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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31. 2023

200번째 연습

사진: Unsplash의Etienne Girardet

겨울 끝자락을 부여잡으면서 시작한 3월이 오늘로 마지막날입니다. 한가득 봄이라는 게 느껴지시나요? 그런 봄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시나요? 절기상 2월 4일이 입춘이었습니다. 봄의 시작이지요. 하지만 그때를 봄이라고 느끼기에는 체감 온도가 꽤나 낮습니다. 봄을 알리는 새싹들도 솟아 나오지 않았고요. 지난주 화요일인 3월 21일 춘분. 낮과 밤이 같아지는 그날을 보통 실질적인 봄의 시작으로 봅니다. 도시 농부, 촌락 농부 모두가 이랑, 고랑을 정리하면서 씨 뿌릴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렇게 춘분에서 하지 사이, 3월에서 5월 사이가 봄입니다. 생활 속 봄입니다.


어제 졸사를 찍은 아이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매년 어김없는 졸사지만 마스크를 벗은 올해는 느낌이 다릅니다. 남쪽바다 진해에서 3년 만에 군항제도 열리고 있다고 하네요. 한 접시도 채 되지 않는 돼지고기가 5만 원이 넘는다는 씁쓸한 소리도 들립니다. 여하튼 대부분 지역에서 봄꽃 축제가 4월 초 중순에 열립니다. 지난주 처남 가게를 찾았다가 잠깐 윤중로를 미리 걸었습니다. 쪼르륵 서 있는 벚나무 가로수 중 잠깐을 걸었던 구간에서 딱 두 그루가 만개했더군요. 이미 벌써 그 두 그루에서는 봄눈이 함박눈이 되어 머리로 어깨로 가슴으로 마음속으로 마구마구 내렸습니다.



그런데 춘분이 지난 요즘에도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참 큽니다. 낮만 생각해서 얇게 입고 다니면 감기 들기 쉽습니다. 교실에는 이미 감기 걸린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새벽 출근길 공기는 여전히 서늘합니다. 게다가 저처럼 코로 봄이 먼저 찾아오는 경우라면 마스크가 아직 유용한 필수품입니다. 낮에는, 땅은, 나무는, 먼지는, 하늘은, 봄눈은 봄이 맞지만 3월에는 봄만 들어차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속에는 겨울과 여름이 뒤섞여 있습니다. 올해처럼 5주 가득 찬 3월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비인후과에는 평일 낮에도 환자들이 많더군요.


일교차가 큰 날씨 속에 봄비도 황사도 미세먼지도 오락가락입니다. 아침에 개었다가 점심때 후드득 흙비가 떨어집니다. 퇴근할 때는 다시 햇살이 가득합니다. 옷을 어떻게 입고 챙겨서 출근을 해야 하는지 애매한 날이 한두날이 아닙니다. 그래서 봄입니다. 그런데 이맘때 찾아오는 날씨만 그런가요? 변덕스러운 날씨를 핑계 삼아 보지만 자연의 순리대로 짙어가는 봄보다 어쩌면 내가 더 변덕스러움이 가득한지 모르겠습니다. 운동해야지 하지만 주저앉게 됩니다. 만나야지 하지만 귀찮아집니다. 해봐야지 하지만 책상에 앉기만 하면 졸음이 밀려옵니다.


몸보다 눈으로 코로 먼저 봄이 찾아온 게 원인입니다. 자그마한 알약 한 두 알에 몸은 더 노곤노곤합니다. 준비도 안 하고 오는 봄을 맞으려 갑자기 달려 나간 게 또 하나의 원인입니다. 몸은 아직 짙은 겨울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는데 봄을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봄을 생각으로 누려야 하니까요. 다들 봄 앞에서 들떠 있는 것 같아서 덩달아 마음 먼저 봄인 겁니다. 대지가 내뿜는 봄의 기운을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나서지만 몸은 아직입니다. 몸나이는 여전히 그렇게 짙은 겨울입니다. 그렇게 겨울이 봄에 슬쩍 올라타려고 합니다. 겨우내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준비하고 나타난 봄인데 말입니다.  


봄꽃으로 나를 가리려 합니다. 새싹뒤에 숨어 들려합니다. 들판에서 들리는 무수한 생명의 용솟음에 나의 잡념을 갈아 넣으려 애씁니다. 타인들의 환한 미소에 덩달아 마냥 기쁨만 간직하려 합니다. 책상 앞 의자에서 단박에 구름 위로 뛰어올라앉으려고 합니다. 그런데요. 그래도 올해 봄은 작년보다도 조금 더 다행입니다. 이런 산란함이 이전처럼 결코 슬프거나 기진맥진하거나 주눅 들지는 않는 게 분명하니까요. 봄을 핑계로 변덕을 즐기는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하니까요.


코도 눈도 그리고 마음도 변덕스럽게 다투지만 쓰는 나만큼은 잘 지켜내고 있으니까요. 작년, 올해 봄을 이렇게 쓰면서 맞이하는 건 정말 행운입니다. 글 속에서 가만히 나를 들여다봅니다. 그러면서 결론 내립니다. 나의 몸과 마음의 속도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봄만큼 좋은 때가 없지 싶습니다. 인지상정이듯 인지상기(氣)입니다. 정에 흔들리듯 마음과 몸이 기상 상태에 따라가는 게 지극히 인간적이다 싶으니까요. 그래서 나의 변덕이 그리 가라앉거나 무겁지만은 않은 이유가 바로 쓰는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는 데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하루하루 짙어만 가는 봄 한가운데서 제철 마음과 제철 몸을 만드는 연습을 오늘도 이렇게 합니다. 그 연습이 벌써 이백 번째입니다. 앞으로도 더 신나게, 차분하게, 꾸준하게 제철 인간을 만드는 연습을 마음껏 즐겨보리라 다짐합니다. 겨울을 지나오지 않았다면 지금 봄이 그리 반갑지 않을 테니까요. 쓰지를 않았다면 지금 봄이 그저 마음과 몸을 소비하는 환절기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모든 생명이 기적입니다. 참 고맙습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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