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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23. 2023

그런 날이 있습니다

사진: Unsplash의Artem Kniaz

일주일에 다섯 번. 차로 40분 조금 넘는 출퇴근 길을 달려갔다 달려옵니다. 한참을 편도 한 시간 반 출퇴근때와는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과거에 대한 보상이라고 늘 고마운 생각으로 달려갔다 잘 달려옵니다. 그 시간 거리는 한겨울에 엉덩이가 조금 따뜻해져서 기분 좋아질 때쯤 주차를 해야 할 정도입니다. 도로 양쪽으로 거대한 건물들이 빼곡한 도심도 지나갑니다. 그러다 잠깐 가까이 널찍한 하천도 멀리 우직한 산들이 보이는 곳도 들판도 지나갑니다. 그러다 가끔은 늘 내 앞으로 달려 나가는,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같은 번호의 달리는 이를 만나기도 합니다. 괜히 반갑습니다.


하지만 잠꼬리가 남았을 때가 있습니다. 몸이 찌뿌듯할 때가 있습니다. 배앓이를 할 때도, 괜히 신이 날 때도 있습니다. 한참을 깊은 잡념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그 잡념이 집념이 될 때도 거꾸로 급격한 속도로 울적해질 때도 있습니다. 집 앞 좌회전, 미용실 앞 직진, 할머니표 붕어빵 앞 우회전, 경찰서 앞 좌회전, 병원 앞 직진, 오거리 좌회전, 친구가 이사 올 집 앞 직진, 고속도로 입구 직진, 시경계 언덕 위로 직진, 터널 속으로 직진, 터널 아래 경사로 직진, 회전하면서 바로 좌회전, 주유소 앞 직진, 제과 공장 입구 직진, 다리 밑 직진, 조경석 앞 직진, 다리 옆 직진, 물류센터 앞 직진, 초아의 봉사탑 옆 좌회전, 회전교차로 좌회전, 비보호 좌회전, 골목으로 좌회전, 언덕으로 언덕으로.  


이 길을 달리는 동안 길 마디마디에 이렇게나 많은 신호등이 있습니다. 산비탈 언덕에 있는 학교를 향해 꽤나 한적한 길을 달려가는 데도 말입니다. 잡념이 집념이 되던 어느 날 수많은 신호등이 일제히 나의 타이밍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제 갈지, 설지, 회전할지를. 하지만, 대부분의 날에는 신호등의 존재 자치를 잊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보통 무념무상일 때가 많죠.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이래도 피곤하고, 저래도 피곤하고. 그럴 때마다 나처럼 그렇게 달려갔다 달려오는 이들이 달리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거의 모든 신호등이 나를 막아서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가로막는 것 같습니다. 유독 노르스름하게 붉은 눈동자가 나의 마음을 아주 촘촘하게 읽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주 넘게 야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만난 스물여덟 명의 열여덟 청춘들과 상담을 하기 위해서 말이죠. 어제 수요일. 출근길에 도로에 차가 없습니다. 지난주, 지지난 주와 같은 수요일, 비슷한 시각에 달려오는 길인데 말이죠. 분명히, 확실히 오늘은 차가 없습니다. 다들 어디로 모여 갔을까요? 아니면 나를 위해 마치 모두가 살짝살짝 앞을 비켜주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착각입니다. 기분 좋은 착각. 우리는 존재했던, 하고 있는 모든 공간에는 앞뒤의 흐름이 있지요. 그 흐름 속에서 과거의 내가 있고, 지금의 내가 있지요. 그리고 미래의 내가 보입니다. 그래서 조심조심, 기분 좋은 착각을 많이 하며 하루를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가 봅니다.


새벽에 느닷없이 눈이 떠집니다. 누운 채 눈을 깜빡거려 봅니다.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리면서 온몸을 늘려 봅니다. 고개도 좌우로 흔들흔들. 내 몸 모든 곳이 특별한 오늘을 위해 준비가 완벽히 된 느낌입니다.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십니다. 다시 코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내십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내 몸이 깃털이 되어 구름 위에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습니다. 입 속을 헹궈냅니다. 그리고 나의 유니크 플레이스, 토필로 넘어갑니다. 검은 화면이 파팍거리며 눈을 뜨는 동안 서서 상체를 크게 뒤로 젖힙니다. 머리부터 목, 허리, 엉덩이로 이어지는 마디마디를 느낍니다. 더더더를 속으로 외치며 관절과 관절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 그런데 저 사람은 왜 그냥 좋지? 별 다른 관계도 이야기도 많이 하지 않았는데, 그냥 편안하다'처럼 느낌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이유 없이 편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선호하는 첫인상에서 출발하는 건 나의 몫입니다. 초두효과지요. 하지만 그 첫인상이 끝 인상까지 좋게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데 하면서 스스로 신기해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아, 그 사람은 정말 싫어. 주는 것 없이 그냥 그래. 나한테 특별하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하나하나가 다 싫어'처럼 그냥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확증편향의 결과물입니다. 새로 사고 싶은 자동차 모델을 결정할 때 도로에 나서면 온통 그 차와 같은 모델만 눈에 띄는 겁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건 다 나의 선택입니다. 나와 맞는 정보, 나와 잘 어울리는 정보만 흡수하고 나머지 것들은 버리는데서 따라오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 이유 없이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은 내 인생에서 그렇게 퉁 치면 되는 겁니다.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좋아라 하고, 싫어라 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넘쳐나니까요.


내 서랍을 열어 생각의 흔적들을 주욱 둘러봅니다. 이건 뭐지, 아 저건 그거였군, 저 문장을 이렇게 표현해 볼까, 아, 그렇지. 어제 떠오른 그 단어, 서랍 속에 넣어둬야지. 그냥 눈으로 보면서 손끝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하얀 화면에, 종이 위에 짙은 갈색 글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신나게, 아주 빠르게 밀려납니다. 지나간 글자는, 문장은 이미 생각이 나지 않지만,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마구 써지는 날이, 세상의 모든 길이 나만을 위해 열려있는 것 같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그렇지 않은 수많은 날들의 자양분이 됩니다. 세상이 멈춘 듯 한, 그렇지 않은 날들의 보상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그렇게,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들이밀지 말고, 내밀지 말고 살아내면 문제없는 그런 날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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