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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20. 2023

그나마 나를 설득하는 게 제일 쉽다

 사진출처:freepik

사진출처 : freepik

어느 브런치 작가님의 글에서 읽었던 문장이 잊히지 않는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다. 선생님이 전교 1등 하는 학생에게 물었단다. 내가 못 가르치냐? 아님 재미가 없냐? 왜 애들이 수업을 듣지 않을까? 하고. 그랬더니 머뭇거리면서 충격(?)을 받을 것을 미리 걱정하던 그 학생이 그렇게 대답했단다. 아, 그건 그래서야 아니라고. 샘은 정말 실력 있고 수업이 좋다고.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냥 학교샘이여서 그렇다고. 어쩌면 학교는 학령에 관계없이 오래전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 씨가 부러워했던 그 기능이 가장 큰 존재이유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돌봄'. 월요일 오전 10시에 시카고 뒷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드렁큰 한 상태로 헤매는 아이들이 한국에는 왜 없는지를 알았다며 엄지 척을 했던. 맞다. 오늘 같은 휴일 다음날. 특히, 월요일에도 열심히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를 찾아 잘 온다. 


올해 고3 시간표. 우리 반 아이들이 듣는 총 11개 과목 중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드 각자의 시간표 대로 움직인다. 이 말은 수업을 하는 나의 입장에서도 나를 선택한, 아니 나의 과목을 선택한 아이들이 뒤섞여 있는 반만 수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래서 시간표 자체가 쏠림 현상이 심하다. 특히, 올해는 더 심하다. 나는 총 18개의 수업 중 오늘과 내일에 10개 몰려 있다. 월요일 1교시, 2교시, 3교시, 5교시, 7교시, 화요일 1교시, 2교시, 3교시, 5교시, 7교시. 그 사이, 점심 급식을 지도하고, 저녁에는 초과근무를 21시 30분까지 한다.  오늘이 그렇다. 이런 날일수록 더더욱 내가 나를 설득해야 한다. 아주 잘해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들기를 좋아라 하니까.


야근이 없는 날은 출근 때 보다 십여분이 더 걸린다. 그렇게 사십여분 조금 넘게 퇴근길. 항상 집으로 향하는 진입로를 지나쳐 지하철 역까지 다시 15분 정도를 더 달려간다. 퇴근하고 기다리는 아내를 태우러. 그렇게 다시 15분을 달려 집 근처로 오면, 하루가 퇴근으로 마무리된다. 이때부터 나를 설득하는 과정이 슬슬 시작된다. 아내와 항상 주고받는, 가장 소중한 대화. '오늘은 뭐 먹을까?'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이미 나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내가 원하는 메뉴로 결정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는 언제나 과하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탄단지를 조화롭게 고른다. 적게 먹으려 애쓴다. 그래서 이십 년 넘게 지나오고 보니 아내는 항상 옳다. 가끔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신박하지는 않다. 대뇌피질이 아직도 완성이 되질 않았는지 하나에 꽂히면 그 메뉴만 맴돈다.


지난주 월요일. 갑자기 청주에서 친구덕에 먹었던 무한리필 솥뚜껑 더덕 삼겹살을 아내가 찾아보고 있었다. 몇 군데가 보인다고 했지만, 더덕을 무한으로 리필해 주는 곳은 친구덕에 만난 그 집뿐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공부하다 늦게 들어올 따님의 저녁, 내일 점심 메뉴까지 고려해서. 삼겹살과 우삼겹을 사서 집에서 솥뚜껑 비슷하게 생긴 - 잉, 아니네. 딱 솥뚜껑 반대로 생겼네. 돌솥이긴 한데 움푹 파인. 그래도 일반 프라이팬보다는 맛이 좋다 -  것 위에서 나는 삼겹살, 마늘을 넣어 구웠다. 세 덩어리 중 두 덩어리를 그렇게 구워 먹으면서, 무한리필집의 맛과 추억을 달랬다.


