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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29. 2023

까치의 경고

사진: Unsplash의Ana Paula Grimaldi

햇살 좋은 점심 시간. 어김없이 산책을 나간다. 아무리 할 일이 넘쳐도, 귀찮아도 나간다. 좋은 습관을 만드는 연속동작하기 시리즈 중 하나다. 점심 먹고 도시락 씻어 놓고 5층 사무실에 앉지 않고 바로 그라운드로 내려 가기.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음 동작으로 이어져야 작은, 아주 작지만 나에게 의미있는 좋은 습관이 될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1층으로 내려가면 그라운드에서 농구하고 축구하고 야구하고 그냥 뛰고 걷기도 하는 많은 아이들을 마치 관중처럼 구경하듯 스탠드에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있는 장면을 늘 마주하게 된다. 박장대소 하는 아이들, 훌쩍이는 아이옆에서 토닥이는 아이들, 두손 슬쩍 잡고 데이트 중인 아이들, 진지한 표정으로 춤 연습하는 아이들, 혼자 멍하니 하늘을 땅을 바라보는 아이들, 건물을 한바퀴 두바퀴 돌면서 산책하는 아이들. 그들 사이 사이를 나도 롤러 스케이트 타듯이 미끄러져 스며들며 걷는다. 


그렇게 닿는 곳은 5층 건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체육관 뒤 주차장. 가냘픈 펜스를 사이에 두고 약간 경사진 밭 가운데 농막이 있는 농가와 나뉘어져 있다. 고추를 심고, 방울 토마토를 심는 농가다. 그 펜스 안쪽에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텃밭이 있다. 작은 밭과 큰 밭이 펜스를 경계로 나뉜 듯 이어져 있다. 우리학교 체육관은 그라운드에서는 바로 이어지지만 돌아 내려가면 뒷마당 같은 공간이 숨어 있는 베이스먼트 구조다. 그쪽 아래 동아리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벽면. 벽돌 문양이 선명한 필름지 같은 벽지가 발라져 있는데, 나의 최종 목적지는 거기다. 햇살을 받는 낮에는 그 벽이 그렇게 따듯할 수가 없다. 한여름에는 필름지가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워 손을, 엉덩이를 가져다 되지를 못할 정도다. 



거의 매일 아무도 없는데 오늘 그곳에를 가니 두분이 먼저 와 계셨다. 가끔 산책을 할 때 만나는 보건선생님과 사회선생님. 두분은 옆에 나란히 서서 양 손바닥을 벽돌 무늬 위에 펼쳐 데고 있었다. 따듯하게 달아오른 벽에서 온기를 느끼는 중이었다. 나도 그 옆에서 허리를 바짝 가져다 붙히고 햇빛을 마음껏 맞았다. 온열 치료가 따로 없다. 그러다 우연히 잘못을 고백하듯 하는 보건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산 바로 아래에 있는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에 까치가 집을 지었단다. 한달전에는 없었는데 그사이 지어진 것 같다고. 그런데 실외기 팬 안쪽으로 까지 나뭇가지를 걸쳐 놨더란다. 그래서 사부님이 주말 동안 그 나뭇가지를 다 치우느라 한참을 애 먹었단다. 


그 과정에서 세 가지에 놀랐다고. 우선 다 걷어낸 나뭇가지 양. 10kg 쌀 푸대 정도에 두 자루가 넘게 나뭇가지가 나왔단다. 한달동안 그 많은 나뭇가지로 어떻게 그렇게 견고하게 무허가 대저택을 지었는지 모르겠단다. 나중에 검색을 해서 보니 까치는 평균 1800여개의 나뭇가지로 집을 아주 견고하게 짓는 녀석이더란다. 그 다음. 그 나뭇가지들의 길이가 거의 일정하게 일률적이었다는 점. 까치가 참 똑똑하고 끈기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마지막으로. 나뭇가지를 거의 다 걷어내고 보니 알이 서너개 발견되었다고. 그래서 지금은 나뭇가지 몇개를 남겨 놓고 그 위에 까치 알만 덩그러니 남겨 놓여진 상태라고. 


