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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26. 2023

얘들아, 내가 미안해

어제 퇴근길. 4기 충전 라라크루님들이랑 '글'로 깨방정을 떨었다. 요즘 이런 내가 참 좋다. 엄.근.지의 염색이 조금씩 빠지는 듯 해서. 꾸물한 날씨에 급땡긴 짬뽕과 아내가 좋아하는 양장피를 테이크 아웃했다. 그리고 짜잔 하고 집에 도착하니 치킨을 시켰다고. 요즘 우리 셋이 최애하는 또래오래 고추단짠 윙봉. 지난주에 이어 두번째다. 벌써. 


가장 먼저 짬뽕을 어택한 후 양장피를 먹다, 가 토할 뻔. 겨자가 제대로 발라지지 않고 뭉쳐 있는 덩어리 째 흡입. 그러는 내내 일팔청춘 따님은 윙봉 집중 공격. 어제는 클리어. 딱 세 조각을 빼면 지난주와 데자뷰. 지난주에는 딱 세 조각이 남았었다. 윙 홀릭들인 아내와 따님덕에 봉만. 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팩킹해서 일단 냉장고에 넣었다. 그러다 그 다음날 아침 출근하면서 도시락 챙기다가 살짝 망설였지만 챙겼다. 


분명, 오늘 저녁에는 못 먹는다. 아니 안 먹는다. 오늘은 오늘의 먹을 게 생기기 때문에. 떠오르기 때문에. 나는 참 위대하다. 매일 어떻게 그렇게 먹을것을 바꿔가면서 계속 먹고 싶은 지.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어야 하는지. 글쎄 알약 하나로 퉁쳤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 사람이 있단다. 의아하다.  


점심 시간 한 시간 전. 사무실 전자레인지에서 돌렸다. 60초로 설정하고. 그 사이 3교시 종료령이 울렸다. 그리고 몇초 뒤 사무실 문이 휘리릭 열리더니, 아이돌 데뷔조 여리가 들이 닥쳤다. 맞다 들이닥쳤다. 그 뒤를 수줍음 많은 벼리가 뒤따라 들어왔다.


쌤, 흠흠, 맞죠. 이 냄새. 치킨. 치킨. 배고파요. 치킨. 그날은 우리 사무실 빵데이였다. 격주로 총무쌤이 빵, 김밥 등을 준비해 주신다. 두개의 사무실로 나눠져 근무하는 열 다섯이 잠깐 큰 사무실에 모여 나눠 먹는다. 근데 난 깜빡했었다. 아침에 따님이랑 시금치, 지리멸치, 무말랭이를 밥위에 올려 김으로 싸먹었다. 잘라놓은 김을 다 먹어 A4 크기의 김을 한봉지 더 뜯어서.


그렇게 생긴 내몫의 김밥 한줄을 아침 일찍 사무실에 찾아온 여리손에 이미 준 뒤었다. 그런데 세 시간뒤 사무실 옆, 옆, 옆 교실에 있던 녀석이 들이닥친거다. 쌤, 저 개코예요, 개코 하면서. 그런데 개코나 나눠먹을 게 없었다. 자그마한 닭봉 남은 거 세 개뿐. 그런데 여리가 사무실 문을 열어 놓고 들이닥친 바람에 복도에 스무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장정들이 킁킁킁킁, 흠흠흠흠 거리면서 모여 들었다.


쌤, 지금 치킨냄새 대박이에요. 미치겠어요. 치킨드시는 거예요. 쌤, 쌤, 구해주세요. 어. 이게 아닌데. 이런 상황이 아닌데, 가만 보니까 나혼자 치킨 세마리는 먹은 분위긴데. 야, 아니야. 아니야. 쌤이 향수를 바꿨어. 치킨향으로. 그랬더니 자그마한 키에 똘망똘망한 눈만 내놓고 덴탈 마스크가 얼굴 전체를 가린 듯한 여학생이 턱밑에서 계속 그런다.


쌤, 향수냄새 좋아요. 쌤, 아, 이건, 오~ 힘들다. 심하다. 사무실안에 있던 여리도 벼리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여리야, 얘 누구니 하면서 그 여학생을 흠찍 놀라는 척 쳐다봤다. 하지만 소용은 없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할때라면 수줍음에 눈도 못맞추고 고개를 숙였을 것 같은 그 자그마한 여학생은 치킨 세 조각앞에서 당당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눈웃음 가득하게, 맑게, 자신있게. 치킨이 사람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본성을 찾아주는 과정이었다. 나보다 훨 나았다. 치킨이. 어제 다시 데자뷰같은 행복한 저녁을 보내면서 아, 나는 지금 집에서 글램핑중이다, 싶었다. 모든 게 다 잘 갖추어진. 거기에 사랑까지 듬뿍인. 나는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글.램핑. 단짠윙봉덕에 떠오른 키워드로 이 글을 이 새벽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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