다 먹어가는 시점부터 다시 나의 설득과정이 이어진다. 월요일, 포만감의 절반 정도 채운 배를 느끼면서. 아니, 저녁을 다 먹어가는 중에 아내가 먼저 물어봐 주면 다행이다. '운동 갈 거야?'라고. 나는 단박에, 단박에 대답을 해야 한다, 고 나를 설득한다. '응'. 여기서 대답을 한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1초의 망설임 없이. 그래야 내가 나를 설득하는 힘이 길러진다. 앉으면 못 간다. 그렇게 30분 조금 넘게 운동을 하고 왔다. 거의 늘 그렇다. 가면 잘하는 데 가기 까지가 힘들다. 아니다. 정확하게는 가겠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고비다. 많은 일이,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다. 


틈날 때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옆에 두고 읽는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화면 왼쪽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두꺼운 책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딱 한 가지 내용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선택적 망각이다. 아니 기억이다. 아주 작은atomic 연속 동작(또는 생각)을 두 가지만 이어서 하는 거다. 그게 시작이다. 그러면, 세 개, 네 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그게 습관이 되는 거다. 그래서 내가 허릿병이 나면서부터 하는 연속동작 두 가지. 침대 위. 눈을 뜨면 나를 덮고 있는 이불을 옆으로 걷어낸다. 그리고 기지개를 켠다. 그 다음. 그 다음이 중요하다. 기지개까지는 말 그대로 습관적으로 한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 기지개도 켜지 않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몸에 대한 폭력이다. 


아주 천천히, 아주 아주 천천히 기지개를 켜도 몇 초이다. 그 다음에는 몸을 뒤집는다. 엎드린다. 그리고 가슴 양쪽에 손바닥을 집고 상체를 아주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경추, 등, 요추, 엉덩이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듯이. 그런데 이 두 번째 코브라 동작을 하려고 몸 전체를 뒤집은 뒤, 잠에 취해 그대로 몇 분 간 잠든 적도 있었다. 아니, 많았었다. 오히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다듬다가 출근하는 게 더 쉽다. 하지만,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아주 세밀한 부분에서 연속동작이 이어지는 것들이 있다면, 심지어 많다면 그 사람은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연속 동작이 나쁜 습관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시 월요일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래서 오늘 같은 월요일은 특히 그 연속 동작 - 좋은 습관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자신이 생각하고, 결정한 동작 - 에 대한 자기 설득이 매우 중요하다. 쉽지 않다. 정신은 체력에 좌지우지되니까. 강한 정신력은 더 강한 체력이 쉴드쳐 주는 거니까. 그래서 나의 월요일은 퇴근 - 아내 픽업 - 저녁 결정 - [ 옷 갈아입기 ] - 만찬 - 설거지 - [ 이어폰 ] 착용 - 나가기의 연속 동작으로 이어지도록, 나를 계속해서 설득한다. 월요일 운동이 가능하도록 나를 설득하는 첫 번째 습관은 [ 옷 갈아입기 ]. 이때, 옷을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거다. 세수도 하지 않고, 양말도 벗지 않은 채. 그 메시지는 '운동하고 샤워할 거잖아'라고 나에게 던지는 의식적인 행동이다. 그렇게 해도 '변수'가 생겨 월요일 운동 루틴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까. 심지어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작용시킨 뒤에도 그럴 수 있으니까.


오늘도, 세상살이에서 그래도 내가 나를 설득하는 게 가장 쉽다, 는 진리를 몸으로, 연속동작으로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또 하루의 오늘이다. 어쩌면 그 연속 동작 덕에 나의 몸과 마음이 조금 더 건강해져, 타인을 설득하는 내공과 여유가 조금은 더 생길지도 모른다는 다짐을 한다. 헬스장에 발을 들이면 누군가가 나의 결정을 토닥거려 주는 메시지를 만난다. 일 년 넘게 만났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멘트지만. 일단은 그 메시지를 직면하는 데 까지 성공했다면, 오늘 하루도 연속동작으로 나를 잘 설득했다고 스스로 토닥토닥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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