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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24. 2023

간헐적 당식

사진: Unsplash의Patrick Fore

내 서랍 - 웹 서랍 말고 사무실 책상 서랍 - 을 열어 봤다. '카카오 72프로 리얼 쵸코볼, 제크 크래커, 흰콩 두유, 생강 젤리, 홍삼 캔디, 아몬드 가루, 하루 견과가 있다. 강의용으로 메고 다니는 에코백 안에는 따님이 사서 넣어 준 미니 약과가 수북이 들어 있다. 강의때 당 떨어진 아이들 선물 겸용이다. 사무실 냉장고에는 아내가 만들어 준 딸기청, 생블루베리, 우유 한 통, 아몬드 가루, 구운 계란, 단무지 무침, 김치볶음이 있다. 그 위 냉동고에는 대추, 콩, 해바라기씨 가 어우러져 콕콕 박힌 찹쌀떡이 들어 있다. 다 내 거다. 그렇게 간헐적으로 소탄지 대단 - 탄수화물, 지방은 적게, 단백질은 대단하게 - 을 유지하려고 신경(?)쓰면서 계속 먹는다. 먹을 때는 소식이지만 다 합치면 좋은 소식은 아닐 듯 하지만.    


나는 마른 체형이다. 보기 힘든 정도로 마르지는 않았지만, 살이 잘 찌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많은 이들, 특히 아내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래서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릴 때까지, 아니 결혼할 때도 나의 몸무게는 오십을 살짝 넘긴 상태였다. 열살을 넘기면서 다리 수술을 한 것을 빼곤 특별히 어디 몸이 좋지 않은 적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다. 결혼 후 아내에게 칭찬받고 사는 두 가지. 하나는 설거지를 잘한다는 거, 또 하나가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거. 열일곱부터 시작된 하숙, 자취 생활에서 얻은 삶의 지혜(?)이지 싶다. 진짜 뭐든 다 맛있다. 혼자서 막 먹고 안 먹고 하는 때보다는 매 끼니가 진수성찬이다.


미혼일 때부터 아니 학창 시절 때부터 결혼 후 얼마 동안은 마른 체형이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체형이나 모습을 불편하게 의식하고 산 적은 없다. 다만 왜 이렇게 마르셨나요라고 하는 말을 인사말처럼 내뱉은 게 어떤 이들에게는 어떻게 하다 그렇게 뚱뚱해졌나요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만 가끔 했을 뿐이다. 그런 나를 마다하지 않고 선택해서 이렇게 사람답게 만들어 준 아내님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맞벌이 아내님이 요리를 좋아하고 심지어 잘하기까지 하니 매 끼니가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아내는 간헐적 단식이 일상이다. 저녁을 일찍 먹고 아침을 최대한 늦게 먹는 방식이다. 아마 열몇 시간 단식인 듯하다. 보통 평일에는 아침을 출근해서 오전에 간단하게 - 구운 계란, 삶은 고구마, 블루베리 듬뿍 요구르트, 견과류 등 - 먹는다. 토요일, 일요일 브런치는 거의 11시가 다 되어 시작한다. 물론 나는 그 사이에 수란으로 소탄지 대단을 셀프로 실천한 후이지만. 다행인 건 아내의 간헐적 단식이 그리 혹독(?)하거나 자기 몰살적이지는 않다는 점이다. 아내 본인이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다. 일이주에 한 두번 랜덤으로 선택하는 치팅데이도 쾌재를 부르면서 흥겹고 행복하게 주도한다. 다이어트만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선택이라 고맙다.


반면 나는 많이 먹고 더 많이 움직이는 타입이다. 하루에 적어도 1만 보 조금 모자라게 걷는다. 출근해서 앉아 있지를 않는다. 계속 서서 있다. 그리고 교실을 복도를 계단을 그라운드를 걷는다. 강의를 위해 이동하는 거리가 하루 평균 3-4 천보 정도다. 일부러 5층에서 체육관 뒤 베이스먼트까지 10분, 20분 정도를 걸으면 4-5 천보 정도가 된다. 나머지는 퇴근하고 걷는다. 지난주, 지지난 주처럼 연속된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11시가 조금 못되어 집에 온다. 그리고 걷는다. 날이 어설프면 집안에서라도 걷는다. 언제가 그런 글을 쓴 기억이 난다. 그렇게 거실, 베란다, 안방, 따님방, 아드님방을 졸졸졸 걷다 보면 우리 집이 참 넓다 싶어 진다. 물리적인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움직이는 시간의 문제니까.


