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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27. 2023

행복한 확증 편향

사진: Unsplash의Victoriano Izquierdo

어김없이 시작되는 출근길이다.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 비슷한 시각에 집을 나선다. 자동차에 몸을 싣고 수십 개의 신호등을 지나친다. 그러다 보면 빨간불 앞에 멈춰야 하는 교차로가 생긴다. 대부분은 앞을 보면서 신호등이 바뀔 때를 기다린다. 하지만 목을 흔들고 몸을 흔들고 손가락을 튕기다 보면 시선도 흔들린다. 왼쪽도 돌아보고 오른쪽도 돌아본다. 


그렇게 신호 대기를 하던 이십몇 초의 시간 사이. 커다란 소나무들이 주르륵 서 있는 그 가지 사이로 느닷없이 글이 눈에 들어와 박혔다. 작년부터 늘 달리던 같은 길이다. 작년부터 언제나 공사 중이던 곳이다. 교통량이 많아 늘 그렇게 앞차 뒤에 기다려야 하는 교차로이다. 그런데 유독 그렇게 보이는 날이 있다. 결코 찾아보려 하지 않았지만, 내 눈에 찾아 들어오는 날이.


보통 공사장 가림막에는 해당 지자체에서 광고(?)하는 정책, 랜드마크, 로고, 관광지 등의 안내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히 내 눈에 와닿은 보라색 펜스에는 맨 윗 줄이 소나무 이파리에 가려져 선명하게 보이질 않았지만, 계속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재바르게 신호등을 보고, 앞차 후미등을 흘쩍 한번 쳐다본 뒤 얼른 휴대폰 사진앱을 켜는 찰나 앞차가 냅다 출발한다. 





그렇게 사진에 담지 못하고 출근한 날. 일하는 사이 불쑥 무슨 내용이었을까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얼른 내일이 되었으면, 얼른 출근했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틀에 걸쳐 찍은 사진 속에는 나에게 던지는, 요즘의 나에게만 던지는 것 같은 조언이 선명했다. 



쉬지 말고 기록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어느 주말 아침. 아내가 브런치를 준비하는 사이. 커피를 내리려고 그라인더에 원두를 갈았다. 주말마다 몸이 기억하는 루틴이다. 그런데 원두를 다 갈고 나서 알았다. 커피 거름망이 없다는 사실을. 그 전 주에 집에서 사용하던 걸 사무실에 가져다 놓고 집에서 쓰는 걸 새로 구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한 커피 향이 당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내가 만들고 있는 브런치에 딱 어울리는 건, 그 상황에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건 커피였다.  



커피 필터를 작은 거에서 가장  큰 걸로 바꿨다. 그리고 글라스핸들 주둥이에서 바깥으로 넘쳐나도록 접었다. 완벽한 거름망이 완성되었다. 이제는 원두 무게를 이겨내게 고정시켜야 했다. 그래서 따님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자주 보이던, 진공청소기에 꼭 한 두 개는 빨려 들어가던 검은 고무줄 같은 머리끈을 하나 주워왔다. 딱이었다. 그렇게 내린 커피의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 싶다. 


자동차와 같은 물건을 구입하려 할 때는 선택하려고 하는 그 물건만 온 세상에 넘쳐 난다. 늘 보던 것들이지만, 눈에 들어오는 때가 따로 있는 것이다. 동기에 대한 주관적 해석과 의미 부여이다. 같은 상황을 달리 해석하게 만드는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분 좋은 착각의 시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도, 사랑도 그렇다. 모든 조건 속에서 한 두 가지 조건에만 꽂히면 좋아지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행복한 확증 편향이다. 


요즘 가장 큰 관심을 어디에 가지고 살아가세요?라는 질문을 누군가가 한다면, 당연 글쓰기다. 그렇게 단박에 답을 할 수 있는 요즘이 참 좋다. 심지어는 늘 머리를 쓰고 몸을 쓰며 살아왔는데 글은 왜 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글감을 억지로 찾아내고, 강제로 글을 쓰라는 누군가의 압력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제 목적 없이 그냥 쓰는 글이 된 지가 8월이면 만 2년이다. 조금 일찍, 자주 쓸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이르다. 처음에는 글감을 찾아 헤매는 조급함에 글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조급함이 많이 옅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나와 가족 그리고 내 주변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습관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글감이 넘쳐 난다. 온 세상이 글감이다. 사진 한장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다.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모여 있는 방에 스스로 갇힌 기분이다. 글에서 힘만 빼면 더 많은 글감이 보일 것 같다. 그렇게 간절함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생각하게 한다. 살펴보게 한다. 머리를 쓰고 몸을 쓰다 이제는 글까지 쓰는 이유다. 기분 좋은 착각에 오래오래 빠져 살려고. 쓸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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