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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17. 2023

정크 아트

한달에 한번 동아리 활동이 있다. 약 2시간에 걸쳐서 진행이 된다. 내가 맡은 동아리는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서 나를 찾아와 연결된 법학 연구 동아리다. 아이들은 줄여서 <법연동>이라고 부른다. 자기 분야의 법에 대해 관심을 가진 아이들이 모였다. 군인, 심리학자, 경제, 경영, 일본어 등의 자기 진로 희망 분야와 관련한 판례를 찾아 토의하는 전형적인 인문학 관련 동아리다. 3월 첫 시간. 학교에서 첫 미팅이 있었다. 이런 저런 활동을 계획하고 팀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보다 중요한 활동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공부할때도, 자습할때도, 쉴때도 머무르게 되는 교실. 그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동아리 활동 역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장소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의지와 실천을 다짐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 면에서 동아리 활동은 언제나 학교밖 장소를 찾아 옮기려고 한다. 그런 의미를 짧게 전했을 뿐인데, 모인 팀원들이 모두 환호성과 함께 아주 좋아했다.


아이들의 머리속에 우리 동아리는 페이퍼 준비-발표-질의 응답-나의 코멘트 식으로 정리가 되어 있었기 때분에 장소의 문제는 없었던 거다. 당연히 교실이었던 거다. 당연히 지도교사인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그 반으로 모이는 거다.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 담당하는 선생님 입장에서 자연스레 그렇게 배치가 되었던 거다. 그래서 우리반에서 첫번째 미팅을 했던 거다. 10대때 소중한 경험중 하나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가 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의 끝에서 여리(가명) - 일단 표정이 밝은 여학생이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컥컥거리기까지 하면서 잘 웃는다. 여고생 특유의 박장대소 스타일이다. 여군이 꿈이다. 내가 수업하는 네 개의 과목중 세 개를 선택하고 따라 다닌다. 아, 물론 내가 아니라 과목을.  - 가 휴대폰을 슬쩍 들었다. 그리고는 팀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한참 카톡을 했다. 내가 말하는 중에도. 얼마 뒤 눈빛이 더 초롱초롱해졌다. 이야기중에 나하고 눈이 딱 맞으니까 그런다. 자기가 아는 장소가 있다고. 일년 동안의 동아리 활동 장소로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여리는 이미 그 청소년 시설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학생이었다. 여리 덕에 찾아봤다. 펀그라운드. 이름도 여리처럼 유쾌했다. 그렇게 3월 첫번째 활동부터 <법연동> 활동은 펀그라운드에서 진행중이다. 한달에 한번이 아주 아쉬울 정도로 아이들이 만들고 발표하고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들이 깔끔하게 잘 완비된 청소년 전용 시설이다. 나같은 어른들은 출입 자체가 되지 않는. 여리덕에, 동아리 팀원 덕에 내가 더 좋은 경험을 얻고 있는가 보다.  


2018년 기준으로 지구인의 쓰레기 배출량이 20억톤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 추세라면 2050년에는 34억톤으로 70% 이상 급증할 거라고 한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거대 실험이 시작된 지 이미 오래다. 그 실험의 목적은 간단하다. 지구를 지키는 게 아니다. 북극곰을 살리려는 게 아니다. 결국, 지구인을 살리려는 거다. 지켜내려는 거다. 나 다음 세대, 그 세대 다음 세대를 지켜내려는 거다. 


지구인들이 쓰고 버리는 쓰레기. 그 쓰고 버리는 과정에서 다음 세대인 10들의 경험이 중요하다. 어떻게 쓰고 어떻게 버리고, 다시 어떻게 재활용하는지. 아니 어떻게하면 덜 쓰고 덜 버릴 수 있는지. 그러면서 더 재활용할 수 있는지.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의 환경은 지금 10대들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을 만들어 주고 그런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경험에 노출되는 계기가 필요하다.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정크 아트junk art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크는 폐품, 쓰레기, 잡동사니를 의미한다. 이처럼 버려지는 정크를 활용해 탄생시킨 작품을 정크 아트라고 한다. 정크 아트는 업사이클링, 리사이클링 등 쓰레기 재활용을 독려하려는 시대 정신의 산물이다. 포인트는 그 시대 정신이 10대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식하는 계기의 마련이 필요한 거다. 할 일 많은 10대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예술 작품은 불특정 다수에게 영감을 준다. 물론 각자의 해석과 의미가 가미되지만 그 조차도 의미가 있다. 부서진 자동차 부품, 금속, 나무, 타이어, 해안에서 발견된 쓰레기, 망가진 기계 부품, 고철, 고물, 소파와 의상, 그림책, 캔, 플라스틱, 비닐류, 담배 꽁초, 유리병 등. 이런 저런 장소에 넘쳐나는 이런 쓰레기들을 통해 십대들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까. 그건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펀그라운드에는 <법연동> 외에도 두개의 우리 학교 동아리팀 활동 작품이다. 펀그라운드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모아와 작품을 만들었다. 쓰레기를 바닥에 부은 지 채 삼십분도 지나지 않아 멋진 정크 아트를 해냈다. 그러는 동안 남학생들은 와 담배 냄새. 왜 이런 걸 피우는 거야. 라며 중얼거린다. 서로 대화를 이어간다. 넌 담배 피울꺼야. 난 절때 아니지. 유혹은 있겠지. 그래도 잘 참아내야지. 혹시 피우게 되더라도 이렇게는 아니지.  

A팀의 작품(쓰레기 꽃)                                       펀그라운드                              B팀의 작품(쓰레기 비)


백마디 말보다 이런 장소에서의 한두번의 경험이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의미로 남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십대들이 쓰레기를 다른 시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는 장소와 어른이 마련해야 줘야 하는 책임인 거라는 생각을 더욱 진하게 하게 된다. 이런 시설들이 동네 도서관처럼 많이 지면 십대들이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법 역시 완벽하지 않다. 당장은 법에 관심을 가져 모인 아이들이 슬쩍 슬쩍, 어깨 너머로 엿보는 또 다른 세상속에서 자신들의 미래, 지구, 지구인의 안전을 조금 더 일찍부터 고려하는 사고와 생활 방식을 몸이 기억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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