나는 업무를 몰아서 하는 타입이다. 그때그때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사회 초년생일 때는 안 그랬다. 아니 마흔을 넘길 때 까지도 안 그랬다. 마치 오분 대기조처럼. 공문을 처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일을 했다. 그렇게 교육 사업을 벌이고, 활동을 이어 가고, 공유하고, 발표하고, 장거리를 이동하고.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업무가 많아도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효율성에서만 봤을 때는. 그렇게 내 나름의 기준으로. 강의 중간중간에 오전에는 사적 업무 - 코로나 때는 주로 글쓰기, 글감 쓰기, 글감 찾기, 글 읽기 - 처리, 오후에는 공적 업무 처리가 기본 룰이다. 다년간의 노하우(?)의 결과다. 반대로 했던 적도 오래다. 그런데 이 순서가 나에게는 맞다. 무엇보다 오후에 공적 업무 처리를 하면 퇴근 시간이 빨리 다가온다. 물론 이 룰이 일주일을 기준으로 이틀, 사흘 지켜지면 정말 땡큐인 한 주이지만.


강의 - 걷기 - 글(읽기, 쓰기, 댓글달기, 글감 찾기....) - 걷기 - 공적 업무 - 걷기의 일반적인 순서로 하루가 채워지는 사이 간헐적 단식을 하는 아내 앞에서 티 내지 않고 간헐적 당식을 해야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다. 6시 반에 수란을 먹고 7시 10분을 보면서 출근한 후 아침은 진한 커피 한잔으로 시작한다. 점심 먹기 전 단백질 쉐이크 - 설탕이 들어 있지 않은 제품 - 를 우유에 타서 한 컵을 마신다. 그리고 간단하게 점심 - 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온다. 아내와 나눈 구운 계란, 삶은 고구마, 삶은 계란, 떡, 주먹밥 등 - 을 먹자마자 그라운드로 내려간다. 습관으로 이어지는 연속 동작이다. 그리고 점심시간 내내 걷는다. 비가 와도 우산 들고 걷는다. 점심시간에는 웬만해서 컴퓨터 앞에 앉지 않는다. 물론 올해는 허리병 재활 덕분에 하루 종일 거의 서서 근무를 하고는 있지만. 3월 두 주만 지나면 아이들은 나를 찾아 주차장으로 내려 온다. 자연스레 산책을 겸한 상담이 벌어지는 이유다.


가장 어려운 건 만찬이다. 하루를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 낸 힘겨움 - 그 사이 보람, 기쁨이 있으면 참말로 더 행복하다 - 을 가지고 만난 가족. 그 만남이 같은 집에 살면서 끼니를 함께 하는 식구가 되는, 되어야 하는 순간이다. 그 힘에서 또 내일을 살아 낼 힘이 나온다. 폰을 충전해야 내일 들고 다니면서 쓸 수 있듯이. 그래서 저녁은 요령(?) 피우지 않고 먹는다. 그냥 당기는 대로. 한참을 만찬전에 운동을 먼저 간 적이 있었다. 단지 내 헬스장을 가건, 밖을 걷건. 그런데 그건 재미가 없었다. 너무 악착같았다. 그래서 순서를 바꿨다. 지금처럼 하루하루의 상황에 맞게, 누군가가 원하는 메뉴를 함께 먹는다. 입이 짧은 따님이 내가 먹는 걸 보고 탐을 내서 조금이라도 더 먹게 만들고 싶은 의도에서도. 그리고 앉지 않고 바로 나간다. 헬스장이건 밖이건. 아내와 함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혼자서라도.


