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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19. 2023

씹고 찍고 맛보고 찍고

사진출처 : freepik

휴대폰 속 갤러리. 그 안에는 수많은 사진들이 들어 차 있습니다. 대부분은 언제, 어디서, 왜 찍었는지 모를 정도로 많아요. 마음껏 봄인 요즘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길 가다 멈칫 알록달록한 꽃을 풀을 찍습니다. 우리 집 타닥이도 갤러리 속에서 언제나 웃고 있습니다. 내가 마음 편한 이들도 같이 쭈욱 이어져 브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항상 갤러리 속에서 식물, 동물, 경치, 사람들의 사진들을 휴대하고 다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갤러리 속에 들어 있는 사진들 중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 있지요. 그건 바로 음식이죠.  언제 찍었는지,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내가 지금 뭐 먹고 있는지, 어제 뭐 먹었는지, 언제 뭐 먹었는지에 대한 가물가물한 기억, 추억의 흔적들입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계속 찍습니다. 늘 같은 음식이지만 새롭게 시켜본 음식이면 어김없지요. 늘 집에서 먹는 메뉴지만, 새로운 시도라면 역시 어김없지요. 맛있다고 찾아 간 그 음식점에서는 먹기 전에 전시를 하듯 한참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갤러리는 정리가 되지 않는 사진들로 넘쳐 납니다. 휴대폰 속 미술관입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는 왜 음식 사진을 찍으려 하는 걸까요? 씹을수록 찍고 싶어 지는 이유, 이거 왜 이러는 걸까요? 


#음식 사진을 찍을 때의 상황과 상태에 주목이 갑니다. 씹을 수 있다는 건 건강 상태가 받쳐준다는 겁니다. 자그마한 혓바늘 서너 개만 생겨도 쉽지 않은 행동이니까요. 그렇게 천천히 음미하면서 씹는 행위. 그 행위는 신체적으로 뇌를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여기서 하나 더. 씹는 행위는 정신적으로 음식이라도 마구 씹어야 다른 걸 씹지 못하는 위로를 달랠 수 있는 대체 행동이니까요. 그렇게 씹으면서 음식 사진을 찍을 때는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이 좋다는 건 마음이 가볍다는 겁니다. 그렇게 힘들었어도, 지쳐서 도착했어도, 남의 돈 받고 살기가 버겁다고 스스로를 타박해도. 그 순간만큼은 음식으로 잊을 수 있다는 안도감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주관적 향락입니다. 물론 퇴폐적인 향락이 아니지요. 내가(같이) 선택한 음식을 고맙게 여기고, 기쁨을 만들어 내려는 쾌락적인 행위. 그걸 나는 주관적 향락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좀 쓰자, 좀 먹자라고 나를 내버려 두는, 스스로 토닥여주는 자그마한 쾌락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분비되는 뇌적 작용으로 손이 자연스레 폰으로 가고, 셔터를 누르고, 공유를 하는 매우 소중한 의식을 거행하게 되는 겁니다. 요즘처럼 글을 쓰는 경우라면 더더욱.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행위는 일단 몸에 다양한 영양소를 공급한다는 생리학적인 이유가 가장 우선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었으니, 지금 못 챙겨 먹으면 끝까지 못 먹을 거 같아서, 그렇게 먹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본능적인 이유 속에는 사람에 대한 주관적 행복이 진한 X, O 소스처럼 발라져 있습니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것이지요. 먹어야 사는 건  맞지만,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먹는 거지요. 음식을 못 먹거나, 거부하는 상태도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많으니까요. 그리고 또. 나와 같이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이들로 인해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거에 의식적으로 동의하는 상태인 겁니다. 그 상태가 되어서야 신나게, 자연스럽게 음식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의 행복감을 스스로 확인하고, 주변에게 확인시키는 거지요. 


#우리는 무언가를 먹을 때도 여전히 특정한 장소에 머무르게 됩니다. 집안에서도 주방, 거실, 침대 위, 방바닥 등으로 나뉘듯이. 그런 장소가 집 밖에서는 훨씬 더 다양해집니다. 늘 가던 회사 지하 식당, 처음 가보는 카페테리아, 새로 개업한 바게트 전문점, 지인의 단골 식당, 줄 서서 먹어도 될 맛집, 맛보다는 친절하고 따듯해서 찾아가게 되는 식당, 양이 푸짐하고 넉넉한 집.... 내가 선호하는 음식은 바로 내가 정서적으로 선호하는 장소에서 만날 때 훨씬 더 맛있고, 건강하게 나에게 다가옵니다. 바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소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이지요. 정서적으로 불편한 곳에서는 한시라도 있고 싶지 않은 거니까요. 그런 정서적 유대감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만나는 음식을 더더욱 사진을 찍어 보관하고, 공유하고 싶어지는 겁니다.  


