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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19. 2023

나는 래퍼다

사진: Unsplash의Chase Fade

"아무 생각 없었는데, 아빠 때문에 이상하게 보이잖아?" 라며 웃어준다. 친구 만나러 나가는 일팔 청춘 따님이 신발을 신으면서 외쳤다. 이게 정신적 작용을 주고받는 사이. 그런 사이가 많을수록 행복해지는 인생. 우리 서로 들고 날 때 꼭 서로 안부를 묻자. 챙겨주자.


남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엄마, 아빠는 래퍼라고. 너희들이 좋아하는 그 노래, 랩을 하는 래퍼라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마음에 담아 주절주절 거리는 래퍼라고. 했던 가사 또 내뱉고, 또 내뱉는 래퍼라고. 그 말들을 랩가사처럼 흘려들으라고. 그러다 한 단어, 한 마디가 귀에 와, 가슴에 와 콕 박히는 게 있을 거라고. 자꾸 듣다 보면 그럴 거라고. 


대부분의 10대들이 랩을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사가 솔직하기 때문이다. 숨김이 없다. 욕하고 싶을 때 욕을 내뱉는다.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지른다. 자기 대신 자신을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랩이 그렇다. 흘려듣다가 한 두 단어가 귀에 꽂힌다. 먼저 나 일찍 살아온 세대의 조언이 그렇다. 다 필요한 이야기다. 맞은 말이다. 그래서 더 싫어진다. 엄마말이 다 맞아서 더 싫어진다. 



학교에서 만나는 남의 자식들한테도 똑같이 부탁한다. 나는 래퍼라고.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건 옳지 않은 거라고. 그냥 랩으로 들으라고. 그리고 흘리라고. 그러다 흘려듣던 그 멘트에서 한 두 말이 가슴에 와닿으면 크는 거라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 언제더라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거라고. 서서히 랩 가사가 자기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래퍼가 랩을 읇조릴 때 관객의 태도가 중요한 거라고. 


관객의 태도를 잘 배우다 보면 전혀 다르게 들릴 때가 있을 거라고. 10대 때는 온 세상이 자기를 알아봐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일 거라고.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세상천지 널린 것처럼 보일 거라고. 하지만 더 살다 보면, 그러면 지금이 그래도 자기를 알아봐 주고, 할 수 있는 게 더 많았던 때였던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그걸 조금 더 알기 때문에 보고도 못 본 척하지 못하는 건, 잘못된 걸 알려주려는 건, 더 나은 길을 보여주려는 건 그저 어른들의 의무 같은 거라는 걸 그렇게 서서히 알아 갈 거라고. 너희들도 조만간 어린 누군가에게 자기 스타일대로의 래퍼가 되어 갈 거라고. 고등학생은 벌써 중학생, 초등학생한테는 위대한 래퍼라고.


분필하나도 가만히 두지 않는 아이들처럼


감정이 여린 10대들 못지않게 오십 대가 되어도 부모가 되어도 감정은 뭐 그렇게 넉넉하게 단단해질 줄 모른다는 사실을 10대들은 잘 모른다. 그저 그런 척하면서 살아낸다는 걸 잘 모른다. 실패의 경험이 더 많아 지금은 좀 괜찮은 척하고 사는 거라는 걸 잘 모른다. 아재리아, 꼰대라떼의 세상이 실패의 무덤 위에서 태풍, 소나기, 폭염, 한파, 먼지를 다 이겨낸 가녀린 꽃대라는 걸 잘 모른다. 우리때처럼 여전히. 


사람은 누구나 지금 당장 그저 세상 편한 방식으로 자기를 가두려고만 한다. 본능에 가깝다. 그 순간은 잊을 수 있고, 잠시라도 외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밋밋한 일상 마디마디에서 꿈틀거리는 유머러스한 비트가 있어 살만하다. 몸나이가 들면 그 유머와 비트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흉내 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더 생기는 게 좋다. 유머와 비트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꽃대를 지켜내는 여유. 


그렇게 그 비트에 나도 한 숟가락 슬쩍 얹히면서 오늘도 화려한 조명 없는 어둑한 무대 위에서 욕바지 래퍼로 살아내는 내가 좋다. 오늘도 예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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