 싶습니다. 뻣뻣해서 부러지거나 찢기지 않게. 몸과 마음이 모두 보드랍고 유들유들하게 살아내고 싶습니다. 참 쉬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습고 가벼운 이가 되고 싶습니다. 모든 나물에는 본성과 같은 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 나물을 오랜 기간,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뭐, 물리적으로 그렇게 할 경우는 많지 않지만. 딱 우리 인생 같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이에게는 본의 아니게 독성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적으로, 사적으로 특정이에게 오랜 기간, 한꺼번에 반복해서 하는 언행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선에서 서로 보드랍고, 야들 거리기. 유들유들하게 서로 살아내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하다 보면 또 우리 집 앞 붕어빵이 다시 날개 돋치듯 팔릴 겁니다. 그리도 다시 마음껏 봄이 꼭 찾아오겠다 싶습니다. 갑자기 이 새벽에 얼마 전 소풍을 먼저 떠난 친구의 아내에게 친구들과 달려가 냉이 된장국을 한 사발 같이 먹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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