얼마 전에 걸어 15분. 차로 2-3분이면 닿는 곳에 중국집이 개업을 했다. 그런데 맛있다. 부담가지 않는 요리다. 퇴근하자마다 둘이면 세 개, 셋이면 네 개의 음식을 시킨다. 남으면 내가 다 먹는다. 그래도 남으면 싸가지고 와서 쉬었다가 걷다가 다음날 아침으로 또 먹는다. 돈을 버는 이유는 명확하다. 먹고살기 위해. 잘 사는 방법 역시 분명하다. 병원에 자주 가면 된다. 아프지 않아도 검사하러, 조금만 아파도 덜 아프려고. 그렇게 돈은 먹고 병원 가는데 쓰기 위해 번다, 고 철석같이 생각한다. 엥겔 지수 어쩌면서 아낀다고 텅장이 통장이 되는 건 아니더라. 돈이 돈을 불리는 건 진리니까. 그 나이에 맞게 그 상황에 맞게 돈은 계속 어디론가 내 급여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언제나 토스된다. 그래서 ㅌㅅ뱅크는 참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에 제주도에서 왔다는 해장국집도 생겼다. 언제인가 지방에서 올라오느라 8시가 조금 넘어서 즉흥적으로 들렸었다. 10시까지 인데 재료 소진으로 일찍 영업이 끝났단다. 덕분에 손님들이 맛나게 먹는 모습만 보고 돌아왔던 집이다. 그럴 때 보통 삶의 의지, 아니 오기가 생긴다. 뭐, 쓸데없는 짓은 아니고, 계획한 것을 하지 못했을 때 다시 시도하는 정도. 그래서 며칠 전 다시 갔다. 그때는 주말 낮 시간이고 손님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빈자리는 있었다. 기대보다 맛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만 공깃밥을 세 개나 먹었다. 그 이유가 간단하다. 1인 1식을 하는 경우에 찰진 흑미 공깃밥이 무한리필이라는 치명적인 서비스 때문. 그런데 다른 집 공깃밥보다는 밥 양이 현저히 적었다. 어, 이건 나만의 주장이 아니라 아내도 동의한 양이다. 해장국은 맛있지만 밥은 적게 먹고 싶을 때, 딱인 양이라고.


합계 출산율이란 개념이 있다. 임신이 가능한 여성이 평생 낳을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수다. 우리나라가 인류 역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낮은 출산율을 기록중이라는 건 이미 대국민 상식이 된 듯 하다. 이와 비슷한 듯 하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 바로 대체 출산율이다. 대체 출산율은 한 국가의 현재 인구를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게 , 지금의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이다. 간헐적 단식, 간헐적 당식 다 좋다. 문제 없다. 핵심은 움직여야 하는 거다. 지금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움직임, 대체 운동량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는 건 바로 대체 운동량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옛날 말처럼 사람은 밥값을 해야 한다고 귀에 압정 정도는 박히게 들으면서 자랐다. 미성년이 자랄 때 무엇을 보고, 듣는지는 참 중요하다. 어른이 되어서는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들이 형성되는 데는. 그러다 보니 먹는 만큼 움직이는 게 밥값을 하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이 말속에는 숨은 의미가 더 들어 있었다는 것을 조금 더 어른이 되면서 눈치차렸다. 비난만 하지 말고 제안하라는 말이다. 제안만 하지 말고 실천하라는 말이다. 말보다는 몸을 움직이라는 이야기다.


움직이다 보면 몸 건강이 조금은 더 나아질 테고, 몸 건강이 향상되면 정신도 맑아진다. 정신이 맑은 상태여야 목소리가 부드럽고, 표정이 온순해진다. 많이 먹고 적게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움직이는 양의 문제라는 건 내가 이 한 몸 다 바쳐 평생 증명해 가고 있는 거다. 그렇게 해도 저마다 타고난 체질, 가족력, 생활 습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에 따라 여기 저기에서 증상이 하나 둘 나타나니까. 어둑한 이 새벽에 체중계 하얀 LED불빛으로 몸무게를 가리키는 숫자가 번쩍거린다. 요즘이 딱 좋다. 나풀나풀 무겁지도 않고 힘겹게 가볍지도 않게. 마음도 정신도 그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도 먹고 사는 이야기를 쓴다. Just do eat! Move~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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