#음식은 일상생활에서 오는 해방감을 가져다줍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먹어라이지요. 먹으면서 기운 차리고, 정신 차리고, 다시 뛰어 보자는 다짐입니다. 많은 경우에 하고 싶은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지만 거기에 비하면 음식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일방적인 회식 메뉴를 앞에 두고 미친 듯이 흥분해서 열렬히 사진을 찍어대지는 않으니까요. 나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꽉 막힌 터널 끝에서 만나는 해방감이 그 음식인 겁니다. 그런 해방감을 경험하고 있다는 증거가 내 갤러리 속에 그득한 음식 사진이 됩니다. 나도 내 힘으로 살아낼 수 있다는 다짐이 한 상 가득 차려진 사진들이. 그 힘으로 오늘도 밋밋한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겁니다.


#요즘 같은 마음껏 봄이 오면 플랜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겨우내 살아남은 화분들을 분갈이해주면서 한 날 농장에 들러 보기도 합니다. 마음껏 화분을 들고 와 베란다, 집안 여기저기에 알록달록하게 치장을 하지요. 그러면 눈보다는 마음이 안정이 되고 부자가 된 듯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는 옷을 입고 일을 볼 때 능률이 더 오르지요. 그런 면에서 승무원들의 타이트한 유니폼을 획기적으로 바꾼 어느 저가항공사가 이슈가 되었던 얼마 전 기사가 생각이 나네요. 음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음식으로 자신을 치장하기. 바로 음식 사진은 식테리어의 상징입니다. 자기 자신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기쁨으로 넘치게 치장해 주는 음식들. 그런 힐링이 따로 없습니다. 그 순간의 힐링을 만끽하고, 힐링을 순간을 기억하고, 나와 우리의 식테리어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열심히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겁니다.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하찮은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풀럭거리는 스토리가 스며 나오는 걸 알게 됩니다. 음식 속에 스며든 양념은 고스란히 잘 버무려진 이야기니까요. 그렇게 이 사진들 속에는 오만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겨우내 쓰지 않은 오만가지 근육들을 한꺼번에 몰아쳐 움직여 힘든 날을 날려 버릴 정도로 따님도 계란볶음밥 도시락도, 그냥 있어도 피곤한 월요일 퇴근.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아내가 만들어 준 덕에 월요일부터 드링킹 하게 만들었던 만두 피자 - 이 만두 피자는 딱 세 개 만을 외치던 아내가 세 개씩 세 번을 굽게 만들었습니다 -도, 한잔의 달콤 고소한 소금커피덕에 온 가족이 전염된 돌림병도,  돌림병으로 2주가 넘게 먹는 둥 마는 둥 한 나를 위해 친구가 직접 주문하고, 직접 구운 2KG가 넘는 장어도, 일부러 전화 안 드리고 집 앞에서 서프라이즈를 해도 바리바리 이것저것 양손에 쥐어 주시는 장모님의 밑반찬들도, 금손인 엄마의 칼칼한 김치도, 우리 집 만의 삼합(짜파**+파김치+우삼겹)도 버물버물 뒤섞인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음식 사진은 아내와 따님이 담당이었습니다. 나는 두 분이 찍어 가족톡방에 공유해 주는 사진을 2차 자료처럼 활용합니다. 주로 글감을 상상하는 용도로. 그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열심히 음식을 찍고 있더군요. 찍지 못할 때는 부탁까지 합니다. 그럴 때 나의 기분을 슬쩍 들춰 봤습니다. 그저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본능적인 동작입니다. 물론 지나고 나면 기억이 나질 않아요. 어제 점심때 누구랑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더 많아요. 하지만 그래도 좋은, 행복한, 긍정적인 호르몬의 분비 덕분에 그 며칠간 살아 낼 에너지가 충전됩니다. 그렇게 유독 음식 사진 속에는 행복, 웃음, 기쁨, 설렘, 두려움, 미안함, 용기, 용서, 고마움, 사랑, 우정, 장소, 공간, 이동, 회복, 결정, 소신, 배려, 눈물이 소금과 설탕, 기름, 이야기가 되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같이 고마운 음식들을 사진으로 남겨야겠습니다. 그 사진 속에 나와 우리를 잘 간직해야겠습니다. 그렇게 잘 먹고 잘 살아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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