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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07. 2023

나의 하늘

봄비가 내립니다. 말라있던 대지가 이제야 숨을 쉬는 듯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다 속 시원합니다. 여기저기서 일어났던 산불이 단박에 가라앉은 게 참 다행입니다. 밤잠을 설쳤을 수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이 참 고맙습니다. 하염없이 이렇게 더 내려서 갈라진 땅이 다시 서로를 붙들어 단단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손에 잡히는 우산을 집어 들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우산을 펼쳤습니다. 우산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참 좋습니다. 밤새 주차되어 있던 차들은 봄꽃으로 땡땡이 치장을 하고 다소곳하게 출발을 기다립니다. 지하주차장에서 차에 오르려고 우산을 접으려다 그제야 올려다봤습니다. 


비로부터 나를 막아 준 우산 속에 하늘이 있었네요. 하늘을 가린 하늘이 있었네요. 마음이 쏘옥 올라와 기분이 상쾌해지는 하늘입니다. 그 순간. 어둑한 먹구름뒤에 가려진 맑은 하늘을, 통통하게 새하얀 구름을 잠시라도 잊지 말라고 이름 모를 이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됩니다. 



그렇게 몇 초를 더 들여다보니 8개의 지지대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합니다. 하늘 아래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나. 그를 받쳐 주는 지지대는 무엇일까. 그 지지대가 떠받치는 나의 하늘은 무엇일까. 


팔, 머리, 얼굴, 다리, 손가락, 엉덩이, 무릎, 목, 허리, 눈, 혈관, 간, 심장, 신장, 손톱, 눈썹, 머리카락. 이 새벽에 어느 것 하나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게 없다 싶습니다. 이 모든 나를 받아 안아 보듬어 다듬고 지켜주려 한다는 걸 이제야 어렴풋이 알아가게 됩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말입니다. 나의 생각이 내 마음이고 그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내는 데 말입니다. 내가 나 일수 있도록 내 곁에 늘 그렇게 있는 모든 존재들이 있어 가능한 데 말입니다. 늘 고개 숙여 발 딛는 땅만 보며 넘어지지만 않으려고, 걸려들지만 않으려고 아둥거리는 나를 말입니다.


좀 더 천천히 걸으면서, 옆을 위를 돌아보고 올려다봐야겠습니다. 봄꽃 덕분에 고개를 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나의 하늘은 보이는 하나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껴봐야겠습니다. 지금 나를 가려주는 나의 하늘이라 믿는 것은 어쩌면 쇼일지 몰라요. 트루먼쇼.


사랑이라 말하면서 집착하고 걱정이라 타박하면서 강요하고 믿음이라 손짓하면서 내 편에만 서게 하려 하고 신념이라 주장하면서 그것을 검증하지 않으려는 나를 엿보는 세상. 그 세상이 두려워 자꾸 나만의 하늘아래에서만 안주하려고 하는 나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열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힘. 나를 가리는 하늘을 열고 짙은 어둠뒤에 기다리고 있는 진짜 하늘을 찾아보려는 눈. 나의 하늘 안으로 손잡고 당겨 함께 걸을 수 있는 마음. 이것들을 모아 나의 진짜 하늘 아래 고이고이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산을 접으면 펑하고 사라지는 그런 하늘이 아니기를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면서 땅에게 하늘에게 나에게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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