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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18. 2023

마당이 나은 달걀

스무해 넘게 10대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점심은 언제나 급식이었다. 교사들도 학생들이 먹는 것과 동일한 음식을 배식받아 먹는다. 단 차이점이라면 아이들은 무료 급식이라는 정도. 아래는 이번주 급식 식단의 영양량

 표기이다.  


나의 일일 권장 칼로리는 약 2,100정도다. 삼시 세끼로 나누면 한끼당 700kcal 정도. 그런데 이번주 급식표상 중식 평균 칼로리는 785kcal. 남자 청소년의 하루 총 열량은 2,500~3,000kcal이다. 단순 비교만 해봐도 아주 오랫동안 10대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영양소, 열량이 녹아 있는 고칼로리 식단을 그대로 먹었다는 거다. 강의때문에 조금씩 이동을 하면서 걷는다 해도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소화가 팍팍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고칼로리 음식의 가장 큰 문제는 오후부터 몸이 무거워 진다는 데 있다. 


(출처:대한당뇨병학회)


그래서 내가 먼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올해로 5년이 넘었다. 그러다 작년 하반기부터 아내도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간단하게 먹기 위해. 그래서 최대한 간단하게 싸가지고 다닌다. 한때는 제대로 밥과 반찬을 싸가지고 다녔다. 밑반찬 - 주로 오래 나눠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김치류. 염장류. 콩류, 멸치류, 김 등 - 을 넉넉히 가져다 놓는다. 다섯개의 작은 용기에 밥을 소분해서 랩을 씌운 후 냉동 시킨다. 그리고 먹을 때 전자레인지에서 데워 먹는다. 하지만 탕비실이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쓰는 사무실에서 이런 저런 음식 냄새를 유발하면서 먹는 게 편하지는 않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게 결코 쉬운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적게 먹겠다는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밥과 반찬을 가지고 다니지 않은 지 3년째. 밥 대신 지금은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가져다 먹는다. 삶은 계란, 구운 계란, 오곡 찰떡, 주먹밥, 찐고구마, 견과류, 우유, 두유, 과일, 샐러드, 그릭요거트 등. 지금도 사무실 냉장고에는 구운 계란 서너개, 찰떡 서너개가 들어 있다. 서랍에는 두유, 견과류가 있다. 


이중에서 뭐니뭐니 해도 나의 아내, 일팔 청춘 따님의 최애 점심 메뉴는 구운 계란이다. 요즘은 구운 계란도 유정란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여럿이다. 우리 셋은 거의 열흘에 30개 들이 한판을 먹는다. 특히 나와 아내는 매일 한 두 개씩 점심으로 먹는다. 거기에 노른자를 잘 먹지 않으려는 따님을 위해서라도 계란을 생산하는 닭들의 사육 환경에 관심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었다. 


얼마 전 따님이 계란에 찍혀 있는 일련 번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구운 계란을 나눠 먹으면서. 그러면서 1등급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 그래 마트, 협동조합 등에서 보통 달걀을 구매하는데 1을 본적이 단 한번도 없네, 하고. 그래서 여기 저기를 찾아 봤다. 판매되는 모든 계란에는 복잡한 듯 한 10자리의 번호가 찍혀 있다. 난각번호다. 우리나라는 건강하고 신선한 달걀을 표시하는 난각표시제를 운영하고 있다. 달걀 껍질에 산란일과 사육환경을 숫자와 알파벳으로 표시해 소비자가 좋은 달걀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위 달걀에서 보면 0505는 산란일이다. KB01Z는 달걀을 생산한 농장번호다. 확인은 축산물이력관리시스템 누리집(www.mtrace.go.kr)이나 축산물이력제 앱(app)을 통해 가능하다그리고 맨 뒤의 숫자 2가 '사육환경'을 의미한다. 1-자유 방사, 2-축사 내 방사, 3-개선 케이지, 4-배터리 케이지로 숫자가 높아질수록 닭들의 사육 환경은 열악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일반적이면서 대표적인 밀집사육 공간이 ‘배터리 케이지’이다. 차곡 차곡 쌓인 배터리 같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이 사육 환경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주인공 잎싹이 죽은 척 하면서까지 벗어나고 싶어 하던 곳이다. 닭 한 마리가 A4 용지 한 장 크기 정도의 공간에서 평생을 생활하며 달걀을 낳아야 하는 곳. 몸도 돌리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서 진드기와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항생제와 진드기 퇴치제 등을 맞으면서. 그렇게 해서 십여년 전 달걀 항생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번, 2번 사육 환경이 케이지프리(Cage Free)에 해당한다. 케이지프리는 밀집사육으로 생산되지 않은 축산품을 뜻한다. 다시 따님이 궁금해 한 사육 환경 1번, 자유 방사. 나의 경우는 시판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생산량이 적어서 대규모 유통이 되지 않는 거겠지 하면서 여러 군데를 찾아 봤다. 그런데 유통되기는 된다. 판매되고 있다. 주로 온라인 전문 사이트에서. 1번 사육 환경의 A브랜드는 40구 39,000원, B브랜드는 10구 10,900원(그런데 배송비가 삼만원 이상이어야 무료네요), C브랜드 20구 15,000원(40구 26,000원), D브랜드 30구 19,000원정도다. 


보통 크기(1구당 52g 이상)의 개당 가격은 평균 720원 정도다. 비슷한 크기의 2번 사육 환경의 달걀이 개당 550원인거에 비해 개당 200원 가까이 비싸다. 역시 돈과 선택의 문제이다. 조금 비싸더라도 동물 복지를 염두에 둔 소비를 할 것인지 아닌지를. 동물 복지란 표현에 불편해 하는 의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 먹고 살기도 어려운 데 무슨 동물들의 복지까지 신경써야 하느냐는 반응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게 다 우리 인간을 위한 거란 생각으로 돌아간다. 식용으로 이용되는 먹거리, 식재료서의 동물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폐플라스틱이 돌아 돌아 다시 우리 입에 들어 오는 것처럼.


가장 흔하면서도 익숙하고 몸에 좋은 달걀을 생산하는 닭의 사육 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사고 방식과 사회 제도적 뒷받침이 미래 세대들을 위한 건강한 먹거리의 지속가능한 생산을 말그대로 가능하게 하는 것일테니까.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자꾸 달걀과 계란이 손가락과 입에서 따로 노는 것 같다. 둘다 혼용되어 써도 문제가 없는 표준어이다. 계란은 계(닭)가 낳은 알이고 달걀은 달긔알이라는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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