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Apr 20. 2023

좋은 기억으로 달래 봄

지금은 누가 뭐래도 봄이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고, 봄비도 오락 가락 내렸다. 여기저기서 봄을 눈에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렇게 이 봄을 만끽한다. 대지 역시 넉넉한 봄비덕에 움트면서 한 해를 살아 낼 궁리를 다 마친 듯 하다. 하지만 이것만이 봄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봄에는 한반도에 이동성 고기압과 이동성 저기압이 교대로 통과한다. 일반적으로 고기압일때는 구름없이 파란 하늘이다. 공기가 차가워서 상승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름량이 적어지는 거다. 저기압은 반대다. 지표의 공기가 뎁혀져서 가벼워진다. 그래서 상승하는 수증기가 구름을 많이 만든다. 그러면 햇빛을 가린다. 그리고 비나 눈이 내릴 확률이 커진다.


그렇게 저기압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엄마 오늘 저기압이야라고는 하지만 고기압이야 라고는 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 몸이 받는 햇빛양이 줄어 들면, 비타민 D 생성이 저하 되면 급 우울해지는 거다. 그거 따라 내 몸도 마음도 오르락 내리락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는 사이 뇌우 - 천둥이나 번개 - 가 나타나기도 한다. 봄비다. 또 그러는 사이 앞뒤로 아직 미련이 남은 시베리아 출신의 공기 덩어리가 불쑥불쑥 한반도를 덮기도 한다. 꽃샘추위다.


겨울 추위를 지배했던 시베리아가 고향인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초봄에는 살짝 밀려났다가 밀려오는 밀당을 반복할 때 발생한다. 그 밀당 시기가 봄이다. 그러면서 바다에서 뜨겁고 습한 공기가 밀려 올라오지 못하고 스탠바이 상태가 된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래 내리지 못한다. 봄이 건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야 보습제를 듬뿍듬뿍 발라주면 그만이지만. 넓디넓은 대지의 보습제는 비란 생명수가 유일하니까. 겨우내 건조했는데 비가 내리지 않으니 건조한 상태가 강화되는 거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다. 특히 동해안 고성에서 양양~강릉~삼척~동해로 이어지는 이 라인에 산불이 자주 발생한다.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분다. 봄철에 이동성 고기압이 한반도의 남쪽에서 남서쪽에 걸쳐 있으면서 북한 지역에 저기압이 배치되면 바람이 심하게 불게 된다. 그 바람에 한반도가 놓이게 되는 게 봄이다. 특히, 강원도 양양과 간성 사이, 양양과 강릉 사이의 태백산맥 골짜기 지역을 불어 내려오면 지형적인 영향으로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다. 산에 불이 났을 때 도로옆 주택가로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달려 내려오듯 다가오는 이유이다. 옛사람들은 이걸 양간지풍(襄杆之風),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고 불렀다. 잔불을 다 제거하고 밤에 소방대원들이 철수해도 새벽에 다시 불을 살리는 원인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또 다른 봄은 산불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요일에는 전국 많은 지역에 미세먼지 경보가 울렸다. 올봄 들어 처음이다. 오후 2시 무렵에는 남양주의 농도가 313㎍/㎥까지 치솟았다. 같은 시각 중국의 베이징, 신장 위구르 지역, 인도의 캐시미어 등에 비하면 몇 분의 1 수준이지만. 같은 날 베이징은 688㎍/㎥이었다. 이러다 보면 한반도도 그렇게 되는 건 시간문제이지 싶다. 편서풍 덕분에 황사는 물론이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미세먼지까지 날아드는 상황이니 말이다. 초미세민지는 36㎍/㎥ 미만이 정상 범위다.(실시간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알아볼 수 있는 사이트(https://earth.nullschool.net/ko/#current/particulates/surface/level/overlay=pm2.5/orthographic).  



어제 5층 사무실에서 찍은 사진이다. 일주일 만에 다른 세상인 듯하다. 봄이 겨울이 밀리는 듯 하더니 하룻새 여름에 자리를 내주려다 싶었다. 이 사진을 마주보다 보니 아이들에게 가끔 전해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글에서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주일 간격의 두 장의 사진을 보니 다시 올라오는 대장내시경 실험 이야기다. 건강을 위해 대장 내시경을 무료로 실시해 준다는 공지를 해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 실제 대장내시경 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실험자들은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A집단과 B집단 모두 대장내시경을 실시한 것까지는 동일하게 진행이 되었다. 그러나 마무리 방식에서 두 그룹에서 차이를 줬다. 실험의 핵심이다. A집단은 그냥 내시경 검사만 한 통제집단. B집단은 어떤 조치를 취한 처치 집단.


두 집단의 차이는 이렇다. A집단은 내시경이 끝나자마자 호스를 즉각 제거한다. B집단은 내시경이 끝난 후 호스를 바로 제거하지 않는다. 삽입 상태로 5분을 기다렸다 제거한다. 그리고 두 집단에게 동일한 설문을 실시한다. '당신의 건강을 위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대장 내시경 검사에 다시 응할 것인가'. 두 집단의 응답 결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어떤 집단이 긍정적 응답률이 높았을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니 이제는 짙은 황사와 강한 봄볕 사이에서 철쭉과 소국들이 온 동네 한 가득이다. 철쭉이 알록달록 피어난 모습을 보면서 이네 흐드러진 벚꽃의 기억이 조금 더 지나면 더 많이 흔들리겠다 싶다. 그래서 사진 찍었던 그 아래에서 벚나무 기둥을 손으로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으며 혼자 약속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짙게 드리워진 구름뒤에는 언제나 햇살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눈부시게 파란 한낮의 하늘에도 별이 수없이 총총총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바람이 불고 비가 날리고 먼지에 숨을 쉬기가 쉽지 않더라도 해가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더라도 그 하늘 아래에서 나는 항상 아름다운 추억으로 살아내는 힘을 충전해 왔다는 사실을.


고통이 하나도 없는 추억은 없다. 반대로 아름다운 추억은 고통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 고통을 견디고 이겨낸 뒤 찾아온 안전, 안정, 건강, 행복, 평화까지 함께 기억한다. 그게 우리의 주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 추억이다. 그래서 기꺼이 다시 한번 필요하다면 고통을 지나쳐 갈 용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만드는 게 추억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볍게 지나갈 자신감을 갖게 하면서. 올해도 4월 하순의 봄이 어김없이 일러주고 있다. 이제 더워질 일 만 남았다고. 대장내시경이 아프지만은 않다는, 올봄도 그렇게 변덕을 부렸지만 그게 다, 그래서 다 봄이었다는 좋은 기억으로 올봄 마지막 절기 곡우를 지나쳐 가고 있다. 눈시리도록 그리울 아름다운 추억 한 페이지를 더 쓰면서.

작가의 이전글 다육이 맛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