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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28. 2023

솔직해서 참 좋다

[풀꽃들에게]2_스파티필름과 함께 하는 5년

우리 집 거실 창가 쪽에는 내가 누워도 될만한 길이의 나무 벤치가 있습니다. 원래 용도는 당연히 벤치지요. 쿠션을 기대어 앉아 영화도 보고, 수다도 떨고, 까실한 얇은 이불을 깔고 한여름 낮잠을 자던. 그러다 하나, 둘 푸른 잎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기 시작했습니다. 5년 전 초겨울부터였군요. 보일러를 돌리면서 애들이 신경 쓰였기 때문에. 후덥 한 콘크리트 바닥하고 뿌리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애들 뿌리가 찢어진 오징어 가닥처럼 말라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 후였습니다.


  얘들을 바닥에서 여기로 옮기는 데 식구들 누구도 벤치를 지키기 위해 나서지 않은 걸 보면 아마 같은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거실 베란다 부분이 확장되어 있는, 볕이 잘 드는 그 자리에서 벤치를 차지한 얘들은 아레카 야자, 여인초, 콩고 고무나무, 뱅갈 고무나무, 스파티필름입니다. 뱅갈 고무나무만 두 개네요. 하나는 직접 구입한 거고, 다른 하나는 사무실에서 분양받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일팔 청춘 따님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스투키. 스투키 하고 뱅갈 고무나무 하나를 빼면 모두 자주 가는 동네 마트 화분 코너에서 데려온 애들입니다.


  나는 똥 손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칭 타칭, 화분계의 금손인 어머니처럼 키우지는, 정확하게는 살려내지는 못합니다. 오랫동안 내가 봐온, 결혼 후 20년이 넘게 옆에서 본 아내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어머니댁은 화분들의 인큐베이터입니다. 추운 겨울을 억지로 억지로 이겨내다 다 죽어가는 애들을 어머니 댁에 올려다 놓으면, 두어 달 뒤에는 줄기와 이파리가 갓 잡은 생선처럼 반짝거리며 윤기가 돕니다. 어떻게 애들을 저렇게 잘 키우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크게 없으시지만, 한마디 두 마디 속에 온갖 정성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얘들도 사람하고 꼭 같아. 자주 들여다봐야 해. 그래야 지가 이쁜 줄 알고 잘 커. 자주 환기 시켜 주고, 제 때 물 주면서'. 철학자가 따로 없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금손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간 속에서는 일손이었다 싶어 집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거의 절반 정도가 숲이었던 것 같습니다. 입구부터 안방까지 구석구석 초록색 잎들이 넘쳐 났습니다. 하지만 어느 화분하나 한 번도 시들하고 쪼글한 것들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외벌이 박봉에 두 아들을 넘치지는 못하더라도 부족하게는 키우지 않으려는 일손의 덕이었다는 걸 많이 늦게 알아갑니다. 


  정기적으로 물 주기는 기본이고, 바람이 살랑거릴 때를 놓치지 않고 환기시키기, 먼지가 일 때는 얼른 달려와 창문 닫아주기, 비 내릴 때 베란다 열어 습기 머금게 하기, 햇볕을 이파리들이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이리저리 애들 위치 돌려주기, 마른 헝겊으로 이파리 하나하나 닦아 주기, 아버지의 힘을 빌어 오래된 애들부터 순차적으로 흙 갈아주기, 가끔 음악 틀어주고 애들이랑 대화 나누기 그리고 최대한 에어컨 켜지 않기 등. 하루의 많은 시간들을 애들을 위해 투자하시는 겁니다. 그게 금손의 비결입니다.


  반대로 평생을 맞벌이 중인 우리 부부는 바람에 먼지에 관계없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킬 수도 없고, 비 내린다는 예보에는 창문을 꼭꼭 닫고 출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천둥과 번개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댕댕이 때문이기도 하지요. 특히 거실 창틀에 J자로 웅크리고 누워 일광욕을 하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을 너무도 좋아라 하기 때문에 안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기도 하고요. 초록빛 하나 없이 답답한 거실에 그저 눈에 보기 좋고, 가끔 솟아오르는 새순을 보는 게 행복하고, 아주 더 가끔 피어나는 꽃이 좋고, 짙은 푸른색에 실내 공기 정화에 도움이 된다는 평범한 이유로 한 개, 두 개씩 애들의 위치 이동만 시켜놓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내보다는 내가 애들이 좀 더 신경이 쓰이는 가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나름의 시간을 정해서 무의식적으로 물을 주는 행동을 반복하는 걸 보면 말이죠. 그런데 이제 막 죽이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몇 종류 안 되는 애들의 특성이 조금씩 구분되어 보이긴 합니다. 다섯 해 동안 정도를 키우다 보니 애들마다 자라나는 특성들이 같은 듯 다르네요. 모두가 창가 쪽으로 고개를 삐죽이 내밀면서 햇빛을 더 많이 받으려는 건 같은 특성인 듯하면서도 아레카 야자와 여인초는 이마저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긴 하고요.


