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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03. 2023

잘 살아내게 해주는 존재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2...사진:연합뉴스

영화 <써니>의 한 장면. 7 공주들끼리 맞짱을 뜨는 영화의 메인 장면중 하나. 주인공이 미친 연기를 하던 폐허인 그곳. 그곳 1층에서 한식당을 운영하시던 어머님을 32년 전 처음 만났다. 대학 동기들과 다 함께 어머님 식당을 빌려 1박 2일 엠티를 했었다. 지금도 그때 먹었던 돼지 두루치기 맛은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 어디에서도 그 맛을 내는 두루치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다. 결혼한 지 스물 두해. 그동안 그곳은 버리진 곳이 되었고, 아내가 열 살이 넘어서부터 살게 된 길 건너 언덕배기 동네는 이제야 철거 중이다. 성 같은 아파트가 들어올 거라는 말을  내가 들은 지도 스무 해가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외벌이 장인어른 옆에서 마당 있는 집도 사고 삼 남매 대학도 다 보내시면서 평생을 그렇게 억척으로 사셨다. 두루치기를 맛나게 만드시던 그 무렵부터 식당안 좁은 주방에서 하루 종일 가스불앞에 서 계셨다. 작은 방에서 향을 피워놓으시고 자식, 사위 잘 되라고 매일 새벽 한 시간 넘게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신 어머님. 지지난 목요일. 퇴근하고 늦은 저녁을 먹는데 어머님 바로 밑 동생인 이모님한테서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아들 둘만 키우신 이모님은 아내와 하는 전화 통화를 좋아하신다. 좋아하셔도 너무 좋아하신다. 딸이 없어, 당신의 소소함을 몰라줘서 그렇단다. 그래서 기본 통화가 한 시간이다. 


그날 이모님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다. 내과 의사인 아들이 그러는데 어머님 건강검진에서 찜찜한 것들이 몇 가지 발견되었다고. 그래서 CT를 찍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단다. 학교 아이들 졸사 찍는 날 아침. 올림픽공원 주차장에 일찍 도착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어머님이 좋지 않으시다고. 그래서 업무를 정리하고 어머님과 가장 가까이 있던 내가 달려갔다. 당일 CT 촬영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해서 갔다. 오전 내내 기다려 찍고 간단한 결과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당일에 찍고 결과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싶었는데, 다시 대학 병원으로 가라, 였다. 조직검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어머님은 결혼 전부터 나와 노래방 - 어머님이 운영하시던 - 에서 두 손 꼭 잡고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하셨다. 손님이 없는 날은 그렇게 내가 관객이 되고 어머님이 가수가 되는 공연이 자주 있었다. 당신의 가사와 세상의 비트 사이를 어머님의 눈물이 잇고 있었다. 자주.  살아내는 힘겨움이 가사로 비트로 당신을 긍정하게, 곧게 세워주었지 싶다. 어머님은 예순이 넘어서면서부터 사신 그 집이 지금 철거 중이라, 근처 빌라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사신다. 올해까지 최소 3년이 소요될 예정이란다. 한참 동안은 재개발 업체가 대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조합의 일도 참여해서 함께 하시는 것 같았다. 


여든 어머님의 바람대로 큰 회사에서 지금 철거 중이다. 향으로, 기도로, 절로, 가사와 비트로 어머님을 살아낼 수 있게 만든 존재였다. 그 집이. 그 재개발이. 한편에 커다란 포도나무가 있고, 광위에서 달과 별을 바라보던 자그마한 마당 딸린 집. 그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김장도 함께 하고, 노래도 같지 불렀다. 그 집이 스물몇 해 전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던 그곳이다. 기름보일러가 웅웅 거리며 돌아가던 가운데 방. 빛도 하나 들어오지 않던 그 방은 그렇게 잠이 잘 왔던, 그 집이다. 그 집, 그 방을 갈 때마다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꼭 한두 가지씩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던, 객지에서 만난 고향 같은 존재였다.


가장 좋은 상황은 단순 염증. 몇 달 약을 드시면서 다시 인공 무릎으로 매일 두 시간 운동도 잘하시고 대궐 같다는 그 편한 아파트에서 두 분이 다시, 두 손 꼭 잡고 같이 노래 부르면서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내 곁에서 세상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를 오래오래 잡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내 욕심을 부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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