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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13. 2023

애리가

사진: Unsplash의Alexander Grey

2주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금요일 오후이지만 이 병원 건물은 언제나 주차 건물로 들어가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젊은 주차 관리인은 차들을 한대씩 한대씩 차량용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있었다. 신중하게 보였다. 하지만 한대가 오르고 다시 내려오는 데 이삼분은 족히 걸리는 느릿한 시스템이다.  


이 건물 7층에 내가 일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정형외과가 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이비인후과, 치과, 안과가 있는 요즘 흔한 메디컬 빌딩이다. 6층까지 층마다 서너대의 주차가 가능하고 엘리베이터 진입로에 있는 1층 지상 주차장에도 건물 기둥 사이에 서너대의 주차 공간이 있다. 빌딩 주차 관리인은 지금껏 두 명을 봤다. 내가 방문하는 시간대에 거의 근무하는 60대 한 명. 그리고 그 분의 대타처럼 근무하는 것 같은 또 다른 한 명.


메인 주차 관리인은 가끔 겸연쩍은 듯 자기 손으로 주변 머리를 긁적긁적하는 습관만 빼고는 항상 웃으면서 융통성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냥 들고 나는 게 아니라 방문하는 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가끔 목격하게 된다. 꼭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이렇게 저렇게 주차하는 게 낫겠다고 조언한다.


어제 내 앞에는 두 대의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5분여를 기다렸을까. 맨 앞차 한대가 엘리베이터속으로 사라졌다. 6층으로 느릿느릿 올라가는 빨간색 화살표와 숫자를 보면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그 주차 관리인이 내 앞차에게 손짓을 한다. 그리고 그 차는 엘리베이터 앞에 바짝 다가섰다. 그 다음은 내 차례.


그 사이 건물에서 한 사람이 1층 지상 주차장으로 걸어나오는 게 보였다. 이내 경차 전용 맞은편 기둥쪽에서 SUV가 한대 빠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 타이밍 절묘하게 그 주차관리인이 나에게 손짓을 해 준다. 어김없이 창문을 내려달라고 손짓을 하면서. 안녕하세요, 저기에 주차할까요, 네, 저기 기둥에다가 오른쪽으로 최대한 붙여서 대주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어제는 참 수월하게 주차를 했다. 차안에 앉아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통증을 느끼는 시간도 줄어드는 나로써는 정말 다행이었다. 금요일 오후 졸리는 눈을 부비면서, 상체를 이리저리 뒤틀면서 갑갑하고 느릿한 차량용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되어서.


그렇게 얼른 주차를 하고 나오는데 그 주차관리원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오는 다른 차를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내리면서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아,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아, 네. 그렇게 짧은 인사를 주고 받으면서 난 건물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이 건물에는 방문객 엘리베이터가 딱 하나다. 그래서 모든 병원 방문객이 동시에 몰리기 때문에 항상 만원이다. 그리고 매 층에 서는 건 당연하고. 그래서 7층까지 걸어서 오르곤 한다. 하지만 어제는 다리가 저릿해서 그냥 1층에서 7층에 떠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열 댓명이 족히 되었다.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요즘 자주 그런다. 아니 계속 그런다. 글쓰기 전에는 휴대폰이 항상 뒷주머니, 자켓 왼쪽 주머니에 넣어져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부터는 항상 손에 쥐고 있다. 그렇게 갑자기 떠오르는, 찾아와 주시는 단어를,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


내서랍은 그래서 더욱 지저분해지고 있다. 하지만 마음만은 넉넉하다. 뭐, 나만 가지는 부자된 기분이다. 어제도 그랬다. 막 떠오르는 키워드를 기록하고, 내용칸에 더 떠오르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버스, 웨이터, 여행, 단짝, 빌려내, 대성리.... 그렇게 브런치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한참을. 엘리베이터는 이제 5층에서 깜빡거리고 있었고.


그 주차관리원이 어느새 내 옆에 와 있었다. 1층 화장실이 건물 안 약국 입구 맞은편에 있는데, 거길 다녀가는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지 않고 내 오른쪽으로 바싹 다가왔다. 귓속말을 하려는 듯 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귓속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혼잣말로 '애리가' 이러면서 순간 나의 목덜미를 낚아 채려는 듯 손가락을 뻗었다.


불과 몇초 사이. 움찔하던 나도 아, 네, 고맙습니다. 하면서 멋쩍게 주차관리원의 눈빛을 쳐다봤다. 아마 아까 1층 지상에 주차를 한 후 내리면서 조수석에 벗어 주었던 자켓을 입을 때 자켓 카라가 뒤집혀 있었나 보다. 내내. 뭐, 가끔 그럴때 있다. 대부분은 느낌을 잡고 두 손으로 반듯하게 정리를 하지만, 어제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아마 그 접힌 채 건물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뒤에서 쳐다봤을 지도.


카라를 제대로 펼쳐주는 그 주차관리원의 눈빛은 여유로웠고, 흐뭇해 하는 것 같았다. 그 눈빛이 마치 있지도 않은 나의 형님이 살아돌아와 동생을 챙겨주는 것처럼. 폰에 빠져 있어 더 순간 당황했지만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다시 7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가슴 한켠이 저릿한 다리의 느낌과 같았다. 그러면서 그 서먹함 친절함이 고마웠다.


그러면서 1층에서 7층까지 여섯번을 서는 동안, 꽉꽉 들어차게 타는 이들을 보면서 나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맞다. 인상도, 인생도 다 적절한 표현이 쌓여 사랑이 된다. 내가 된다. 사랑은 나와 같은 것들을 아끼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것들을 받아드려 주는 거다. 그래, 조금 더 표현하자. 표현하는 연습을 더 하자. 아침마다 아내에게 굿모닝을 외치는 걸 멈추지 말자. 먼저 나갈 때 나 간다. 다들 잘 다녀와라고 하는 말을 멈추지 말자. 자고 있던 일팔청춘 따님도 다 들으면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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