그러면서 주위를 날아다니다 발코니 건너편 나무에 걸터 앉은 까치가 자꾸 선생님 집을 노려보듯 쳐다보고 있다고. 그러다 우연히 자신과 눈이 맞은것 같은데 그렇게 우왁스럽게 울어대는 건 처음 봤다고. 그래서 섬찟하고, 무섭고, 미안했다고. 그 까치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걱정이라고. 알이 잘못되면 까치의 저주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오십대 후반의 보건선생님은 옆에 있는 나와 동갑내기 사회선생님에게 까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정말로 진지했다. 평소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 모습 그대로. 그래서 참 미안해하고 더 많이 무서워하는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이 속담은 까치의 시각, 후각 때문에 생긴 말이라는 게 정설이다. 까치는 새중에서도 시각과 후각이 뛰어난 텃새로 유명하다. 예전 한적한 시골.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고 익숙한 사람들만 모여 살던 시절에는 동네 사람들의 냄새를 기억한다. 그렇다 보니 그 동네 살던 사람들이 아닌 낯선 이가 들어오거나 산 짐승들이 내려오면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그렇게 울어대는 거다. 그런데 까치는 아주 잔혹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먹잇감을 사냥하고 나면 철조망, 나무위 등에 잡은, 때로는 먹다 남은 먹잇감을 걸어 놓는다. 마치 과시를 하듯이. 어릴 적에 나뭇가지에 머리 잘린 자그마한 도마뱀, 지렁이 뭉쳐진 것, 들쥐 등의 사체들이 걸려 있는 걸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까치짓이라 생각을 못하고, 겁이나 도망치거나 용기를 내 친구들과 나무꼬챙이로 악착같이 긁어내 바닥에 떨어뜨려 놓고 하산을 하곤 했다. 그럴때마다 까치들이 머리위에서 위협 비행, 저공 비행을 하면서 엄청나게 괴성을 질러댄다. 친구들 덕에 그랬지 싶다. 쪽수로는 우리가 더 많았으니까, 항상. 


그런데 어릴때 집 뒷산으로 놀러 올라갈 때 까치가 울면 한참을 기다렸다 가야 한다고 아버지가, 어른들이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유는 두 가지. 우선은 손님이 오면 - 어릴 때 손님은 주로 삼촌, 고모, 이모, 아빠 친구, 엄마 동생 등으로 양손 가득 먹을 걸 들고 오시는 게 대부분이니까 - 맛있는 걸 먹고 놀러 가라는 거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산짐승 - 주로 멧돼지나 고라니 - 이 집 뒤 밭 근처까지 어슬렁 거리면 일부러 큰소리를 내고, 이것저것 집어 던지면서 쫓아 버린 후 친구들과 우루루 몰려 올라가야 안전하다는 거다. 돌이켜 보면 어른들은 참 지혜로웠다. 


어쩌면 까치가 아파트 베란다를 점령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파트가 까치네 동네를 점령하고 산으로 산으로 기어 올라와 있는지도. 까치와 눈이 마주친 보건선생님이 까치의 저주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알을 발견 못하고 까치집을 홀라당 벗겨낸 미안함을 까치는 알지 못할거다. 하지만 알은 며칠 있으면 썩는다. 그러면 다시 그 냄새를 맡고 다른 새들이 몰려 든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 살던 아파트에서 실제 겪었던 일이다. 딱 메추리알만한 새알이 껍질이 벗겨지고 흰자가 거무스름 해진다. 비가 오고 나니 그것마져 헤져 노른자가 밖으로 세어 나왔다. 그걸 쪼아 먹겠다고 낮밤으로 비둘기가, 이름 모를 새들이 들락거렸다. 


그래서 지금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부터는 바로 실외기 위에 그물을 설치했다. 하지만 그물만 설치하면 영특한 새들이 - 특히 구구구, 비둘기들이 - 사뿐이 연착륙을 자주 시도한다. 그러면 망이 푹 내려 앉아 실외기를 덮어 버린다. 에어컨을 가동하면 팬속으로 그물이 빨려 들어가어 엉켜 버린다. 그러지 않더라도 화재 등의 위험성이 커진다. 물론 거금의 수리비가 들어갈 수 도 있다. 그래서 그물을 팽팽하게 창틀에 고정한 뒤 그 사이에서 난간까지 굵은 철사를 창문틀까지 우산살처럼 연결한다. 그리고도 안심이 되질 않아 타이끈 가장 큰 것들로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 형광색을 섞어서 난간에 주루룩 세워서 하늘을 향하게 한다. 그럼 새들에게도 알록달록한 뭔가가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 감히 앉지를 못한다. 



내가, 인간이 살 궁리를 하는 작은 방도이다. 까치는 마찬가지일거다. 어쩌면 나보다 까치가 더 악착같이 살아내려고 바둥거리는 상황일지도. 분명 넓디 넓은 야산과 들판에서 훨훨 날아다니던 새들을, 까치를 밀어내고 우뚝 우뚝 우리가 살집들이 들어선 게 순서상 맞다. 새들이, 까치가 우리가 사는 집을 공격하는 건 아니지 싶다. 그냥 까치나 우리나 이렇게 다 자기 살 궁리를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자연이 그립고 까치는 새끼를 키울 둥지가 필요하고. 가끔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당부하는 문구를 볼 수 있다. 딱 그거다. 서로 살 궁리를 각자 하는 거다. 선생님이 걱정하는 까치의 경고는 같이 살자는 부탁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까치알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 걱정을 하신 보건선생님. 미안함이 조금은 줄어 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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