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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17. 2023

이제는 크는 것만 지켜 봄

[풀꽃들에게]7_텃밭.사람들 유랑기 4

나보다 두살 많은 성격 참 좋은 허쌤. 언제나 긍정 마인드. 허쌤밭에는 작년에 내가 한움큼 얻어다 먹은 부추와 당귀가 여전합니다. 그런데 왼쪽 당귀가 오른쪽 두 송이보다 훨씬 빈약합니다. 범인은 개미였다네요. 뿌려둔 상추 씨앗을 가지고 땅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개미들을 쫓아 가보니 왼쪽 당귀 뿌리 근처에 지하 도시를 만들어 놨더라구요. 다음날 다시 와 보니 상추씨는 먹고 껍질만 집 바깥으로 다 버려뒀더라고. 나쁜놈들이라 씩씩거립니다. 옆에서 내가 맞장구쳤습니다. 똑똑하구마, 지 살궁리 잘하는게 잘하는 거지. 그러자 그럽니다. 일개미들 중에서도 20%는 논다고, 그래야 개미 사회가 유지된다고. 예전에 교사 대상 강의에서 많이 인용했던, 그래서 덜 흥분하시라 농으로 던졌던 그 실험 이야기입니다. 


상추 씨앗 사이사이에 하얗게 부서진 것들은 펄라이트입니다. 집 화분위에 뿌려주는 부석같은 인테리어 돌들이지요. 얘들이 물구멍 역할을 합니다. 고운 흙만 있으면, 퇴비만 그득하면 뿌리 내리기 전에 죽습니다. 물이  흙을 곤죽을 만들어 뿌리까지 수분이 덜 닿게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펄라이트를 흙과 퇴비 사이에 적당히 섞어줘 뿌리까지 충분히 닿을 수 있는 물길을 만들어 줍니다.  



김쌤. 가장 부지런한 일꾼입니다. 구멍마다 가지, 방울토마토, 상추, 쪽파, 열무 등을 알뜰살뜰하게 심어 놓았습니다. 하루면 뚝딱하고 일을 마칩니다. 그리고 얘들한테 물을 충분히 주려고 텃밭 입구에 지지대를 두개 그냥 세워 줍니다. 물호스가 텃밭으로 타 넘어 들어가지 않게 말이지요. 작지만 중요한 일꾼의 노하우입니다. 물도 하늘을 향해 뿌립니다. 보드라운 비처럼 내려 연한 모종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주인의 세심함이 느껴집니다. 


곡우를 지나친 지 한달이 가까와 지고 있습니다. 그 무렵 파종이 되었던 씨앗들, 모종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요즘 허리 통증을 잠시 잊고, 점심밥을 더 맛나게 만들어 줍니다. 5월 15일 작황입니다. 봄비도 넉넉히 머금은 흙 덕분에라도 자외선 강한 5월 햇살 덕분에라도 이제 쑥쑥 크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루를 정성껏 살아내는 아이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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