  어찌 되었건 자주 화분을 돌려가면서 위치를 잡아줘야 합니다. 특히, 뱅갈 고무나무는 파르스름하게 얇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여린 새순이 나올 때마다 2-3주에 한 번씩 방향을 돌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가운데 줄기가 연할 때 어느 한쪽으로 휘어지지 않고, 적당히 곧게 키가 큽니다. 콩고 고무나무는 이미 틀렸습니다. 지지대를 세워도, 받침대 밑에서 끈을 연결해 줄기 가운데를 묶어 휘어진 반대쪽으로 살짝 당겨놔도 몇 달째 고집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두라는 식입니다. 쉽게 안될걸 하면 흐느적거리는 것 같습니다.


  삐딱한 콩고 그 녀석은 더더욱 삐딱해져 있습니다. 굵은 pvc 지지대를 하나 더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호박잎만큼 큰 이파리를 자랑하는 여인초는 일찌감치 고개를 숙인 채 계속 거실 바닥을 향해 있습니다. 소갈머리 없는 갈퀴 머리 같습니다. 찢어지듯 갈라져 구멍이 생긴 이파리가 하나가 더 생기고 있습니다. 아레카 야자는 줄기 아래 뭉치 부분을 감싼 노르스름한 줄기 겉껍질 위에 기미처럼 생긴 까만 점들이 생긴 지 오래입니다. 허리는 꽃꽃 하지만 이파리 끝은 노르스름 해진 게 꽤 많습니다.


  그런데 참 솔직한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솔직하다 못해 대놓고 기분 좋다, 아 신난다를 두 팔 벌려 외치는 녀석입니다. 다른 애들은 3주 이상 물을 못주지 않는 이상, 일요일마다 물을 줘도, 며칠 조금 늦게 줘도, 깜빡하여도 하루 이틀 일찍 줘도 그만인 듯 무심합니다. 뭐 고맙다는 반응까지는 몰라도, 살짝이라도 움직임이, 온몸을 휘감아 도는 수분의 보충이 느껴져야 하는데 대부분 거의 눈에 띄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얘들은 정신없는 속도전 사회에서 기다림을 연습하게 한다고는 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한 녀석은 이틀, 아니 하루만 잊고 지나가도 벤치에서 시무룩하게 내려다봅니다. 온몸으로 삐쳤다고 소리칩니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입니다. 나 좀 봐달라고 삐죽거립니다. 어제처럼 정신없이 바쁜 월요일 아침에는 더욱 그렇게 보입니다. 이파리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오그라들려 하고, 줄기는 냉동실에서 식탁 위에 꺼내놓은 가락엿같이 늘어집니다. 누렇게 떠서 말라 버린 줄기들이 하나 둘 빠른 속도로 늘어납니다. 제일 키가 컸던 줄기는 다른 줄기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숨어 버립니다.


월요일 아침 풀 죽어 있는 스파티필름

위 사진에 있는 녀석은 정확히 7일 전, 지난주 월요일에 물을 흥건히 줬습니다. 그런데 어제 월요일. 이렇게 고개를 다 숙이고 있습니다. 물도 안 주고 뭐가 그리 바쁘다고. 흥칫뿡 하면서 눈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물은 주고 출근해야지 하고 일주일 전 미리 수돗물을 받아 둔 조리개를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사진을 찍느라 물을 주는 연속 동작으로 이어지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어제 퇴근하고 들어서니 아침보다 더 축 늘어진 이파리들 옆에 빨간 물조리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더군요. 그래서 하루 더 늦게 물을 충분히 줬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스파티필름은 물을 주면 금방 온갖 크고 작은 잎들이 바로 힘을 냅니다. 두어 시간만 지나면 거짓말 조금 보태 줄기를 타고 잎 속으로 물을 주르륵 흘러 들어가는 것이 보이는 것 같을 정도로 회복력이 빠릅니다. 참 솔직한 녀석입니다. 퇴근 후 기운 없이 노곤한 날 거실에 들어서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힘이 솟습니다. 사방팔방으로 힘차게 뻗어 있는 줄기들은 마치 2-3미리 정도의 굵은 철사를 꽂아 방사형 틀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힘차 보입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줄기에서는 넘쳐나는 솔직한 힘이 한가득입니다. 사이사이에서는 며칠이 멀다 하고 새순이 나오는 듯싶더니, 연필처럼 데구루루 말려 있다 원래 이파리보다 더 크게 손바닥을 딱 펴고 자리 잡습니다.


그렇게 오 년입니다. 노오란 꽃술을 자그마한 여자 아이의 손바닥 같은 새하얀 꽃잎이 일 년에 한두 번 잠깐 피었다 사라집니다. 나를 테스트하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합니다. 묵혀두지 않고 그때그때 표현합니다. 하지만 거칠지 않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스파티필름을 키우면서 나에게 한 가지 생긴 습관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러지 못했던 것 중 하나. '아빠, 다음 주 무슨 요일이 생일이야'. '화이트 데이 까먹었다', '나 그거 싫은데, 저건 어때'라는 말을 더 자주 합니다. 가족들에게. 금손이지만 표현 못하시는 엄마한테는 은근, 스파티필름을 좀 닮아보자고 압력(?)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조금 더 솔직하면 좋겠습니다. 솔직하게 당당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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