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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19. 2023

다육이 맛집

[풀꽃들에게]4_동네여행ing입니다

퇴근하면서 바로 이어하면 좋은 연속 동작이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 는 참 힘들어요. 귀찮아요. 집에 들어가면 쉬고 싶어 지니까요. 그런데 배는 고파요. 그래서 차를 주차하면서 바로 연속 동작 시작. 걷습니다. 그러면 저녁도 아내와의 산책도 아내의 운동도 그리고 소주 한잔도 다 해결할 수 있지요. 어제가 그런 날이었습니다. 


어제는 집 바로 앞 골목 안에 있는 밥집 같은 술집에서 아내와 함께 콩비지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집 뒤쪽으로 걸어 나가면 술집 같은 밥집이 있습니다. 가끔 들르는 동네 식당입니다. 양꼬치를 파는 집입니다. 이 집이 좋은 이유 중 하나도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집에서 나와 말캉거리는 초등학교 앞 인조잔디 골목을 지납니다. 그리고 횡단보도 하나를 건넙니다. 그리고 상가주택이 나란히 있는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제일 끝 모퉁이에 자리 잡은 집입니다. 천천히 걸어도 10분 거리입니다. 


그런데 이 집은 돌돌 돌아가는 양꼬치 말고도 몇 가지 요리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게 이 집 꿔바로우입니다. 양꼬치가 익어가는 동안 큼직한 꿔바로우를 숭덩숭덩 잘라 둡니다. 그리고 *따오 대병 하나를 땁니다. 아내 한 잔, 나 나머지 다. 걸어왔으니, 대리할 이유도 없으니, 한잔을 먹어도 마음이 편한 식당입니다. 술은 정말 잘 못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하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콕 찍어놓고 싶을 때는 참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돌리고 자르고 건배하는 동안 나의 시선에는 대각선에 앉아 있는 여사장님이 와닿습니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자그마한 분이십니다. 멜란지 그레이가 섞인 검은색 셰프 복장을 하고 노란 앞치마를 하고 있습니다. 앉아 있는 창가 테이블 위에는 수북이 무언가를 올려놓고 장갑을 낀 손으로 정성껏 정성껏 매만집니다. 그 테이블 위에는 정육점 냉장고 불빛 같은 작은 스탠드가 여러 개 켜져 있습니다.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사장님의 눈빛이 그윽합니다. 입꼬리는 살짝 승천해 있습니다. 들리지는 않지만 아마 코로 살짝살짝 흥얼거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사장님의 이런 모습은 본격적인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방문해야 볼 수 있습니다. 손님들이 들어 차면, 그 테이블 근처까지 손님들이 들어오면, 바빠지기 때문일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아, 알록달록한 등이 켜져 있는 그 테이블은 손님용은 아닌가 봅니다. 하루는 5시가 조금 넘어서 간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우리 식구 셋다 시간이 잘 맞았었나 봅니다. 오늘 뭐 먹을까의 결론이 걸어서 양꼬치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생분들이 두 분 다 순서대로 출근할 무렵, 그렇게 큰 맥주를 두 병 나눠 먹고 나왔습니다. 골목이 살짝 어슴푸레 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게 앞 인도 위가 더 화려하게 보였나 봅니다. 


여사장님이 분무기를 들고 이리저리 천천히 움직이다 숙이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옆으로 살짝 가다가 봤습니다. 그랬더니 가게 바깥 창가 쪽에 기다란 세 단짜리 화분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빼곡하게 다육이들이 모양도, 색깔도 다 다르게 놓여 있었습니다. 아내가 너무 예쁘다고, 신기하다고 말을 거는 순간 여사장님이 살짝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에 어느 지인을 병문안했더랍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 그 병실에 있던 자그마한 다육이 하나를 오히려 선물로 받았더랍니다. 그러면서 '나라고 생각하고 잘 키우라'는 그 말이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죽이면 안 된다, 죽이면 안 된다를 되뇌면서. 다육이라는 말 자체를 아니, 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는 자신에게 누군가가 선물한 자그마한 생명. 


캔을 절반으로 잘라 하나하나 만든 그 화분에도 커다란 생명이 있다는 깨달음을 분명 얻었을 듯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책을 통해 이런저런 내용을 알아보고, 문화센터에서 다육이에 대해 배워가면서 그 자그마한 생명을 이렇게 키워낸 거라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4년이 넘는 시간의 이야기를 다소곳하게 하는 여사장님의 목소리는 나에게는 위로였습니다. 큰 것만 좇아 헤매지 말고 언제나 작은 것부터 소중하게 다루는 연습을 하는 게 인생이라는 위로. 그 연습이 필요 없는 게 아니라 더 소중하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어 주는 참 따듯한 위로. 내가 사는 동네를 잘 돌아보라는, 그게 지금 이 순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여행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다육이를 내려다보는 창가에는 '가져가시지 말고, 눈으로만 예뻐해 주세요'라는 호소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밤새도록 바깥에 내놓고 들이지 않는 사장님의 여유로운 마음이 배워져라, 배워져라 하면서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를 셋이서 다시 걸었습니다. 달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일팔 청춘 따님은 몇 번을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을 눈으로 마음에 담습니다. 


저 하늘의 달빛이 지금 이곳과 어느 날 어느 때 따님이 살아낼 지구 위 그 동네를 함께 이어주고 있을 거란 생각을 혼자 했습니다. 그래서 따님도 많이 걸으면서 작은 생명을 소중하게 나누는 이들과 행복한 동네 여행을 즐겼으면 좋겠다 기도했습니다. 그래야 달도 나도 오늘을 기억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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